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역사이야기: 방관의 전생을 알려준 형화박

【정견망】

방관(房琯)은 자(字)가 차율(次律)이고 하남 후씨 출신이다. 당나라 숙종 시기의 유명한 재상이다. 당시 형화박(邢和璞)이라는 도사가 있었는데 명리에 능통했고 법술이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를 도가의 진인(眞人)으로 보기도 했다.

방관은 당나라 현종 개원 18년(서기 730년)에 하남 노씨현(盧氏縣)의 현령으로 임명되었다. 당시 형화박이 태산에서 이곳을 찾았다. 방관은 그에게 허심탄회하게 예를 갖추었고 두 사람은 관계가 아주 좋았다.

어느 날 두 사람이 함께 나가 산보를 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수십 리를 걸어 하곡촌(夏穀村)에 있는 낡은 절의 불당(佛堂)에 도착했다. 불당 안은 소나무와 대나무가 빽빽이 자라고 있어 그 아래서 쉬었다. 형화박이 소나무 아래 앉아 지팡이로 땅을 두드리며 시종들에게 이곳을 몇 척 깊이로 파보게 했다. 파보니 병이 하나 나왔다. 병을 열어보니 그 속에 당 고종과 측천무후 시기 유명 대신이었던 루사덕(婁師德)이 영공화상(永公和尚)에게 쓴 편지가 들어 있었다. 형화박이 웃으면서 방관에게 말했다. “이곳에 왔던 기억이 납니까?” 방관은 깜짝 놀라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갑자기 자신의 전생이 영공화상이었음을 기억해냈다. 알고보니 루사덕이 편지를 썼던 영공화상이 바로 방관이었던 것이다.

형화박이 방관의 전생을 알려준 일은 역사적으로 매우 유명하다. 여러 차례 중국화의 소재가 되었다. 사료에 따르면 당송 연간에 《/span>형방오전생도(邢房悟前生圖)>, 《/span>형화박방차율논전생도(邢和璞房次律論前生圖)> 등의 그림이 있다. (차율은 방관의 자)

방관이 자신의 전생이 누구인지 분명히 알고 나자 형화박이 그에게 미래를 예언해주었다. “당신은 반드시 물고기탕을 먹다 죽을 겁니다. 사망 장소는 당신 집이나 역관이 아니고 사원이나 친지의 집도 아닙니다. 또 길이나 관아도 아닙니다. 당신이 사망한 후 구자판으로 관을 만들 겁니다.”(주: 구자판은 서역인 구자에서 나오는 목재를 말한다)

방관은 이로부터 윤회와 생명에는 정해진 수(數)가 있음을 알게 되어 백성들에게 좋은 관리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노씨현에 재임하면서 적폐를 혁파하고 잔혹한 형벌을 폐기했다. 또 수리시설을 보수하고 농업과 공업을 발전시켜 뛰어난 치적을 쌓았으며 현지 백성들의 사랑을 받았다. 얼마 후 예서(豫西)지역에 가뭄이 들어 많은 백성들이 굶주려 식량을 찾아 피난을 왔다. 이런 큰 재난에 마주한 방관은 마음이 급해 조정에 잇달아 상주를 올려 창고를 개방해 식량을 풀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당 현종은 이미 웅심이 쇠퇴했고 점차 환락과 주색에 빠져 있어 백성들의 식량 문제는 관심에 없었다.

당시 양곡 창고를 여는 일은 조정의 허가 없이는 함부로 할 수 없는 큰일이었다. 잘못하면 머리가 떨어지는 일이었다. 하지만 방관은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죽는 것을 보고 있을 수 없어 결연히 명령을 내렸다. 전 현의 창고를 모두 열어 이재민을 구휼하게 했다. 이재민들은 현령이 자기 목숨을 걸고 양식을 풀자 큰 감동을 받았다. 다투지 않고 질서정연하게 줄을 섰으며 며칠 사이에 대부분의 이재민들이 양식을 분배받았다.

생사의 고험에 직면해 윤회의 이치를 알았던 방관은 오히려 미소 지으며 생사를 담담히 보았다. 그는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위험에서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창고를 열었다며 자신의 죽음으로 사죄한다는 글을 썼다. 그러나 다음날 그가 글을 보내려고 할 때 양곡을 푸는 것을 허용한다는 성지(聖旨)가 도착했다. 이에 방관은 즉시 양식 푸는 임무를 완성했노라고 보고했다. 조정에서는 보고를 받고 그가 신속하게 일을 잘한 것으로 보고 중임을 맡겨 조정에 들어오게 했다. 당나라 숙종 때 방관은 재상에 임명되었다. 노씨현 백성들은 그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노씨현에 ‘방공사(房公祠)’라는 사당을 건립했다. 이 건물은 여러 대를 거치면서도 여전히 대전, 권붕과 석비 등이 남아 있다.

방관은 나중에 또 지방관으로 돌아왔다. 원주와 한주에서 일했고 사직 후 고향에 돌아갈 때 낭주를 거쳐갔다. 자극관도관(紫極宮道觀)에 있을 때 도관에 몇 명 목수들이 목공일을 하는 것을 보았다. 방관은 나무판의 무늬가 특수한 것을 발견하고 도사에게 물었다. 도사는 “몇달 전 어느 상인이 도관에 이 구자판을 희사했습니다. 지금 그것으로 벽을 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방관은 여러 해 전 형화박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잠시 후 낭주 자사가 맛있는 생선요리를 준비하여 방관을 초대했다. 방관은 자신의 수명이 다한 줄 알고 탄식하며 말했다. “형화박은 신인(神人)이구나!” 이에 연회에 나아가 연회석상에서 자사에게 이야기를 들려준 뒤 자신이 죽은 후 꼭 구자판으로 관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날 밤 방관은 생선을 먹은 후 병이 나서 죽었다. 자사는 구자판으로 관을 만들어 안장토록 했다.

형화박과 방관의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알려준다. 즉, 사람의 진정한 생명은 절대 육신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사람의 원신은 윤회하고 전생한다. 사람의 일생은 또 신이 안배한다. 유신론이 맞다면 무신론은 사람을 속이는 말이다. 그렇다면 무신론에 기초한 공산주의는 잘못된 것이다. 신의 눈에 공산당은 죄가 하늘에 미치는 사악한 조직이다. 반드시 악보를 받을 것이며 청산해야 한다. 전체가 잘못되면 개인도 화를 면할 수 없다. 공산당 관련 조직에 가입했던 모든 사람들은 반드시 연루되어 재앙을 당하게 된다. 평안해지려면 빨리 당, 단, 대를 탈퇴해야 한다.

자료출처: 《구당서(舊唐書)》, 《역세진선체도통감(曆世真仙體道通鑒)》, 《명황잡록(明皇雜錄)》、《유양잡조(酉陽雜俎)》


원문위치
: http://www.zhengjian.org/node/158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