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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기실: “온주참화웅”을 회억

윤회기실: “온주참화웅”을 회억

작자: 대법제자 용아(龍兒) 구술, 오옥(伍玉) 정리

【정견망 2010년 5월 24일】

<삼국지>에서 관운장의 이야기는 사람들이 다 알고 있다. 이는 나관중과 후세 작가들의 두터운 사랑 덕분에 관운장을 이처럼 대단하며 정기가 하늘을 찌를 듯한 사람으로 그려준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할 것이다.

<삼국지> 도원결의나 세 영웅이 여포와 싸운 이야기는 모두 진실한 이야기다. 그러나 자세한 상황은 실제와 좀 차이가 있다. 여기서 “온주참화웅(溫酒斬華雄 술이 식기 전에 화웅의 목을 베다)”을 일례로 들어 삼국지 애독자들과 교류하고자 한다. (역주: 이 이야기는 동한말 동탁의 폭정에 반발한 18제후가 원소의 지휘 아래 반란을 일으켰을 때의 일이다. 처음에 조조 연합군의 몇몇 장수들이 동탁 수하의 화웅을 당하지 못해 목이 달아났다. 조조가 초조해 하고 있을 때 마침 관운장이 나타나 화웅의 목을 베어오겠다고 하자 조조가 따뜻한 술을 따라 주었다. 관운장은 잠깐 기다리라고 하고는 나가서 화웅의 목을 베어왔는데 그때까지 술이 식지 않았다고 해서 “溫酒斬華雄”이라는 말이 생겼음)

옛날의 무장은 대다수가 공통적인 성격이 있는데 바로 의기(義氣)를 중시했다. 양쪽 군대가 싸울 때 각자 자신의 주인을 위했으며 이길 것은 정정당당하게 이겼고 패할 것은 패하며 죽을 때는 죽는 것이다.

“온주참화웅” 이야기 중 작가는 관운장의 정면적인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서 화웅을 좀 폄하한 면이 있다. 사실 화웅 역시 기개가 뛰어나고 정정당당한 대장부이자 영웅이었다.

18제후가 군사들을 낙양으로 진군하면서 첫 번째 벌어진 전투가 사수(汜水)를 지키던 화웅을 만났을 때였다. 당시 화웅은 양군의 진영 앞에서 대장을 몇 명 베었고 속으로 좀 의기양양해 있었다. 허나 관운장과 맞섰을 때는 비로소 강적을 만났음을 알았다.

관운장과 화웅은 사수관에서 삼백회를 겨뤘지만 승부가 나지 않았다. 동시에 쌍방 모두 상대방에 대해 매우 탄복했다. 그럼 왜 관운장이 최후에 승리하는가? 문제는 두 사람이 탄 말에 있었다.

화웅의 말은 아무런 특징이 없는 전투마였다. 두 말이 서로 지나쳤을 때 화웅의 말은 관성때문에 어느 정도 거리를 달려야만 비로소 말머리를 돌려 다음 싸움으로 달려들 수 있었다. 관운장의 말은 대등괴만마(對鐙拐彎馬)라 하는데 두 말이 지나쳤을 때 재빨리 돌아올 수 있는 특이한 재주가 있었다. 어떤 때에는 한발로 땅을 짚고 나머지 세발로 힘을 써서 한 바퀴 돌기도 했는데 동작이 아주 빨랐다.

관운장의 말이 몸을 돌려올 때 화웅의 말은 관성 때문에 앞으로 달려가야 했다. 그래서 관운장은 추격을 유지할 수 있었다. 관운장이 칼로 화웅의 말꼬리를 치자 말은 등이 아팠기 때문에 죽어라 앞으로 달렸고 화웅은 이 한 번의 회합에서 패했던 것이다.

두 번째는 화웅이 관우를 추격했다. 관우의 대등괴만마는 또 하나의 특징이 있다. 관우가 말에서 몸을 굽혀 말의 목을 가볍게 치자 말은 주인의 뜻을 알고 몸을 앞으로 구부렸다. 이때 화웅은 관우의 말이 앞발굽을 헛딛는 것으로 착각해 칼을 들어 관우의 뒷머리를 치려고 했는데 바로 이 위기일발의 상황에 관우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대도를 들어 화웅 전마의 앞발굽을 내리쳤다. 화웅의 전마는 발굽을 헛디디며 우당탕 쓰러졌고 화웅의 뒷다리를 깔아뭉갰다. 바로 이때 관운장의 청용언월도는 이미 화웅의 목에 닿아있어서 천고의 역사적 순간이 결정되었다.

이때 관운장이 화웅의 머리를 취하려 했다 손바닥 뒤집기보다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왜 시간을 끌면서 손을 쓰지 않았을까? 관우는 화웅에게 무슨 할 말이 있는지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화웅은 관우가 손을 쓰지 않는 것을 보고 관우의 뜻을 알았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관우는 의리가 있는 사람이다. 이번 기회에 그와 형제결의를 맺고 나중에 죽어도 늦지 않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관 장군, 양군이 싸우는데 각자 주인을 섬기고 있소. 내가 종군한 이래 나와 삼백회 이상 싸울 수 있는 사람을 보지 못했소. 오늘 장군의 칼 아래 죽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며 영웅스런 죽음이오. 장군이 손을 쓰기 전에 두 가지 일을 부탁하고 싶은데 혹시 대답해줄 수 있소이까?”

관우는 화웅이 영웅의 기개가 있는 사내임을 알고 말했다. “화웅 장군 말씀해보시오.”

“저는 금생에 한이 되는 일이 관 장군과 너무 늦게 만난 것이오. 관 장군이 만약 이 패장을 꺼리시지 않는다면 저는 관 장군과 의형제를 맺고 싶소이다. 장군의 뜻이 어떤지 모르겠지만…”

관우는 화웅의 뜻이 간절한 것을 보고 응낙했다. “나도 그런 생각이 있소이다. 당신이 죽은 후 당신의 식구들은 내 가족처럼 돌볼 것이고 당신의 시신은 군대의 규정에 따라 후히 장사지내주리다. 그 다음 조건은 무엇이오?”

화웅은 관운장이 시원하게 대답하는 것을 보고 매우 감격했다. 그래서 말했다.
“감사합니다. 관 장군. 두 번째 일은 내가 참수당한 후 18제후들이 아마 제 병사들을 추격해 죽일 텐데 제 군사들에게도 얼마나 많은 처자와 노부모가 있는지 모릅니다. 제가 죽은 후 제발 제후군사들을 제지해 병사들이 다치지 않도록 해수십시요.”

관우는 화웅의 말을 들어보고 그가 의리 있는 사나이임을 알았다. 그래서 즉시 두 번째 요구를 들어주기로 응낙했다. 양군의 진지 앞이 아니었더라면 사사로운 정을 이기지 못해 아마 화웅을 진작 놓아주었을 것이었다.

관우는 한손을 들었다. “술을 가져오너라!” 군대의 병사가 즉시 두 잔의 더운 술을 바쳐들고 나타났고 화웅이 오른손으로 보검을 뽑아 왼쪽 팔을 긋자 선혈이 술잔에 떨어졌다. 화웅은 눈물을 머금고 꽉 찬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말했다.

“형님, 금생에 너무 늦게 만난 것이 한이 됩니다. 만약 내세가 있다면 형님과 술을 마음껏 주고받으며 취해서 모래밭에 눕고 싶습니다. 제가 먼저 존경의 뜻으로 한잔 들겠습니다.” 화웅은 술잔을 높이 들고 다 마셨다.

관우는 감개무량하며 말했다.
“동생, 자네와 나는 지금 다른 주군을 섬기지만 아우의 충만한 정기에는 죽음을 두려워 않는 영웅의 기개가 있소. 관모는 심히 감동했으며 이곳의 모든 장수들도 감동을 받았소. 내가 응낙한 일은 반드시 지킬 것이며 하나라도 아우의 뜻에 위배되는 일이 있다면 천지가 용서치 않을 것임을 맹세할 수 있소! 나도 아우를 존경하는 의미에서 한잔 하겠소!” 하고는 관우도 잔을 높이 들어 쭈욱 마셨다.

이때 해가 막 질 때여서 하늘은 석양에 물들었으며 저녁 바람에 황사가 몰아쳐 군기가 휘날리고 전마는 휘잉 울었다. 양군의 장수와 병사들은 직접 이 두 기개세 영웅의 슬프고 강개하며 장렬한 생사 이별을 목격했다.

화웅은 눈물을 머금고 두 무릎을 꿇으며 큰소리로 외쳤다. “형님, 아우의 절을 받으소서!” 화웅은 관우에게 세 번 절을 했다. 관우는 역시 눈물이 얼굴에 가득하여 화웅에게 삼배했다. “현제(賢弟), 잘 가시게!”

화웅은 땅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 관우에게 말했다: “저와 형님은 동년동월 동일에 죽기를 청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다음에 동년 동월 동일에 태어나기를 원합니다. 형님 이제 손을 쓰십시오.”

그때 사람들은 정말 의리가 있었다. 양군의 진앞에서 관우는 화웅을 묶지 않았기에 화웅이 기회를 보다 내달리면 진지로 돌아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아니면 화웅이 병기를 주워 몰래 관우를 습격할 수도 있었다. 어쩌면 그렇게 하여 실패를 승리로 돌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매우 진실했고 의기가 있었다.

관우는 몸을 일으켜 푸른 전투복을 벗어 화웅 앞에 깔아주고 청룡언월도를 들었다. 한가닥 찬 빛이 번쩍하더니 화웅의 머리는 관우의 전투복에 떨어졌다. 관우는 화웅의 시신에 삼배를 올린 후 전투복을 들고 전마에 올랐다.

이때 18 제후들의 맹주인 원소가 전군에 출격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관우가 칼을 빼어들고 막아서며 고함을 질렀다. “누구든 감히 한걸음이라도 나아가면 내 칼이 무정하다고 하지 마시오!” 양쪽 군대의 장수들은 진작 두 사람 영웅의 기개에 감동하여 이미 싸울 마음이 없었다. 원소는 군대의 마음이 이미 관우에게 기운 것을 보고 선심이라도 쓰는게 낫겠다 싶어 명령을 거두었다.

사실 관우가 화웅을 벤 것은 결코 화웅의 위풍을 멸한 것이 아니고 화웅의 죽음을 더욱 빛나게 하고 기백을 드높인 것이다. 화웅의 희생은 또한 관우의 넓은 흉금, 고상한 품격과 의리를 돋보이게 했다. 나는 이것이 <삼국지연의> 중에서 말하는 “의(義)”의 내포라고 생각한다.

세월은 벌써 흐르고 흘러 이 일이 이미 일천여년이 되었다. “온주참화웅”의 이야기는 아직도 눈에 역력하고 기억이 새로우며 어제의 일과 같다.

일천년 후의 오늘 나는 이미 여러 차례 환생했으며 대법이 널리 전해지는 때에 마침 이홍지(李洪志) 사부님께서 베푸신 두터운 덕을 만났다. 하지만 그때 전장에서 결의한 화웅 아우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 나는 그저 그가 선악을 똑똑히 분별하고 교란을 배제하여 대법을 얻어 수련하여 반본귀진 하기만을 빌 뿐이다.

화웅 아우, 자네는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외침을 들을 수 있는가?

발표시간 : 2010년 5월 24일
정견문장 : 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10/5/24/6635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