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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이야기: 신을 만났으나 깨닫지 못해 후회막심

신선이야기: 신을 만났으나 깨닫지 못해 후회막심

작자:신기명(辛棄名)

【정견망 2009년 12월 20일】

송나라 시기에 강서(江西) 파양(鄱陽) 지방에 호영지(胡詠之)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평소 도교를 좋아하고 신선을 받들어 모셨다. 송나라 철종 원부(元符) 초년에 그는 한때 강서 신주(信州) 익양현(弋陽縣)에서 한 도인을 만났다. 도인은 파란 두건을 쓰고 칡 덩쿨로 짠 옷을 입었는데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호영지는 공손히 그를 모시고 주점으로 가서 술을 대접했다.

도인은 매우 기뻐하며 큰 잔을 들고 가득 따라 붓고 마셨는데 마신 잔이 얼마나 되는지 셀 수도 없을 정도였다.

도인이 말했다. “당신은 장차 군대에 갈 일이 있을 텐데 갈텐가?”

호영지는 매우 놀라며 말했다. “바로 맞추셨군요, 저는 반드시 가야합니다.”

이때 호영지는 감숙 희하(熙河) 총수로 있던 도웅지(姚雄之)의 부름에 응해 그곳에 가서 군중의 일을 맡으려던 참이었다. 도인이 말했다. “서부 변방에서 군사를 모집하니 마땅히 가야합니다.” 하고는 종이를 꺼내어 시를 한 수 써주었다.

세상을 구하려면 반드시 세상밖의 재주가 있어야 하니
국 맛을 내려면 바다 소금을 써야한다
벽옥을 심는 사람은 어디에 있는가
일장춘몽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으니
승상부는 옛날에 연사각(延士閣)을 열고
무이산에 망선대(望仙台)를 신축하니
파랑새 노래 불러 함관을 알고
향낭을 잘 말아 돌아간다.

濟世應須不世才,
調羹重見用梅鹽。
種成白璧人何處,
熟了黃粱夢未回.
相府舊開延士閣,
武夷新築望仙台。
青雞唱徹函關曉,
好卷遊幃歸去來。”

다 쓴 후 호영지에게 주며 말했다. “이 시를 나 대신 장자후(章子厚) 승상께 전해주고 이렇게 말하시오. “장상공은 호인인데 잘못된 길을 가서 애석하다고” 말이요.”

호영지가 도인에게 물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도인은 “지금은 알려줄 수 없소.”라고 했다. 호영지가 또 그의 성명을 물었으나 도인은 알려주지 않았고 대신 이렇게 말했다. “나도 조만간 변방으로 갈 테니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오.”

밤이 깊어지자 호영지가 말했다. “선생께서는 이 주점에서 주무실 겁니까?”

도인이 말했다. “나는 부중(관청)으로 돌아가 강 아래 있을 거요.” 그러면서 소매를 흔들며 갔다.

다음날 호영지는 사람을 파견하여 부중에 여기저기를 찾아보았으나 모두들 그런 도인을 본적이 없다고 했다. 호영지는 현령에게 이 일을 보고했으며 온 현을 다 찾아보았으나 아무도 그를 본 사람이 없었다.

호영지는 또 수도인 개봉(開封)에 가서 왕부차(王副車) 왕세(王洗)를 만나 이 일을 알려주었다. 호영지는 그 도인이 쓴 시를 가지고 장자후 승상을 방문하려 했고 도인이 쓴 시를 주는 김에 그가 당부한 말을 승상에게 전해주려 했다.

하지만 왕세가 말했다. “당신은 절대 가지 마시오. 황상은 변방을 방어하는 일 때문에 장 상공을 조사하시려 합니다. 장승상이 이 시를 보면 반드시 사직하려 할 것입니다. 그러면 황상께선 이상하게 여기고 의심을 품어 그가 사직하는 원인을 물을 것이고 그때는 당신도 연루되어 죄를 당할 수 있습니다.”

호영지는 그의 말이 이치가 있다고 여겨서 몸을 돌려 감숙에 있는 도웅지의 막부로 갔고 그의 군대를 따라 청당성(靑唐城)을 탈취하러 갔다. 호영지가 다시 수도 개봉에 돌아왔을 때 장자후는 이미 경성을 떠난 뒤였다.

나중에 장자후가 북방에서 돌아온 후 이런 시가 있다는 말을 듣고 호영지에게 가서 달라고 했다. 하지만 시의 진본은 이미 왕세에게 남겨 두었고 호영지는 베껴놓은 것을 그에게 주었다.

장자후가 시를 보더니 탄식하며 말했다. “만약 내가 이 시를 좀 더 일찍 얻어 사직했더라면 오늘처럼 쫓겨나는 일이 있었겠는가?” 장승상은 이 시를 늦게 본 것을 몹시 후회했다. 사실은 호영지 연루될까 봐 두려워 제때에 도인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하여 그를 그르쳤던 것이다.

호영지가 변방 감숙성 군대에 있을 때 진주(秦州)의 천경관(天慶觀)이란 도교 사원을 지날 일이 있었다. 그는 여(呂)씨 성을 가진 한 도사가 천경관에 한달 이상 머무르다 최근 떠났다는 말을 들었다.

호영지가 그들에게 물어보았다. “그 사람이 여(呂)도사인지 어떻게 압니까?”

그곳 사람이 말했다. “도인이 떠날 때 마침 천경관의 신도들이 모두 이웃 군에 단을 설치하고 기도하러 갔습니다. 도인이 어린 동자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떠나야 하니 붓을 좀 빌려다오. 벽에다 몇 자 적을 테니 군대에 어떤 사람(호영지를 가리킴)이 오면 보여주거라.””

그러나 그 어린아이는 도관은 새로 지었고 사부가 벽에 글씨 적는 것을 금한다는 이유로 그 도인의 말을 거절했다. 그러자 도인이 말했다. “대전의 향로를 한번 사용하게 해다오. 삼청에 예배를 드린 후 떠나겠다.”

잠시 후 그 도인이 향을 공경히 피우고 절을 한 후 대전의 뒤쪽으로 가니 계단 아래에 석수지가 있는데 물이 청결했다. 노인은 손가락으로 대전의 벽에 시를 한 수 썼다.

석지(石池)의 맑은 물은 내 마음과 같아
복사꽃 그림자가 거꾸로 가라앉았구나.
단번에 규산(邽山)의 궁궐에 도착하여
속세의 번거로움 잊고 칠현금을 타네

石池清水是吾心,
漫被桃花倒影沉;
一到邽山空闕內,
消閑塵累七弦琴。

– 이 시의 뒤에 제목을 “회(回)”로 달았다.

나중에 천경관의 많은 도사들이 이 시를 보고는 놀라 찬탄하며 분명 여동빈이 쓴 것이라 여겼다. 대전의 벽은 매우 높아 위의 글자는 절대 팔이 닿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회(回)자의 두 개의 입 구(口)자를 아래위로 배열하면 바로 여(呂)자였다. 시에서의 규산(邽山)은 바로 태산이다.

호영지는 강서 익양현에서 만난 도인을 생각했다. 그들 둘은 일찍이 “변방에 가면 만날 것”이라고 약속했었는데 어찌 이분이 여 도인이 아니겠는가?

호영지는 매우 후회했다. 자기가 약속을 지키지 못하여 여동빈 신선과 사귀고 가르침을 받을 기연을 놓쳤으니 손실이 얼마나 큰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자기는 장승상의 큰일을 그르쳤고 매우 큰 업을 지었는데 그 역시 상상할 수 없었다.

그 어린 동자는 여동빈에게 지필을 갖다 주지 않아 손실과 유감을 조성했는데 역시 만회하기 어렵다.

사람들은 날마다 신에게 경배하지만 신선이 인간세상에 내려오면 보통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난다. 사람들은 오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신선과 어깨를 스치며 지나가는데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송대 장방기(張邦基)의 《묵장만록(墨莊漫錄)》에 의거함

발표시간:2009년 12월 20일
정견문장 : http://zhengjian.org/zj/articles/2009/12/20/6322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