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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윤회

나의 윤회

작자 : 계항(启航)

【정견망 2009년 6월 7일】

윤회의 진실은 수련자로 말하면 능히 인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수련하지 않는 보통사람이거나 더욱이 당문화의 영향을 매우 깊이 받은 무신론자로 말할 것 같으면 아마 지어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사실 윤회는 확실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 세상의 매 사람은 모두 한 번만 윤회전생한 것이 아니다. 아래에 내가 수련과정 중에 본 나의 과거 일부 일을 적는다.

고대(古代)를 말하면 나는 한때 깊은 숲속에서 수련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환경이 매우 고생스러웠다. 먹을 것이 없어 나무껍질을 먹었으며 가부좌하는 중에 신체는 사계절의 비바람과 번개에 시달렸으며 온몸이 먼지투성이가 되어도 꿈쩍 않고 앉아있었으며 마침내 성취하여 도를 통했고 혼자서 왕래하며 자재롭게 소요했다.

이 일세에 비록 몸은 여자이지만 옷을 입는 것을 신경 쓰지 않았고 깨끗한 것도 싫어하고 마루나 창문닦는 것도 싫어하여 늘 지저분한 것을 좋아했다. 또한 기공서에 미련이 있어 늘 깊은 산속에 들어가 초가를 짓고 혼자 수련할 생각을 했다. 어느 한 때에 다시마나 목이버섯 따위를 좋아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원래 그것들이 나무껍질의 색깔과 비슷하였기 때문인데 이전에 수련하였던, 남겨놓은 정보의 영향이었다.

또 잠을 잘 자는데 아무리 큰 일이 있어도 머리에 베게만 있으며 쿨쿨 잠을 잤다. 동수들과 함께 전단지를 돌릴 때는 늘 순조롭지 않았는데 자기를 살펴보니 여전히 이전에 수도할 때의 관념이 있어서 혼자 다니기를 즐겨하는 것이었다.

사부님께서 옷 입는 일을 다시 강조하셨기 때문에 나는 비로소 이런 면에 있어서 자신을 고치기 시작했다.

그 일세에 나는 수행하면서 늘 계곡에 가서 물을 마셨다. 계곡에 한 마리의 물고기가 있었는데 늘 나와 인사를 했다. 그래서 결연을 맺었는데 이번 생에 내 열쇠고리의 물고기 장식품이 되어 나를 따라 다닌지 11년이 되었다.

그런데 1년 전에 그것을 한번 잃어버렸다. 나는 마음이 조급하여 사방으로 찾아다녔는데, 이 일에 매우 마음을 쓰며 그것을 불렀더니 그것의 정령이 수면에서 뛰어나오듯이 남색의 유기그릇을 뛰쳐나오는 것 같았다. 나중에 그 정이 너무 무거운 것을 의식했고 그 마음을 내려놓은 후에야 알았는데 열쇠는 바로 탁자 위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나는 눈을 부릅뜨고 그곳에 몇 번이나 찾아보았으나 오히려 보지 못했으니 정이 너무 무거워 눈을 미혹시켰음을 알 수 있었다. 사부님께서 설법중에 말씀하신 바라문 수행자와 사슴의 이야기가 생각났고 정신이 번쩍들었다. 어떤 하나의 집착도, 어떤 하나의 정도 수련해 버리지 않으면 수련자로서는 극히 위험하다. 나와 작은 물고기와의 연분은 이 글을 쓸 때에 비로소 알게된 것이다.

이번 생의 남편과 나는 삼세에 부부의 연이 있었다. 남송 때는 내가 남자였고 그가 여자였다. 중화민국시기에 나는 여자, 그는 남자였다. 민국시기에 나는 대저택에서 작은 마님이었으며 만주족이 입는 치파오 입기를 좋아했다.

이 일세에 때때로 농담하듯이 남편을 도련님이라고 부르는데, 사실 그때의 관념의 반영이다. 대저택의 사람은 바로 지금 남편 가족 중의 친척이다. 대법수련 중에 나와 남편의 인연관계를 알았고 연분이 크므로 그 정(情)도 무거웠다. 정(情)이란 이 마음, 이런 물질을 버릴 때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발정념할 때 나는 생각한다. 나는 속인의 생활을 지내러 온 것이 아니다. 정(情)은 수련자가 가져야 할 것이 아니며 나는 그것을 버려야 한다. 그러자 분홍빛의 다 씹은 풍선껌 같은 것이 내 신체에 붙어 있는 것을 보았다. 한층을 벗기면 또 한층이 왔다. 꾸준히 소멸시켰으며 또 소멸시켰는데 마치 껍질을 벗기는 느낌이었다. 시간이 있으면 그것을 소멸시켰는데 보름정도의 기간동안 소멸시키자 마침내 많이 제거되었다.

어려서 밭에서 일하는데 늘 자신이 하인을 어떻게 어떻게 하라고 부리면 모든 사람이 대답하는 것으로 착각했다. 이제는 아는데 나는 이전에 대농장 주인이 되었던 적이 있었다.

근대 유럽에서는 저명한 작가가 되었고 “제인에어(19세기 영국의 작가 샬롯 브론테의 작품: 역자 주)”를 썼다. 이번 한 세에서 생긴 것은 별것 아니지만 내심으로는 아주 오만하여 명작 보기를 좋아하는데 특히 “제인에어”를 좋아한다.

한번은 이와 유사한 DVD를 보고 싶었는데 내가 이런 생각을 억제하고 그 마음을 내려놓은 후 가부좌 중에 자기가 영국의 소녀인 것을 보았고 자기가 이런 것을 좋아하는 이유를 알았다.

무수한 윤회전생 중에 나는 식물이나 동물로 전생한 적도 있었다. 예를 들면 이번생에 명절이나 생일에 남편이 무슨 꽃을 사줄까 하고 물으면 나는 저절로 “강아지풀!”이라고 대답한다. 남편은 웃으며 말한다. “이건 사기 쉽지 않아, 그러니 장미를 사줄께!”

나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풀을 좋아하지 꽃을 좋아하지 않아요.” 몇 번이나 이렇게 대답을 한 후 나는 갑갑해졌다. 그러나 깊이 따져보지 않았다. 한번은 양지바른 산비탈에 강아지풀이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을 보고 그중 하나가 나였음을 보았다.

자기가 이전에 누구였는지 알자 이번 세에 생활의 고난으로 인해 생긴 자괴의 관념이 단번에 깨졌으며 좀 자만해졌다. 나는 얼른 자기를 시정했고 조용히 사상의 변화를 관찰했다. 상계(上界)에서 사람을 보기를 얼마나 불쌍하게 보겠는가 하고 느꼈다.

때로는 우리 내심에 일종의 응어리가 있어서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에 미련을 두는데 그건 모두 선천적인 자아 본성이 아니다. 천 만 년의 윤회를 기다리는 중 우리는 끊임없이 연(緣)을 맺었고 생생세세에 우리는 우주와 셀 수없이 많은 관련이 있었다. 일사일념은 모두 그 내원이 있으며 대법수련자는 자기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알아야 한다.

관념과 집착을 자신으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이 가장 내려놓기 어려운 것은 관념이다. 어떤 자는 가짜 이치를 위하여 생명을 바칠지언정 개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관념 자체는 오히려 후천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사실 사람은 선천적인 순진함을 제외하고 일체 관념은 모두 후천적으로 형성된 것이지 자신이 아니다.”

수련자로서 법에서 자기를 귀정시켜야 생명이 비로소 승화될 수 있다. 속세의 화려함은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는 연기와 같으며 무형의 그물이다. 오로지 대법을 굳건히 수련해야만 진정으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데, 당신 천국세계 중생은 당신을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처음으로 동수와 교류중에 법리상 제고했을 때 나는 요원한 창궁에서 내 세계의 중생들이 환호작약하는 모습을 보았다.

 
길고 긴 세상의 생사윤회에 내가 누구였는지 이미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풍운이 변하는 말법시기에 법을 얻어 수련하며 중생을 구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천 만 년의 기다림은 헛수고가 될 것이다.

발표시간 : 2009년 6월 7일
정견문장 : 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09/6/7/5997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