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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과 감동: ‘불망초심(不忘初心)’과 미륵신앙

글/ 진산(秦山) 정리

【정견망】

‘초심(初心)’이란 원래 불교용어로 처음으로 불법(佛法)을 배우려는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화엄경소(華嚴經疏)》에서는 “초심은 시작이고 정각이 끝이다(初心爲始,正覺爲終)”라고 했다. 이에 대해 어떤 사람은 초심은 보살수행의 시작이 되고 깨달음을 얻어 성불하는 것은 보살수행의 결과라고 해석한다. 이를 보면 초심과 정과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제19권에는 “만약 보살이 초심을 유지할 수 있다면 후심(後心)이 함께 하지 않노라(如菩薩初心,不與後心俱)”라고 했다.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홍교대사(弘教大師)》에서는 “초심을 낸 후에 배우며 총림에 가까이 들어온다. 방편문 중에서 스승의 가르침 받기를 구한다”고 했다. 즉 불문(佛門)에 처음 발을 디딜 때 마음속에 지닌 성불(成佛)하여 중생을 이롭게 하려는 마음이 바로 초심임을 의미한다.

한편 초심을 잊지 말자는 ‘불망초심(不忘初心)’이 처음 나타난 문헌은 백거이가 쓴 《화미륵상생탱기(畫彌勒上生幀記)》다. 이 글은 백거이가 불문에 들어와 초심을 잊지 않고자 했던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그의 초심을 읽어보면 대단히 감동적이다! 필자는 백거이가 잊을 수 없는 초심을 통해 이 위대한 시인을 완전히 새로운 시각에서 보게 되었다.

당대(唐代)의 대시인 백거이는 원래 아주 독실한 ‘미륵(彌勒)’ 신도였다. 그의 경건한 정도는 지금 사람들이 보면 그야말로 놀랍고 감동적이었다. 미륵불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미래불(未來佛)’을 말한다.

백거이는 늘 미륵불상(彌勒佛像)이나 또는 화상(畫像)을 앞에 두고 다음 생의 큰 소원(大願)과 서언(誓言)을 발하곤 했다. 신앙이 있는 분들이라면 잘 알다시피 불상 앞에서 하는 소원과 맹세는 가장 엄중한 것으로 반드시 실현시켜야만 한다. 아울러 백거이는 여러 차례 반복적으로 문장 기록을 통해 자신의 내세 소원과 서원을 기록했다. 또한 이를 증거로 삼아 거듭 미륵불을 향한 결심을 표현하고 반드시 이 약속을 실현하겠노라고 표시했다.

그는 또 발원과 맹세할 때 ‘절대(絶)’란 단어와 ‘생생겁겁(生生劫劫)’이란 단어를 많이 사용했다. 여기서 ‘생생겁겁’이란 단어를 ‘생생세세(生生世世)’와 비교해보면 얼마나 대단한 표현인가! 지금껏 그 누구도 맹서하면서 이렇게까지 절대적으로 한 적은 없다. 생생세세로도 부족하다고 여겨 기어이 생생겁겁이라 한 것이다. 만약 인류가 쓸 수 있는 표현 중에 생생겁겁보다 더 대단한 단어가 있다면 내 생각에 백거이는 분명 그 단어를 사용했을 것이다. 그의 서언과 소원은 정말이지 이 정도로 절대적이었다. 필자는 다만 충격과 감동이란 단어로밖에는 표현할 수 없다.

백거이는 일찍이 전문적인 학회(學會)를 조직해 ‘일시상승회(一時上升會 역주: 동시에 미륵불이 계신 도솔천으로 올라간다는 의미)’라 이름 짓고 ‘미륵’을 신봉하며 모두들 함께 미륵의 경지(境界)로 상승하고자 희망했다.

당나라 문종(文宗) 대화(大和) 8년(834년) 63세의 백거이는 낙양(洛陽)에서 한거하며 오리 떼와 노닐고 자연을 벗 삼아 경치를 즐겼다. 유유자적하며 즐거이 지내는데 마침 성안의 승려와 거사들이 미륵상생도(彌勒上生圖)를 그리기 위한 기부금을 모집하고 있었다. 그는 바로 이때 기쁜 마음으로 붓을 들어 ‘화미륵상생탱찬병서(畫彌勒上生幀贊並序)-미륵상생탱화 찬 및 서문’를 지었다.

당시 그와 함께 미륵불 화상(畫像 역주: 불상 그림) 앞에서 예불을 올리고 발원한 사람들이 아주 많았는데 “장수사(長壽寺) 대비구 도숭(道嵩), 존일(存一), 혜공(惠恭) 등 60인과 우바새(優婆塞 남자 신도) 사량(士良), 유검(惟儉) 등 80인” 모두 약 140명이었다.

그는 문장에서 “향을 피우고 예를 올리며 큰 서원(誓願)을 발하나니 도솔천 내궁에 태어나 겁겁(劫劫)마다 생생(生生)마다 가까이 모시며 공양할 수 있길 바라나이다.”라고 했다. 또 “140명의 마음이 진실로 하나가 되고 140명의 목소리가 한목소리를 내나이다.”라고 마음과 뜻을 모았다.

이 얼마나 감동적인 장면인가! 이들의 선념(善念)과 큰 발원은 아마도 그들이 미래에 미륵불의 제도를 받고 법을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기연(機緣)을 얻게 했을 것이다. 이는 가장 신성(神聖)한 연분이다!

백거이는 또 단독으로 미륵불 화상 앞에서 발원했다.

“미륵제자 낙천(樂天 백거이)이 함께 발원하나이다. 인연을 만나 이에 머리 조아리며 다음 생에는 마땅히 자씨(慈氏 미륵)세계에 태어나 공경을 무량하게 하소서.” “자씨의 형상을 우러러보며 자씨의 이름을 부르나이다. 내세에 일시에 상생(上生)하길 바라옵니다.”

여기서 말하는 자씨는 당연히 미륵불을 가리키는데 산스크리트어를 의역한 것이다.

또 당 문종 개성(開成) 5년(840년) 69세가 된 백거이는 거의 온 마음과 힘을 다 미륵 신앙에 기울였고 또 ‘화미륵상생탱기(畫彌勒上生幀記)’를 지었다.

이 문장에서 백거이는 만년(晩年)에 늘 향불을 피우고 예불하면서 발원했는데 미륵불상이나 화상을 앞에 두고 거듭해서 정중하게 내세의 큰 소원과 서언을 발원하고, 장래에 미륵불께서 인간 세상에 법을 전하실 때 미륵불의 제도를 받아 원만하게 수련 성취하며 생생겁겁 늘 미륵불과 함께 하면서 영원히 윤회에서 벗어나길 희망했다.

“내세에는 일체 중생과 더불어 함께 미륵상생(彌勒上生)하고 자씨(慈氏)를 따라 하계에 강림하길 발원하나이다. 생생겁겁(生生劫劫) 자씨와 함께 하며 영원히 생사의 흐름에서 벗어나 마침내 위 없는 도(無上道)를 이룰 수 있길 발원하나이다.”

뿐만 아니라 백거이는 연거푸 미륵불 화상 앞에서 자신의 속마음을 명확히 드러내고 절대로 자신의 큰 소원과 서언을 잊지 않겠노라고 맹세했다. 이에 특별히 다음과 같은 문장을 지어 “초심을 잊지 않고 반드시 본래 소원을 이루리라(不忘初心,而必果本願)”고 표시했다.

그는 또 “위에 자씨께서 계신다면 진실로 이 말씀을 들으셨을 겁니다.”라고 했으니 미륵불께서 위에 계신다면 분명히 자신의 서원을 들으셨을 것이란 뜻이다. 예배를 마친 후 발원하고 이 글을 증거로 삼았으며 또 그 아래에 날짜를 기록했다.

백거이는 또 만년에 불법 수련에 대한 자신의 확고한 뜻을 표현했다.

‘답객설(答客說)’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 배운 것은 공문(空門)으로 신선을 배운 게 아니라서
그대의 이런 말은 헛되이 전해진 듯 하오
해산은 내가 돌아갈 곳 아니오
돌아간다면 마땅히 도솔천으로 돌아가리

내가 만년에 미륵상생의 업을 맺었기에 이렇게 쓴다.

吾學空門非學仙
恐君此說是虛傳
海山不是我歸處
歸即應歸兜率天

予晚年結彌勒上生業,故云.

미륵상생탱화 그림에 대한 찬 및 서문

백거이(白居易)

남섬부주(南贍部洲) 대당(大唐)나라 낙양성 장수사의 대비구 도숭(道嵩), 존일(存一), 혜공(惠恭) 등 60인과 우바새(優婆塞 남자 신도) 사량(士良), 유검(惟儉) 등 80인이 대화(大和) 8년 여름 팔계(八戒)를 받고 십선(十善)을 닦으며 설법을 공양하고 깨끗한 재물을 희사해 도솔타천궁(兜率陀天宮)에서 미륵상생 내궁의 무리들과 함께 하며 권속으로 둘러싸여 서로 장엄한 것을 그리노라. 이에 도숭 등이 고개 숙여 합장하고 향을 피워 예를 올리며 큰 소원을 발하나니 내생에는 내궁(內宮)에 태어나 겁겁생생(劫劫生生) 가까이서 친히 봉양할 수 있게 하옵소서. 본경(本經)의 말씀에 따라 99억겁 생사의 죄를 없애주소서. 미륵제자 낙천이 함께 발원하나이다. 인연을 만나 이에 머리 조아리며 다음 생에는 마땅히 자씨(慈氏)세계에 태어나 공경을 무량하게 하소서. 이에 찬(贊)하나이다.

140인의 마음이 합하여 진심으로 하나 되어
140인의 입이 하나 되어 같은 목소리를 내면서
자씨 형상 우러르며 자씨의 명칭 부르나니
내세에는 일시에 상생하게 하옵소서!

百四十心,合爲一誠
百四十口,發同一聲
仰慈氏形,稱慈氏名
願我來世,一時上生

미륵상생 탱화 화기[畫彌勒上生幀記]

남섬부주(南贍部洲) 대당(大唐) 동도(東都 낙양) 향산사(香山寺)의 거사 태원(太原) 사람 백거이가 노년에 중풍에 걸렸습니다. 육신(肉身)이 괴로워지자 늘 일체 악취(惡趣 삼악도)의 중생들을 생각하며 제 몸과 함께 고해에서 벗어나 즐거움을 얻기를 바라나이다. 이에 화가를 시켜 미륵상생경문에 따라 도솔천 천궁을 우러르고 미륵 내중(內衆)을 생각하며 단소(丹素)와 금벽(金碧)으로 형용하고 향불과 꽃과 과일로 공양하나이다.

이렇게 예를 올리고 찬양해 생기는 공덕(功德)으로 만약 저처럼 늙고 병들어 괴로운 자들이 있다면 모두 본래 소원을 얻을 수 있기를 바라나이다. 본래 소원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먼저 낙천은 삼보에 귀의해 10제(十齊)를 지키며 팔계를 받은 지 여러 해가 되었고 평소 매일 부처님 앞에 향불을 올리며 머리 숙여 소원을 발하나니 내세에 일체 중생과 함께 미륵부처님과 함께 상생(上生)해 자씨를 따라 하계에 내려오길 바라오며 생생겁겁(生生劫劫) 자씨와 함께 하여 영원히 생사의 흐름에서 벗어나 마침내 위 없는 도(無上道)를 이룰 수 있길 바라나이다.

지금은 늙고 병들었지만 이것으로 초심을 잊지 않음으로써 반드시 본래 소원을 이룰 것을 거듭 증명합니다. 위에 자씨께서 계신다면 진실로 이 말씀을 들으셨을 겁니다. 말을 마치고 예를 올리며 스스로 이를 기록하나이다. 개성(開成) 5년 3월에 씁니다.

백거이는 이처럼 자신이 미륵불께 발원한 몇 차례 큰 소원과 서언(誓言)을 전부 글로 남겼다. 이는 마치 이 글을 증거로 남겨 장래에 미륵불께서 세상에 내려와 불법(佛法)을 널리 전하실 때 스스로 기연을 잃지 않으려고 한 것처럼 보인다. 그는 이들 문장에서 마치 끊임없이 자신을 일깨우는 것처럼 보인다.

즉, ‘미래불’인 미륵불께서 장차 인간세상에서 대법을 널리 전하실 때 백거이 너는 반드시 대법을 들어야 한다! 백거이야 네가 이번 생에 남길 수 있는 문자는 모두 내생에 불법을 들을 수 있고 미륵불을 뵐 수 있는 기연이 될 것이다! 백거이야, 너는 반드시 불법을 수행해야 하며 절대로 자신이 예전에 발했던 큰 소원과 서언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낙천(樂天 백거이)에겐 늘 소원이 있으니 원컨대 금생에 세속에서의 문필을 원인으로 내세에 불승(佛乘)을 찬탄하고 법륜(法輪 파룬)을 돌리는 인연이 되기를 바랍니다.”

“부처님 세상에 나오실 때 친히 모시기 바라오니 가장 먼저 법륜 굴리시길 청하리라. 부처님 드실 적에 친히 뵙길 바라옵고 최후에 공양 올려 보리의 수기 받길 바라옵니다.”

“아울러 본래 바람은 금생에 세속의 문자로 방언(放言)과 기어(綺語)를 원인으로 내세에 불승을 찬양하고 법륜을 돌리는 인연으로 전환하고자 하노라.”[2]

백거이가 직접 기록한 이 큰 소원과 서언들은 완벽하게 보존되어 지금까지 전해져왔다! 이 얼마나 진솔한 서언인가! 이 얼마나 감동적인 큰 소원인가! 백거이의 불망초심(不忘初心)은 정말 대단하다! 그가 잊지 않으려 했던 초심은 바로 미륵불께 발한 큰 소원과 서언이다! 그는 분명 미륵불의 제자가 되어 장차 미륵불께서 대법을 널리 전하실 때 주불(主佛)의 제자가 되어 대법을 듣고 최종적으로 수련 성취해 원만할 수 있을 것이다.

백거이가 말하는 ‘미륵신앙(彌勒信仰)’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본질적으로 말해 백거이의 초심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왜 백거이는 이렇게 절대적인 큰 소원과 서언을 발했던 것일까? 대체 미륵신앙이란 무엇일까?

필자가 조사한 자료가 비록 완벽하진 않지만 독자들에게 미륵신앙이 대체 무엇인가 하는 대략적인 인식은 알려줄 수 있다. 자료를 찾는 과정에서 필자 역시 문헌과 각종 자료의 내용에서 큰 감동을 받았다.

미륵불(즉 미륵보살彌勒菩薩 또는 미륵보살마하살彌勒菩薩摩訶薩을 말하며 산스크리트어로는 Maitreya,팔리어로는 Metteyya라고 함)이며 이를 의역한 것이 자씨(慈氏)이다. 불교 경전에서 미륵불은 아일다 보살마하살(阿逸多菩薩摩訶薩)로 불린다. 또 미래불(未來佛)로도 불리며 통상 다음 세상에 오신다는 의미로 ‘당래하생미륵존불(當來下生彌勒尊佛)’로 불린다.

불교의 설명에 따르면 미륵불이 미래불로 불리는 이유는 미륵불이 후세에 인간세상에 강림해 불법을 광범위하게 전해 중생을 널리 제도하기 때문이다. [3]

당나라의 현장(玄奘)법사는 직접 인도에 가서 경전을 얻어온 후 산스크리트어에 근거해 미륵을 ‘매달리야(梅呾利耶)’라고 음역(音譯)했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여전히 미륵이란 단어가 오랫동안 유전되어 내려왔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 박혔기 때문에 전통적인 호칭을 바꾸진 못했다. 대당의 고승 현장법사 본인 역히 극히 경건한 미륵신도였다.

원래 미륵이란 명사는 산스크리트어가 아니라 토하라(吐火羅 현재 아프가니스탄 북부 지역에 있던 나라)어 메트락(metrak)을 음역한 것이다. 토하라어로 된 ‘미륵회견기(彌勒會見記)’가 세상에 유전되었다.

불교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전해질 때 초기부터 직접 전파된 게 아니라 지금의 신강(新疆) 일대 소수민족들의 중개를 거쳤다. 불교가 전해지는 과정에 미륵신앙이 극히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전혀 없다.[5]

토하라어는 원시 인도유럽어의 일종이다. 20세기 초 중국 신강에서 이 언어로 된 문서가 발견된 바 있다.

다시 말해 산스크리트어 메이트레야(Maitreya)와 팔리어 메트레야(Metteyya)는 모두 토하라어 Metrak을 음역한 것이다. 둘 다 모두 미래불이란 뜻이며 양자 사이의 확실한 연계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전혀 없다.[6]

불교에서는 전통적으로 ‘미륵’을 ‘미래불’로 여겨왔고 나중에 또 외부(주로 페르시아)의 영향을 받아 구세주(救世主 메시아) 사상이 생겨났다. 미륵신앙은 신강 및 나중에 중국 내지(內地 전통적으로 중국 한족들의 거주 지역)까지 광범위하게 전해졌고 역사가 오래되었음에도 쇠퇴하지 않은 것은 구세주 사상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7]

미륵불에 대한 신앙은 단지 중국이나 동방 뿐 아니라 서방세계와도 관련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서방은 인도가 아니라 이란에서 로마까지를 이른다. 미륵불은 아주 멀리 떨어진 이들 서방과 단순히 관련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도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8]

기원전 약 1천년 무렵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소아시아,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등을 포함한 거대한 지역에 일종의 ‘미래구세주’란 한가지 신앙이 유행했다. 기독교의 ‘메시아’(Messiah 彌賽亞)는 바로 이 구세주 신앙의 가장 대표적인 한 종류다. 이런 신앙은 성경 구약시대부터 이미 존재해왔다.

그런데 메시아는 바로 산스크리트어 메이트레야(Maitreya)와 같다. 인도의 ‘미륵’신앙은 학계에서 이미 확인했다시피 이 ‘구세주’ 신앙과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서로 영향을 주었다. 인도의 ‘미륵’신앙은 바로 ‘구세주’신앙의 한 부분이다.

‘미륵’이, ‘미래불’이 다시 말해 미래의 ‘구세주’가 된 이유는 인도에 근원이 있지만 보다 큰 범위에서 세계적인 범위에서 근원이 있으니 바로 당시 보편적으로 유행했던 ‘메시아’ 신앙의 일부분이다. 즉 ‘미륵불’은 그저 단순하고 간단한 불교 내부의 부처가 아니다.[9]

중국의 ‘미륵’신앙도 연구할 가치가 있다. 가장 초기부터 중국인들이 모시고 신앙했던 대상은 과연 어떤 부처 내지는 보살이었을까? 흔히들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이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정답이 아니다. 중국 불교 역사를 보면 가장 처음에 대중들이 신앙했던 대상은 바로 미륵보살이었다. 즉 중국불교 역사에서 처음부터 신도들의 신앙심을 얻은 분은 바로 이 미륵보살이었다.[10]

그렇다면, 중국불교의 역사가 이렇게 유구하고 존숭(尊崇)받는 불보살(佛菩薩) 역시 적지 않은데 어떻게 이를 증명할 수 있는가? 일찍이 한(漢)나라 때부터 미륵불을 소개하는 경전이 대량으로 중국어로 번역된바 있고 또 중국 신강에서 발견된 토하라어 극본 중에 ‘미륵회견기’가 존재한다.

그런데 중국 국경 안에서 가장 오래된 극본이 바로 이 ‘미륵회견기’다. 신강에서 토하라어로 씌어졌고 1970년대에 우연히 발견되었지만 중국어와 영어로 번역되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지금까지 출토된 토하라 문헌 중에서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이 극본이다. 이는 당시 이 지역에 미륵신앙이 널리 퍼져 있었음을 증명한다.

‘미륵’신앙은 이미 한나라 때부터 중국 신도들 사이에 받아들여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미륵정토(彌勒淨土)에 왕생해 내생에 미륵불과 함께 할 것을 기원했다. 이렇게 줄곧 당나라 초기까지 미륵신앙은 몹시 성행했다.[11]

미륵신앙은 지금의 신강 지역에서 널리 퍼졌고 그중에서도 가장 집중된 곳이 구자(龜玆)와 언기(焉耆)였다. 키질 석굴이 있는 지금의 배성현(拜城縣) 일대가 고대에는 구자국(龜茲國)에 속했다.[12]

키질 석굴 제17굴에는 굴문(窟門) 위의 벽에 미륵설법도(彌勒說法圖)가 그려져 있다. 그림에서 미륵은 보살의 모습으로 결가부좌를 하고 좌상(座上)에 앉아 손으로 전법륜인(轉法輪印)을 취하는데 옆에는 각각 다섯 분의 보살들이 설법을 듣고 있다.[13]

키질 석굴 제38굴에도 굴문 위에 미륵설법도가 있는데 미륵이 보살의 모습으로 좌상에 앉아 있다. 머리에는 보관(寶冠)을 썼고 상반신은 벗었는데 몸 뒤로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이 있고 목과 가슴 손목에 모두 목걸이나 보석 띠, 영락(瓔珞 구슬장식), 팔찌, 반지 등의 장식이 있다. 손은 전법륜인 자세를 하면서 유가좌(瑜伽座)로 앉아 있다. 설법을 듣는 제천(諸天) 역시 보관을 쓰고 장식 치마를 입고 있는데 온몸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이 그림은 모두 단번에 그려진 것으로 덧칠한 흔적이 없다. 그 선의 유려하고 치밀함이 아주 자유자재해 화가가 상당히 높은 경지에 도달했음을 알 수 있다.[14]

중국에서 미륵불상이 나타난 것은 아주 초기부터인데 가령 감숙성 병령사(炳靈寺) 석굴 제169호가 바로 미륵불상이다. 제작연대는 399년으로 후진(後秦) 홍시(弘始) 원년이다. 이 불상은 보살의 모습인데 머리에는 아름답고 정밀한 보관을 쓰고 있고 몸에는 영락을 걸친 채 두 다리를 교차하고 있다.[15]

이처럼 중국에서는 아주 오래 전부터 미륵불상을 만들어왔고 얼굴은 상화하고 표정이 장엄하며 머리와 몸에 다양한 장식이 있었다. 전체적인 의상이나 정신, 형태에 이르기까지 모두 지금 우리가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크게 입을 벌리고 웃고 있는 배나온 미륵불의 형상과는 큰 차이가 있다.

지금 많은 이들이 연상하는 배 나온 미륵불상은 원래 미륵의 형상이 아니다.[16]

대략 오대(五代) 이후 강절(江浙 강소와 절강성)일대의 사원에서부터 지금의 웃는 모습의 미륵불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실 이는 포대화상(布袋和尙)의 모습을 본 따서 만든 것이다.

[미륵불상의 형상과 조상에 발생한 변화를 완전히 설명하자면 내용이 너무 길어지고 또 본문에서 중요한 내용은 아니기 때문에 상세히 설명하진 않겠다.]

미륵불은 바로 미래불이다. ‘미륵하생경(彌勒下生經)’에 따르면 미륵이 인간 세상에 하생(下生)해 성불하고 중생들에게 복을 준다고 했다.

불경에서 알다시피 미륵이란 ‘만왕의 왕(萬王之王)’께서 말세(末世)에 가장 높은 곳에서 아래로 내려올 때 사용하신 불호(佛號)이고, 법륜성왕(法輪聖王)은 ‘만왕의 왕’께서 법계(法界)에 내려오셨을 때의 법호(法號 인간세상에서는 전륜성왕轉輪聖王이라고 한다)이다. 때문에 석가모니는 제자들에게 법륜성왕을 또 미륵이라고 부른다고 알려주었던 것이다.[17]

석가모니의 제자인 보현보살(普賢菩薩)이 여러 차례 언급했다시피 말법시기가 되면 미륵이 다시 태어나 법륜을 돌린다(轉法輪). 후인들은 여러 지역에 법륜사(法輪寺) 등 전륜성왕과 관련된 불상과 사찰을 건설하고 그분이 오시길 기다려왔다.

감숙성에 위치한 라보렁(拉蔔楞)사는 티베트 불교 겔룩파의 6대 사원 중 하나인데 세계 티벳학 학부(學府)로 불린다. 이 사찰의 대금와전(大金瓦殿) 안에 손에 법륜(法輪)을 든 한 존의 미륵불상이 있다.[18]

불경에 따르면 미래불 미륵(즉 전륜성왕)이 세상에 내려오실 때면 중대한 신호가 있는데 바로 ‘우담바라꽃’이 피어난다고 했다. [19]

‘혜림음의(慧琳音義)’ 8권에서는 “우담바라 꽃은 상서(祥瑞)롭고 영이(靈異)한 것에 감응한 것으로, 천상의 꽃이라 세간에는 없다. 만약 여래가 하생(下生)하고 금륜왕(金輪王 전륜성왕)이 세간에 출현하면 큰 복덕의 힘에 감응해 이 꽃이 출현한다.”고 했다.

‘무량수경(無量壽經)’에서는 “우담바라 꽃은 상서로운 조짐이다”라고 했다.

또 ‘법화문구(法華文句)’는 ‘우담바라는 신령하고 상서로우며 3천 년에 한 번 나타나는데 이때는 금륜왕(金輪王)이 출현한다’고 전했다.[20]

또 ‘대반야바라밀다경(大般若波羅蜜多經)’에서는 “사람 몸은 무상하고(人身無常) 부귀는 꿈과 같으니 제근(諸根)이 부족하지 않아도 바른 믿음은 더욱 어렵다. 더욱이 여래를 만나 미묘한 법을 얻음은 우담바라처럼 희유(稀有)하지 않겠는가?”라고 쓰여 있다.

이 문헌들은 모두 우담바라 꽃이 얼마나 드물고 희귀한 것인지 입증하면서, ‘전륜성왕’이 인간 세상에 내려오시는 복음(福音)을 인증한다고 설명한다.

우담바라 꽃은 ‘공기화(空起花)’라고도 불리는데 그 뜻은 “무에서 유가 생겨난다(無中生有)”는 것으로 이 꽃의 출현 역시 불가사의함을 말한다. 최근에 한국, 일본, 홍콩, 대만,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호주, 캐나다, 미국의 여러 주, 캐나다, 유럽 및 중국 여러 성에서도 순백의 섬세하고 수려한 우담바라 꽃이 잇따라 나타났다. 지금 법륜성왕의 우담바라 꽃은 이미 세계 각지에 활짝 피어 빙설(氷雪)과 같은 자태로 전륜성왕이 세상에 오신 것을 기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백거이의 ‘불망초심(不忘初心)’을 돌아보자. 그가 자나 깨나 잊지 않고 반복해서 ‘초심’을 강조한 것은 바로 미래불인 미륵불과 신성하고 중대한 인연을 맺어 미륵불이 세상에 내려와 대법을 널리 전하실 때 반드시 미륵불을 뵙고 불법을 들어 수련원만하고 미륵불을 따라 성스러운 불국(佛國)세계로 되돌아가기 위한 것이다. 이상은 현재 필자의 층차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에 불과하며 독자 여러분들에게는 아마 더 높고 깊은 견해가 있을 것이다.

여러분들이 만약 ‘불망초심(不忘初心)’이란 단어를 쓸 기회가 있다면 백거이의 이 ‘초심(初心)’을 기억하고 그가 죽을 때까지 잊지 않고 이 ‘초심’을 위해 중대한 서원을 세웠음을 떠올려보기 바란다.

“내세에는 일체 중생과 더불어 함께 미륵상생(彌勒上生)하고 자씨(慈氏)를 따라 하계에 강림하길 발원하나이다. 생생겁겁(生生劫劫) 자씨와 함께 하며 영원히 생사의 흐름에서 벗어나 마침내 위 없는 도(無上道)를 이룰 수 있길 발원하나이다.”

주석:

[1] 白居易,《六贊偈》
[2] 白居易,《蘇州南禪院白氏文集記》
[4]: 玄奘法師,《大唐西域記》
[5][6]: 季羨林,《梅呾利耶與彌勒》
[7][12][13][14]: 季羨林,《彌勒信仰在新疆的傳布》
[3][8][9][10][11][15][16]錢文忠,《玄奘西遊記》之《彌勒佛真相》
[17][19][20]張傑連,《彌勒佛和彌賽亞:末劫時期東西方的救世主》
[18]俞曉薇,《預言中的今天與聖者救世》

참고자료:

白居易,《畫彌勒上生幀贊並序》
白居易,《畫彌勒上生幀記》
王章,《畫彌勒上生幀贊並序》原文與賞析
白居易,《六贊偈》
白居易,《蘇州南禪院白氏文集記》
玄奘法師,《大唐西域記》
季羨林,《梅呾利耶與彌勒》
季羨林,《彌勒信仰在新疆的傳布》
錢文忠,《玄奘西遊記》之《彌勒佛真相》
張傑連,《彌勒佛和彌賽亞:末劫時期東西方的救世主》
俞曉薇,《預言中的今天與聖者救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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