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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드의 명화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보고

글/ 정심(靜心)

【정견망】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프랑스의 유명한 신고전주의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 Louis David 1748~1825년)가 1787년 그린 작품이다. 이 그림은 사실적인 표현방식으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사망할 때의 장면을 그린 것으로 소크라테스의 독실한 신앙과 진리를 위해 헌신한 정신을 드러낸다.

다비드는 사람들에게 신앙과 진리를 위해 헌신하는 정신을 격려하기 위해 이 작품을 창작했다. 감옥에 수감된 소크라테스가 사형판결을 받은 후 독약을 마시고 죽기 진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죽음의 신(邪神) 앞에서 생과 사의 선택을 내려야 할 이 두렵고 긴장된 순간에도 소크라테스의 표정은 오히려 태연하다. 그가 왼손을 하늘 높이 치켜 든 것은 설령 자신이 죽더라도 진리에 대한 신앙을 단호히 지켜낼 것이며 영원히 변치 않을 것임을 표명한다.

주변에서 슬픔에 잠겨 있는 인물들이 비극성을 더한다. 신고전주의 기법을 사용해 화면이 더욱 엄숙하고 차가운 느낌을 준다. 화면 왼쪽에서 깊은 슬픔에 잠겨 있거나 비통해하는 친지들의 모습은 진리를 위해 그 어떤 압력에도 굴하지 않는 소크라테스의 정신을 더욱 두드러지게 한다. 또 화면 중앙에 풀려 있는 수갑과 바닥에 떨어진 두루마리를 그려 사람들에게 감옥 안에서 소크라테스의 생활에 대해 떠올리게 한다.

비록 영어(囹圄)의 몸으로 수갑을 찬 상태로 감옥에 감금되어 있지만 여전히 진리와 신앙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견지하는 소크라테스의 위대한 인격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그림은 전체적으로 신고전주의의 조형규칙에 따라 의도적으로 인물의 정신세계와 감정을 형상화하는데 사실적이고 세밀한 묘사를 통해 신고전주의 미술의 기본적인 특징을 잘 보여준다.

이 그림은 지금까지 이미 2백여 년의 역사를 갖고 있지만 그림에서 표현한 진리를 견지하는 불굴의 정신은 후세에 이르기까지 큰 영향을 끼쳤다. 이 그림 앞에 서면 마음속에 온갖 감정이 밀려오는데 소크라테스가 체현한 정신은 바로 바른 신앙[正信]을 가진 사람이 지니고 있는, 강제나 폭력으로도 바꿀 수 없고 세상의 그 어떤 물욕에도 흔들리지 않는 신불(神佛)을 독실하게 믿는 신(神)의 상태이다.

나는 이 그림을 보면서 세간의 온갖 역경 속에 단련 중인 대법제자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중공사당(中共邪黨)으로 대표되는 구우주(舊宇宙)의 사악한 세력에 의해 지금까지 20년 이상 박해를 받고 있다. 생사 앞에서도 그들은 늠름하게 진선인(眞善忍) 우주 진리를 위해 두려움 없이 견지해 왔으며 각종 고문과 박해 심지어 산채로 장기를 적출당하는 잔혹한 탄압에도 굴하지 않았다.

오히려 담담하게 이들에 맞서며 온갖 역경 속에서도 진상(眞相)을 전해 미혹에 빠진 세인들을 구도하며 금생에 법(法)을 위해 세상에 온 사명을 완수하고 있다. 그들의 대선(大善)대인(大忍), 강인한 의지 및 진리에 대한 확고부동한 정신은 우주를 감동시켰으며 세계를 변화시키고 있다.

정법(正法) 형식이 추진됨에 따라 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진상을 알고 대법을 지지하기 시작했으며 대법제자들의 정의로운 행동에 탄복하고 있다. 현재 천상(天象)은 이미 변화하고 있고 중공 악당에 대한 세계적인 토벌이 시작되었다. 이는 선량하고 정의로운 역량이 이미 주도하고 있음을 대표하며 지난 몇 십 년간 대법제자들이 치러온 대가가 결코 헛수고가 아님을 보여주었으며, 대법제자들의 굴하지 않는 불후(不朽)의 정신은 앞으로 영원히 찬양받고 만고에 길이 전해질 것이다. 자고로 사(邪)가 정(正)을 이길 수는 없다.

지금 세인들이 점점 깊은 잠에서 깨어나 중공은 왜 파룬궁을 박해하는가? 중공은 대체 어떤 물건이며 파룬궁은 대체 무엇인가? 하는 등의 핵심 문제들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진상을 명백히 알게 된 사람들은 대법과 대법제자에 대해 정확히 가늠할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선(善)으로 돌아오고 본성이 드러나면 환경도 변화할 것이다. 대법제자가 생명으로 실천한 우주 진리에 대한 꺾을 수 없는 진리의 힘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으며 파룬따파는 인류가 구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다. 그는 영원히 창우(蒼宇)에 존재할 것이며 생생불식(生生不息)하며 시방세계에 그 은혜를 베풀 것이다.

대법제자는 과거 소크라테스 및 진리(眞理)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정의 인사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생명으로 이 휘황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기록했으며 대선대인(大善大忍)하고 굴하지 않는 완강한 정신으로 우주 진리의 지고무상(至高無上)함을 실증했다.

장차 법정인간(法正人間)의 시각이 도래해 대법의 전성기가 펼쳐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때 남겨진 사람들은 진상이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대법의 무량한 자비를 영원히 찬송하고 대법제자가 구해준 은혜에 감사하게 될 것이다.

대법제자가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한 불후의 정신 및 바로 잡힌 길은 후인(後人)들에게 이 단락의 웅장한 역사를 영원히 비춰줄 것이며, 후인들을 광명정도(光明正道)로 이끌고 생명이 회귀하는 방향으로 인도할 것이다.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1302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