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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고영웅인물】 천고신장 악비전(岳飛傳) (6)

동정호 전투에서 양요를 평정하다

글/ 유적(柳笛)

악비는 어려서부터 정충보국의 뜻을 세웠다(에포크타임스 삽화)

밖으로는 금나라 오랑캐를 물리치고 안으로는 여러 도적떼를 평정한 남송의 대영웅 악비는 충의를 위해 나라에 몸을 바쳤다. 남과 북으로 원정하고 싸우면서 그는 혁혁한 전공(戰功)을 세웠다. 소흥(紹興) 5년(1135년) 악가군(岳家軍)이 양요(楊么)를 평정한 동정호 전투는 악비의 군사일생에서 가장 놀라운 걸작이었다.

당시 우승상(右丞相) 장준(張浚)이 악비 군중에서 독군(督軍)을 맡고 있었다. 출전에 앞서 그는 악비에게 걱정스럽게 말했다.

“잠시 군사를 멈추고 내년에 다시 좋은 계획을 세워봅시다.”

남송에 이름이 비슷한 장준(張浚)과 장준(張俊)은 모두 항금의 장수이자 조정대신이라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사실 장준(張浚)은 묘유의 변(苗劉之變 역주: 1129년 묘부苗傅와 유정언劉正彥이 고종을 핍박하려던 반란) 때 근왕(勤王)의 공을 세워 고종에게 재상 겸 추밀사(樞密使)에 중용된 인물로 전국의 군대를 총괄했다.

반면 장준(張俊)은 ‘중흥 4장수(역주: 남송을 부흥한 4대 명장으로 한세충, 유기, 악비, 장준을 말한다)’의 하나로 일찍이 악비의 상관이었으나 나중에 악비에 대한 질투심 때문에 간신 진회(秦檜)에게 붙어 억울한 사건을 만드는데 동참해 악비를 죽인 죄인의 하나다.

이렇게 망설이는 독군을 앞에 두고 악비는 신심을 가득 담은 말로 대답했다.

“조금만 더 기다려주시면 8일 내로 적을 깨뜨리겠습니다!”[1]라고 했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반군이기에 남송의 재상을 이렇게 걱정스럽게 만들었고 악비는 또 어떤 기묘한 계략으로 강적을 신속하게 물리칠 수 있었을까?

남송의 우환이 된 동정호의 양요

양요(楊么)는 일찍이 도적 종상(鍾相) 부자의 소위 ‘거사’에 가담한 적이 있지만 사실 그들은 모두 역모를 꾀한 도적들이었다. 북송 말년의 종상은 유명한 무당으로 “귀천을 똑같이 대하고 빈부를 고르게 한다(等貴賤 均貧富)”는 기치 하에 백성을 미혹시키며 재물을 끌어 모았다. 고종이 하북 병마대원수로 있을 때 종상이 3백명의 민병으로 소위 ‘근왕(勤王)’병을 조직했다. 고종이 등극한 후 이 부대는 종상의 사적인 부대로 변했다.

육상전투에 능했던 서북의 악가군이 양요의 수군을 물리치는 것은 큰 고험이었다.(에포크타임스)

건염(建炎) 4년(1130년) 3월 왕으로 자립한 종상이 전투에 패배해 사망하자, 양요는 다른 수령들을 집결시켜 30여 개의 수채(水寨 수적들의 영채)를 만들고 수만 명에 달하는 수군(水軍)을 조직해 계속해서 조정에 대항했다. 이 난세의 도적들은 사치스런 탐욕이 극에 달해 백성들의 토지를 강제로 빼앗았을 뿐만 아니라 ‘법집행’을 구실로 멋대로 살인방화를 저질렀다. 가장 심각한 것은 양요에게 심지어 나라를 팔아먹을 마음마저 있었던 것이다.

《송사(宋史)》의 기록에 따르면 금나라 괴뢰정부였던 제(齊)나라의 이성(李成)이 여러 차례 모의해 군사를 합칠 준비를 했다. 당시의 충의지사(忠義之士)들이 모두 공동의 적을 상대로 적개심을 불태우며 금의 침략에 저항할 즈음 양요의 이런 행동은 민족의 대의를 망치는 것이다. 양요는 남송 조정에 있어 금나라, 제나라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우환이었다. 고종의 군신들은 양요 무리에 대해 “뱃속의 해악이니 먼저 제거하지 않으면 나라를 세울 수 없다”[2]고 했다. 때문에 여러 차례 병력을 동원해 토벌하거나 초무(招撫)에 나섰지만 모두 실패로 끝났다. 지난 4년간 송군(宋軍)은 속수무책으로 당혹한 국면에 빠져있었다.

양요가 이렇게 다년간 악행을 저지를 수 있었던 주요 원인은 동정호의 지리적인 위치 때문이다. 그는 “육지 경작과 수전(水戰)” 책략을 사용해 봄여름에 수위가 높을 때는 관군이 출병할 수 없으니 논밭을 경작하면서 휴식을 취하고 가을과 겨울 수위가 낮아지면 반군이 식량을 수거해가고 물에서 관군을 상대하는 것이다. 아울러 양요의 영채(營寨)에는 천명 이상을 태울 수 있는 약 30척의 거대한 전투선과 수백 척의 작고 빠른 배들이 있어서 수상작전에서 신출귀몰해 거의 패배한 적이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서 고종이 양요를 평정하는 어려운 임무를 악가군에게 넘긴 것이다.

소흥 5년 4월 악비는 담주(潭州 지금의 호남 장사)에서 군대를 출발시키며 전략을 세우기 시작했다. 악가군은 대부분 서북 출신이라 육상전투에는 뛰어났지만 수군과 싸워 이기는 것은 하나의 큰 고험이었다. 하지만 악비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용병에 고정적으로 정해진 법이란 없다. 오직 어떻게 병사를 사용할 것인가만 볼 뿐이다.”[3]라고 했다. 하물며 나라가 어려운데 대장(大將)의 신분인 악비가 어찌 쉽게 물러설 수 있겠는가?

악비상[이천명(李天明)/에포크타임스]

8일 기한의 신묘한 계책

양요 작전의 특징에 근거해 악비는 우선 그와 반대로 행동했다. 일단 가을과 겨울에 병력을 동원하는 관례를 바꿨다. 악가군은 봄여름 작전을 통해 반군의 경작계획을 깨뜨려 근본적으로 적의 식량공급을 단절시켰다. 이어서 악비는 군대를 파견해 여러 곳으로 가는 길목을 막고 적이 식량을 운반하지 못하게 하여 적군의 군심을 어지럽게 했다.

둘째, 사상자를 줄이기 위해 투항권유와 공격을 결합하는 전술을 사용했다. 양요가 도리를 잃어 돕는 자들이 적으니 악비가 인의(仁義)의 군대가 나선다면 많은 수령들이 자발적으로 귀부할 것으로 보았다. 이렇게 양요의 병력을 약화시킨 후 적의 수군은 수군으로 맞선다면 승산이 크게 올라갈 것이다.

처음 투항권유 소식이 반군의 수채(水寨)에 전해지자 정세를 파악한 몇몇 수령들이 몰래 투항해왔다. 그중 황좌(黃佐)라는 이름의 적장(敵將)은 즉각 수하에게 말했다.

“나는 악(岳)원수의 호령이 산과 같아 무시할 수 없다고 들었다. 만약 그를 상대한다면 우리는 모두 목숨을 부지할 가능성이 없으니 지금 빨리 투항하느니만 못하다. 악 원수는 사람을 진실하게 대하니 반드시 우리를 선처해주실 것이다.”[4]

그리고는 즉각 무리를 이끌고 담주로 와서 항복을 청했다.

과연 악비는 황좌를 몹시 아꼈고 즉석에서 칠품(七品) 관직을 수여하고 또 그 무리들을 위로하면서 환대했다. 이 자리에서 악비는 그와 나란히 앉아 등을 어루만지며 양요를 평정할 첫 번째 전투를 부탁하면서 아주 정중하고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자네는 사리와 순역(順逆)을 분명히 아는 사람이니 만약 적을 죽여 공을 세운다면 제후에 봉해지는 것이 문제겠는가? 나는 자네를 동정호 반군 속으로 돌려보낼 생각이니 제압할 수 있다면 포획하고 투항을 권할 수 있다면 투항하게 만들면 어떻겠는가?”[5]

황좌는 반군 수령으로서 공을 세워 죄를 속죄할 기회를 얻었으니 자연히 마음에서 우러나온 감격으로 죽음으로 보은할 것을 맹세했다. 그는 즉각 몸을 움직여 악가군의 선봉이 되었다. 이렇게 전투에 나선 처음 두 달간 악비는 거의 병력을 사용하지 않았고 다만 포로들에게 상을 내리고 석방해 그들이 자유롭게 살아가게 했다. 또 이를 이용해 반군의 사기를 꺾고자 했다.

현지의 한 관리가 악비가 직무를 소홀히 안다고 의심해 조정에 보고하려 했다. 장준(張浚)은 비록 악비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진 못했지만 그의 품행을 굳게 믿었기에 그를 가로막으며 말했다. “악비는 충효의 인물이니 용병술이 깊고 멀리 생각하는데 어찌 함부로 논의할 수 있단 말이냐?”[6]

그러나 장준은 여전히 큰 적을 앞에 두고 내년에 다시 좋은 계획을 세우는 것이 나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악비는 내년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고 8일 내로 적을 격파하겠노라고 장담했다. 장준이 믿지 못하며 연달아 적을 격파할 묘책이 무엇인지 캐물었다. 악비는 그제야 비로소 “수구(水寇 물 도적)는 수구로 공격한다”는 계획을 그에게 털어놓았다.

악비는 “수전(水戰)이 적의 장기이자 우리의 단점이라면 단점으로 장점을 공격하기란 물론 아주 어렵습니다. 만약 적의 장수를 이용해 적군을 이끌게 한다면 적군의 협력을 박탈하고 적군의 심복을 이간시켜 양요를 고립시킬 수 있습니다. 때가 되어 관군을 파견해 공격하면 반드시 8일 내로 적군의 여러 수령을 체포할 수 있습니다.”[7]

《역대군신도감(曆代君臣圖鑒)》에 나오는 악비의 초상. 하버드 도서관 소장.

적으로 적을 물리친 악비의 신산(神算)

악비의 계획을 들은 장준은 비로소 안심하고 싸움을 독려하기에 이른다. 황좌도 사명을 욕되게 하지 않기 위해 양요의 수하들 중 가장 용감한 장수인 양흠(楊欽)의 투항을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이 소식을 들은 악비는 친히 군영을 나와 그를 접견하고는 양흠에게 관직을 하사하고 주연을 베풀었다. 뿐만 아니라 고종이 자신에게 하사했던 금으로 된 허리 띠와 전포(戰袍)까지 모두 양흠에게 선물로 주었다. 양흠은 악비의 이런 간절하고 성대한 예우에 깊이 감동했고 투항이 너무 늦은 것이 한스러울 뿐이었다. 나중에 그는 악비의 유력한 조수가 된다.

양흠은 먼저 동정호를 돌면서 여러 반군 두령들에게 투항을 권유했다. 이렇게 되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양요는 이미 완전히 고립되었다. 그 후 양흠은 또 2가지 아주 중요한 계책을 제안했다. 하나는 물을 빼서 강으로 직접 들어가는 것이었다. 반군의 법보(法寶)인 거대한 전투선은 반드시 한 길이 넘는 물에서만 통행할 수 있었다. 그러자면 동정호수의 제방을 수리해야 했는데 양흠이 바로 댐과 둑을 지키는 가장 중요한 인물이었다.

두 번째는 수초로 길을 막는 것이다. 양요의 전투선은 바퀴에 의해 움직이는데 호수 바닥에 수초가 가득해 바퀴에 감기기만 하면 배를 움직일 방법이 없게 된다. 움직임이 불편한 전투선은 악가군의 가장 좋은 전투장소인 육지와 별 차이가 없게 된다.[8]

악비가 양흠이 투항하러 왔다는 말을 듣고는 기뻐하면서 “양흠이 투항하러 왔다면 도적들 내부의 심복이 이미 붕괴된 것이다!”라고 한 게 전혀 이상하지 않다. 양흠의 제안은 어느 것 하나 양요의 급소를 적중하지 않은 게 없었다.

큰 싸움이 벌어진 당일 악비는 군사들에게 큰 뗏목을 타고 항구마다 모두 막게 했다. 또 사람을 파견해 작은 배로 물이 얕은 곳에서 적을 모욕하면서 일부러 양요를 화나게 만들었다. 양요는 과연 계략에 걸려들었고 경솔하게 병력을 동원해 싸움에 나섰다. 거대한 함선이 수초에 걸려 앞으로 나가지 못하자 적의 위력이 사라져버렸다. 악가군 용사들은 이 틈을 타서 용맹하게 공격했다. 양요는 포위를 돌파하려 했지만 뜻밖에도 각 항구마다 이미 악가군이 지키고 있어 도주할 곳조차 없었다.

양요는 ‘정충악비(精忠岳飛)’란 깃발이 꽂힌 많은 전선들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것을 보고 다급한 나머지 물에 뛰어들어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오히려 악가군 우고(牛皋) 등에게 생포되었고 결박되어 악비 앞에 끌려와 최후의 처벌을 받았다. 동정호 전투가 끝나가자 반군의 잔당들이 어찌 정의의 군대를 상대할 수 있겠는가, 남은 적들도 산이 무너지듯 잇따라 패배했다.

조서를 받들어 전투를 완벽하게 끝낸 악비는 불과 두 달만에 한 지역을 할거하던 강력한 세력을 평정했다. 전체 과정에서 늘 목격자였던 장준은 악비에 대해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악후의 계책은 신묘하구나!(岳侯神算也)”[10]

(계속)

주석:

[1]出自《宋史》卷365:會召浚還防秋,飛袖小圖示浚,浚欲俟來年議之。飛曰:“已有定畫,都督能少留,不八日可破賊。”

[2]出自《建炎以來系年要錄》卷86。

[3]出自《宋史》卷365:飛所部皆西北人,不習水戰,飛曰:“兵何常,顧用之何如耳。”

[4]出自《宋史》卷365:賊黨黃佐曰:“嶽節使號令如山,若與之敵,萬無生理,不如往降。節使誠信,必善遇我。”

[5]出自《宋史》卷365:飛表授佐武義大夫,單騎按其部,拊佐背曰:“子知逆順者。果能立功,封侯豈足道?欲複遣子至湖中,視其可乘者擒之,可勸者招之,如何?”

[6]出自《宋史》卷365:浚曰:“嶽侯,忠孝人也,兵有深機,胡可易言?”

[7]出自《宋史》卷365:飛曰:“王四廂以王師攻水寇則難,飛以水寇攻水寇則易。水戰我短彼長,以所短攻所長,所以難。若因敵將用敵兵,奪其手足之助,離其腹心之托,使孤立,而後以王師乘之,八日之內,當俘諸酋。”

[8]出自《鄂國金佗續編》卷28:欽樂爲用,獻策雲:“麼所恃者舟檝如望三州、大小德山之類,非一丈水不可行。洞庭湖水舊不及丈,麼置堰閘,十餘年間,所以彌漫。欽本任閉塞之責,盡知其詳。乞二十人往開堰水入大江,使舟船不能動。又麼船皆用車輪,乞以青草數千百萬束散之湖中,其輪必有窒礙。”王從之,兩月果破賊。

[9]出自《宋史》卷365:黃佐招楊欽來降,飛喜曰:“楊欽驍悍,既降,賊腹心潰矣。”

[10]出自《宋史》卷365。@*#

【천고신장악비전(千古神將岳飛傳)】 에포크타임스 시리즈 문장에서 전재

 

원문위치: http://www.epochtimes.com/gb/18/10/6/n10765748.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