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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야기: 꿈속 신의 점화로 명태조에게 귀의한 상우춘

글/ 여문(呂文)

【정견망】

명나라 태조 주원장(朱元璋) 휘하에 전투에 능한 상우춘(常遇春)이란 맹장이 있었다. 자는 ‘백인(伯仁)’ 호는 ‘연형(燕衡)’이다. 상우춘이 처음부터 주원장을 따른 것은 아니고 그가 주원장의 수하가 된 데는 신기한 일화가 하나 있다.

원나라 말 조정이 어리석고 부패해 백성들이 편히 살기 힘들어지자 각 지역의 영웅호걸들이 앞을 다퉈 기의(起義)했다. 상우춘도 기아와 빈곤한 생활을 참을 수 없어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인근 의군 수령인 유취(劉聚) 휘하에 들어갔다. 유취는 상우춘이 용감무쌍한 것을 보고 즉시 그를 후대하며 자신의 심복처럼 여겼다. 하지만 유취에게는 큰 뜻이 없었고 다만 난세를 이용해 약탈이나 하는 큰 도적에 불과했다. 웅대한 뜻을 품고 있었던 상우춘은 이 때문에 고뇌에 빠졌다.

지정(至正) 15년(1355년), 유취가 무리를 이끌고 화주(和州 지금의 안휘 화현和縣) 일대를 약탈했다. 마침 주원장 역시 군대를 끌고 화주를 공격하려 했다. 당시 어느 날 대낮에 상우춘이 유취의 군영에서 낮잠을 자는 짧은 순간 꿈속에 한 도사가 그에게 다가와서 말하는 것을 보았다. “일어나, 일어나 빨리 일어나게! 이곳은 네가 편히 있을 곳이 아니야. 네 명에 따를 주공이 왔네.”

상우춘은 당시 곧 깨어났다. 비할 바 없이 뚜렷한 꿈에 그는 분명 신인(神人)이 자신을 점화해주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는 즉시 지금 화주에 유취 외에 또 어떤 세력이 있는지 알아보았다. 그러자 주원장의 의군 역시 이곳에 왔음을 알았다. 그가 평범한 백성으로 가장해 주원장의 인마를 관찰해보니 규율이 엄격했고 백성을 해치지 않았다. 아울러 주원장을 직접 보니 다가가기 쉬운 풍모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신인의 점화와 자신이 직접 본 것을 종합한 그는 주원장이야말로 자신의 주공임을 알았다. 상우춘은 즉시 과거의 모든 것을 버리고 주원장을 따르기로 굳게 결심했다. 이때부터 여러 차례 전공을 세워 명나라 개국공신이 되었다. 관직은 중서평장군국중사(中書平章軍國重事)겸 태자소보(太子少保), 악국공(鄂國公)에 봉해졌고 사후에 개평왕(開平王)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무(忠武)’로 태묘(太廟 황실의 사당)에 배향됐다. 사실 중국 역사상 역대로 조대(朝代)가 일어나거나 나라를 얻은 과정에는 모두 이런 신적(神跡)들이 많이 발생했다. 이는 또한 중국 역사는 줄곧 신(神)이 계통적으로 안배했음을 충분히 설명한다. 각 왕조(王朝)는 모두 신의 뜻에 따라 교대하며 동토신주(東土神州)를 관장한 것이다. 아울러 이 과정에 중국의 신전문화를 이어왔다.

그러나 중공 홍조(紅朝)의 봉기 과정에는 아무런 신적(神跡)도 없었다. 나중에 ‘공산당선언’을 보니 그 첫 구절이 “하나의 유령, 공산주의라는 유령”이라고 되어 있었다. 유령이라면 바로 악령(惡靈)・사령(邪靈)이 아닌가? 여기서 우리는 원래 공산당의 흥기와 권력장악의 배후에는 정신(正神)의 안배가 전혀 없었고 오직 사령이 동방 고국(古國)이 허약한 시기를 틈타 침입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인간세상에 드러난 표상은 바로 중공이 그럴듯한 거짓말로 사람을 속여 국군(國軍)의 항전 성과를 훔쳤고 국난(國難)을 이용해 권력을 차지한 것이다. 이 때문에 중공은 역사상 그 어떤 왕조와도 다르니 그것은 사령이 염황의 자손을 해치기 위해 조종해서 나온 것이다. 중공은 절대 중국이 아니며, 중공이 멸망하지 않으면 국난은 그치지 않는다. 중국을 사랑한다면 반드시 중공을 버리고 미워하며 멀리 떨어져야 한다.

자료출처: 《전승야문(剪勝野聞)》, 《명사(明史)》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617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