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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고영웅인물】 천고신장 악비전(岳飛傳) (5)

뛰어난 지략과 용기로 강남 평정

글/ 유적(柳笛)

악비는 어려서부터 정충보국의 뜻을 세웠다(에포크타임스 삽화)

어려서 군문(軍門)에 들어와 건강을 수복하기까지 악비는 8년간 전장을 누볐고 몸소 2백여 차례의 전투를 치른 후 마침내 정예부대를 이끄는 청년장수가 되었다. 금병(金兵)이 물러난 후 과거 송군의 패잔병들이 도적으로 전락해 계속해서 강서(江西)와 양호(兩湖 호북과 호남) 지역에서 난을 일으켰다. 악비의 군대는 잠시 쉴 틈도 없이 곧바로 도적떼 평정에 투입되었다.

소흥(紹興) 원년(1131년) 정월 10일 악비는 조정의 명을 받고 강회초토사(江淮招討使) 장준(張俊)을 따라 이성(李成)을 토벌하러 나섰다. 이성은 자칭 ‘이천왕(李天王)’으로 금나라 병사들이 남침한 혼란한 시기에 강회(江淮)지역을 침범했다. 그 후 강주(江州 지금의 강서 구강시 일부)에 주둔했는데 병력이 몇 십 만에 달했으며 강남을 석권하려는 뜻이 있었다. 때문에 남송 조정에서는 그를 뱃속의 큰 우환처럼 여겼다. 장준은 혼자서는 적을 상대할 수 없다고 여겨 지략과 용기가 삼군에서 으뜸이었던 악비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조정에 건의했던 것이다.

신묘한 계책으로 이성을 평정

2월 악비는 신속하게 진군했고 장준을 따라 홍주(洪州)에 주둔했다. 이후 적의 효장(驍將 용맹한 장수) 마진(馬進)이 선봉으로 나서 십만 병사를 이끌고 연달아 영채를 설치하고는 송나라 군사와 강을 마주하고 대치했다. 당시 적의 사기가 상당히 위압적이었다. 큰 적을 마주한 장준이 장군 막사에서 회의를 열자 여러 장수들이 앞다퉈 의견을 제출했고 병력을 두 갈래로 나눠 공격하기로 했다. 행군 작전의 구체적인 조치에 대해 말하는데 악비가 의견을 제시했다. 그는 마진의 성격이 “탐욕스럽고 뒷일을 고려하지 않는” 특징에 근거해 기병(奇兵 기습공격)으로 이길 수 있다고 건의했다.

악비는 지략으로 이성의 10만 적병을 물리치고 뛰어난 공을 세웠다. 그림은 《북관유적도첩(北關遺跡圖帖)》 중에서 〈출기파적도(出奇破賊圖)〉

그의 계획은 먼저 3천의 기병을 파견해 장강 상류에서 강을 건너 완전히 적의 허를 찌르는 것이다. 또 악비와 악가군이 선봉을 맡길 원했다. 악비는 강을 건넌 후 부대를 이끌고 적진 깊숙이 들어가 마진 영채의 우익(右翼)에 맹공을 퍼부었다. 또 다른 송나라 군대가 반대쪽에서 협공하자 과연 마진은 크게 패했고 5만의 적들이 포로로 잡혔다. 마진은 잔여부대를 이끌고 황급히 도망쳤지만 악가군의 계속된 추격을 받았다.

마진이 어느 흙다리 앞에서 이르러 강을 건너려는데 뜻밖에도 갑자기 다리가 무너지면서 퇴로가 막혀버렸다. 어쩔 수 없게 된 마진이 5천 병력을 이끌고 반격에 나섰다. 이때 악비가 다시 한 번 뛰어난 활솜씨를 보여주었다. 단 한발로 적의 선봉장을 죽이자 뒤이어 악가군 용사들이 용맹하게 나서자 적의 무리들이 흩어져버렸고 마진은 균주(筠州)로 달아났다. 이튿날 마진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병력을 총동원해 송군(宋軍)과 결전을 벌이려 했다. 하지만 악비에겐 이번에도 따로 계획이 있었다. 그는 겨우 200명의 소수 병력을 이끌고 ‘악(岳)’자 깃발을 높이 치켜들고 성 밖에서 다가왔다.

적병들이 보니 악비의 세력이 미미한지라 경솔하게 공격에 나섰다. 하지만 양측이 교전한지 얼마 되지 않아 갑자기 사방에서 수많은 송군이 나타나 도처에서 공격해왔다. 병력과 형세가 갑자기 역전되자 크게 놀란 마진의 부대는 전투의지를 상실했고 8천의 인마가 전부 항복을 원했다. 이 과정에 마진은 줄곧 패배했고 여러 차례 매복에 걸려 5천 병력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더 이상 저항할 힘마저 잃었다. 그의 주변에는 겨우 10여 명만 남았다.

한편 적의 대장 이성은 이 소식을 듣고 10만 대군을 이끌고 송군과 결전에 나섰으니 장준에게 크게 패했다. 악비는 승기를 타고 추격에 나섰고 강서 무령(武寧)에 30리에 걸친 진영을 설치하고 수수(修水) 강변에서 수만의 적병과 최후 결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막 큰 싸움이 벌어질 무렵 신(神)의 도움이 있었다. 갑자기 불어난 수수의 강물이 강을 건너려던 이성의 길을 막아버린 것이다. 악가군이 천시(天時)와 지리(地理)의 도움까지 받게 되자 적군은 싸우지도 않고 무너져버렸다.

정사(正史) 사료의 기재 따르면 “북을 울리거나 화살 한발 쏘지 않고 한 읍(邑)이 떨어졌다.”[1] 이성은 겨우 몸만 빠져나가 제(齊 역주: 금나라의 괴뢰정부)나라 정권에 의탁했다.

악비의 서법

편지 한통으로 장용의 항복을 받다

다음 토벌 대상은 5만의 병력을 가진 장용(張用)이었다. 그는 악비와 같은 고향 출신으로 용맹하기로 유명했는데 흔히들 ‘장망탕(張莽蕩 역주: 망탕은 행동이 거칠고 사납다는 의미)’이라 불렀다. 그의 아내 역시 호가 ‘일장청(一丈青)’으로 무예실력이 비범한 두령이었다. 그들은 종택이 개봉을 지키고 있을 때는 나라를 위해 힘을 다했으나 두충이 부임한 이후 산에 들어가 도적이 되었다.

출정하기 전에 장준이 이번에도 악비의 도움을 청했다.

“악공(岳公)이 아니면 적을 이길 수 없소!” 그러면서 “병력은 얼마나 필요합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악비는 칼로 베듯이 단호하게 “이 적은 저 혼자 가서 맨손으로 잡을 수 있습니다!”[2]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장준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3천의 병마를 주어 악비를 돕게 했다. 악비는 이번에는 무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장용에게 사람을 보내 친필서신을 전달했다. 서신에서 악비는 장용에게 고향사람의 자격으로 충고하면서 자신은 싸우고 싶지 않으며 투항하면 나라의 중용을 받아 공명과 영화를 누릴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병력을 잃고 포로로 잡히거나 또는 목숨마저 잃고 명예도 사라진다고 했다.[3]

악비는 구구절절 간절한 마음을 담아 적장을 정으로 움직이고 이치로 일깨워주었다. 사실 예전 전투에서 장용은 악비 휘하의 장수에게 패배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런 간절한 편지까지 받고 보니 어디서 싸울 용기가 나겠는가? 장용은 곧 아내와 상의한 후 편지를 가져온 사자에게 절을 하며 “악공은 제게 부친과 같은 분이니 어찌 투항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악비는 이렇게 단 한명의 병사도 잃지 않고 수만의 적병을 거둬들였다.

이 뛰어난 전공(戰功)에 대해 장준은 부하들에게 이렇게 감탄했다.

“악공의 모략(謀略)은 우리 누구도 당할 수 없네!”

군공(軍功)을 조정에 보고할 때가 되니 악비가 당연히 첫 번째가 되었다.

조성을 평정하고 맹장 양재흥을 얻다

소흥 2년(1132년) 양호(兩湖) 지역에 떠돌이 도적들이 소란을 피우자 조정의 새로운 우환이 되었다. 악비는 여러 차례 전공을 세웠기 때문에 이번에는 사령관(主帥)으로 출정했다. 적을 잡자면 우선 그 왕을 잡아야 하는데 떠돌이 도적들 중 10만의 병력을 지닌 조성(曹成)의 세력이 가장 강대했다. 악비는 첫 번째 평정 대상으로 조성을 택했다. 악가군이 직접 온다는 소식을 들은 조성은 차마 방심하지 못하고 직접 군사들을 독려해 작전에 나섰다. 또 악비 진영에 사람을 파견해 군정을 염탐하게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기민한 악가군의 눈을 속일 순 없었다. 적의 첩자는 체포되어 곧장 악비앞에 끌려와 심문을 받았다. 악비는 장계취계(將計就計)하기 위해 첩자 앞에서 일부러 연기를 했다. 심문 도중 거짓으로 일이 생긴 것처럼 꾸며 막사를 나와 군사들에게 군량미 상황에 대해 질문했다. 악비가 막사 밖에서 군사적인 업무에 대해 토론하고 있을 때 막사 안에 있던 첩자는 자연히 귀를 쫑긋 세우고 듣게 되었다.

군사(軍士)가 다급하게 악비에게 말하는게 들렸다.

“곧 식량이 떨어지는데 아직 보급이 없는데 어떻게 할까요?”

악비 역시 “빨리 재촉해보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철군할 수밖에 없다네!”라고 하는 말이 들려왔다. 그는 마치 소문이 ‘새나가면’ 안된다는 듯이 갑자기 말을 멈췄다. 악비는 장군막사로 돌아오면서 일부러 실망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마치 방금 말실수를 안타까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계속해서 첩자를 심문했고 나중에 ‘양민(良民)’으로 인정해 풀어주었다. 이 염탐꾼은 곧장 적진으로 돌아가 긴급하게 보고했다. 조성이 듣고는 크게 기뻐하면서 다음날 출병 준비에 들어갔다.

하지만 누가 알았으랴! 악비는 이미 풍성한 저녁잔치를 열어 군대를 먹이고 한밤중에 몰래 적진에 다가갔다. 이튿날 날이 새자마자 악가군이 갑자기 나타나 맹렬한 공격을 퍼부었다. 갑작스런 기습에 당황한 적들은 미처 방비하지 못하고 전군이 무너졌다.

하지만 조성은 달아나 또 수만의 병력을 모아 계령(桂嶺)의 세 관문(關隘)을 지키며 저항했다. 악비는 일반적인 병법(兵法)에 따라 진세(陣勢)를 펼치는 대신 8천 병사에게 좁은 관문의 입구를 공격하게 했다. 순식간에 벼락처럼 전고(戰鼓)가 울리며 병사들의 드높은 함성소리가 하늘을 흔들었다. 적들은 악가군의 용맹한 모습에 질려버렸고 마치 새나 짐승처럼 흩어져버렸다. 결국 이 전투에서 조성이 패배했고 나중에 한세충(韓世忠) 장군에게 투항하면서 끝났다.

조성을 평정하는 전투 중에 악가군 역시 보기 드문 패배를 겪었다. 조성의 대장이던 양재흥(楊再興)이 전투 중 맹렬한 반격에 나서 악비의 친동생 악번(岳翻)과 또 다른 장수를 잃은 것이다. 조성이 투항한 후에도 양재흥은 여전히 완강히 저항했다. 결국 악비의 애장인 장헌(張憲)에게 패배했다. 당시 양재흥이 깊은 산속으로 숨어들자 장헌은 그를 죽여 원수를 갚고자 했다. 하지만 그는 뜻밖에도 스스로 포박을 자처하며 살려주기를 청했다. “나는 사내대장부니 마땅히 나를 데려가 악공을 만나게 해주시오!”[4]

비록 적이고 또 친동생을 죽인 원수였지만 악비는 원수를 갚는 대신 오히려 양재흥의 비범한 모습에 감탄했다. 나라의 대의(大義)를 위해 악비는 사적인 원수를 내려놓고 그를 풀어주도록 했다. 그리고는 “내가 그대를 죽이지 않았으니 그대는 마땅히 충의로 나라에 보답해야 할 것이오!”라고 훈계했다. 양재흥은 악비의 넓은 흉금과 정신에 감동해 즉각 그렇게 하겠노라고 응답했다. 이때부터 그는 악가군에서 가장 용감한 또 하나의 맹장(猛將)이 되었다.

이렇게 채 2년이 못되는 기간에 악비가 이끄는 군사들은 동과 서를 토벌하면서 쉬지 않고 각 지역 도적들을 평정했다. 이에 그의 성망과 실력은 이미 당시 노장들과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높아졌다. 하지만 악비가 원한 것은 이게 아니었다. 그에게 있어 이것은 중원으로 북상해 금나라를 물리치고 두 분 황제를 모셔오는 준비에 불과했다. 악비의 웅대한 뜻은 바로 천하 평정에 있었다.

일찍이 어떤 사람이 그에게 물었다.

“언제쯤 천하를 평정할 수 있겠습니까?” 다시 말해 악비에게 언제쯤 동서로 떠돌며 정벌하는 생활을 끝낼 수 있을지 물었던 것이다. 그러자 악비가 대답했다.

“문신이 돈을 아끼지 않고 무신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천하가 태평해질 것입니다.”[5]

(계속)

주석:

[1] 出自《鄂國金佗續編》卷27。

[2] 出自《鄂國金佗稡編》卷5:俊召先臣語曰:“非公無可遣者。”問:“用兵幾何?”先臣曰:“以飛自行,此賊可徒手擒!”

[3] 出自《鄂國金佗稡編》卷5:吾與汝同裏人,忠以告汝:南薰門、鐵路步之戰,皆汝所悉也。今吾自將在此,汝欲戰,則出戰;不欲戰,則降。降則國家錄用,各受寵榮;不降則身隕鋒鏑,或系累歸朝廷,雖悔不可及矣。

[4] 出自《三朝北盟會編》卷151:再興曰:“我是好漢,當執我見岳飛。”遂受縛。飛見再興,解其縛曰:“我與汝是鄉人,汝好漢也,吾不殺汝,當以忠義報國家。”再興受命歸之。

[5] 出自《宋史》卷365。

【천고신장악비전(千古神將岳飛傳)】 에포크타임스 시리즈 문장에서 전재

 

원문위치: http://www.epochtimes.com/gb/18/10/6/n10765712.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