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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선(兵仙) 한신(韓信)

작자/신광(晨光)

【정견망】

옛날 사람들은 항우에 대해 “백번 싸워 백번 이겨 가는 곳마다 바람처럼 휩쓸었으며”, “신묘한 용기는 천고에 둘도 없다”고 평가했다. 역사를 돌아보면 이 말은 정말 허언이 아님을 입증할 수 있다.

진(秦)나라의 운명을 결정지은 거록 전투에서 항우는 몸소 4만의 초나라 군사를 이끌고 9번 싸워 9번을 이겼고 40만에 달하는 진나라 대군을 대파했다. 《사기(史記)》에 따르면 초나라 군사들은 당시 10배나 되는 진나라 군을 크게 격파했다.

또 초한(楚漢)이 대치하던 중 팽성(彭城) 전투가 있다. 당시 항우는 유방이 거느린 56만 연합군이 초나라의 수도 팽성을 점령했다는 소식을 듣고 겨우 3만의 정병으로 제나라에서 팽성까지 천리를 달려와 한나라 군을 대파하고 20여만 명을 죽였다. 만약 한신이 관중의 노약한 병사들을 이끌고 제때 형양에 도착해 초나라 군을 격퇴하지 못했더라면 전쟁의 결과는 짐작하기 어렵다.

항우처럼 천고에 둘도 없는 용맹한 전신(戰神, 전쟁의 신)은 한신과 같은 병선(兵仙, 용병의 신선)이 아니면 그 누구도 대적할 수 없다. 후세에는 “병법을 말하는 것은 손무를 넘어설 수 없고, 용병은 한신을 넘을 수 없다.”고 했다. 한신의 용병은 때로 손자병법에 부합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가령 병법에서는 “(적의 병력보다) 10배면 포위하고 5배면 공격하며 2배면 분리해서 공격한다(十則圍之,五則攻之,倍則分之)”고 한다.

한나라 군이 고릉에서 항우에게 대패하자 유방은 한신에게 병권을 맡겼다. 한신은 겨우 3배의 병력으로 항우의 10만 정병을 포위했다. 이는 병법에서 말한 10배가 되면 포위하라는 것과 달리 한신이 겨우 3배의 병력으로 항우를 포위했고 사면초가(四面楚歌) 전술로 초나라 군을 대파했다. 이로써 한나라 왕실이 건립되었다. 그러므로 한나라 왕조의 건립은 마땅히 한신에게 공을 돌려야 한다. 한신이 없었다면 한나라가 초나라에 승리할 수 있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비록 한나라에 장량, 소하, 진평 등의 모사가 있었고 그들이 재상의 재목은 되지만 장수의 능력은 없었다. 반면 한신은 왕후장상(王侯將相)의 역할을 혼자 다 맡을 수 있었다. 때문에 초한이 다툴 때 사람들은 한신을 ‘국사무쌍(國士無雙 나라에 비교할 상대가 없다)’ ‘공고무이 약불출세(功高無二,略不出世 공이 가장 높고 전략은 아주 뛰어나다)’고 평가했던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신은 병력을 사용할 때 선(善)을 쫓았다. 그는 일찍이 항우에게 20만 진나라 군을 산채 매장하는 것을 막으려고 권고한 바 있다. 때문에 명나라의 모곤(茅坤)은 한신을 가리켜 “내가 예전의 병가류를 두루 살펴보니 마땅히 한신이 으뜸이다. 목앵으로 위나라를 깨뜨리고, 한나라의 붉은 기를 세워 조나라를 깨뜨리며, 모래주머니로 제나라를 깨뜨린 것은 모두 하늘에서 내려온 것으로 일찍이 적과 혈전(血戰)을 벌인 적이 없다.”(주)고 했다. 이 문장의 마지막 구절에서 우리는 한신이 매번 전투에 임해 반드시 기묘한 계책을 사용해 부득이한 사망을 감소시켰음을 알 수 있다.

만약 사람의 역사라는 측면을 뛰어넘어서 보자면 한신의 뛰어남은 바로 하늘의 안배다. 그는 가랑이 밑을 지나가는 치욕을 견딤으로써 대장군이 되었고, 한나라 군을 이끌고 몰래 진창을 건너 관중을 수복했으며 위나라, 대나라, 조나라, 연나라, 제나라를 공략했고 마지막으로 초나라를 멸하고 한나라를 부흥시켰다. 이 역사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한신의 이름을 기억하게 만들었고 오늘날 법을 얻기 위한 좋은 인연을 맺었다.

주: 이 글의 출처는 명나라 때 모곤이 한신에 관해 논한 문장이다.

“내가 예전의 병가류를 두루 보니 마땅히 한신을 최고로 쳐야 한다. 목앵으로 위나라를 깨뜨리고 한나라의 붉은 기를 세워 조나라를 깨뜨리며 모래주머니로 제나라를 깨뜨린 것이 모두 하늘에서 내려온 것으로 일찍이 적과 혈전을 벌인 적이 없다. 그러므로 나는 말하는데 태사공은 문선(文仙)이고, 이백은 시선(詩仙)이며 굴원은 사부선(辭賦仙)이며 유완(劉阮)이 주선(酒仙)이라면 한신은 병선(兵仙)이다.”

원문위치: http://zhengjian.org/node/127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