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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절의 예지능력

글/ 육진(陸真)

【정견망】

청대의 대학자 유월(俞樾 1821~1907)은 호가 곡원(曲園)인데 다음과 같은 일화를 기록했다.

송나라 때 주변(朱㳎)이 쓴 《곡유구문(曲洧舊聞)》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북송(北宋) 초기 구양수(歐陽修)가 재상으로 있을 때 소요부(邵堯夫 소옹, 자가 요부, 시호가 강절)의 명성을 들었다. 그의 아들인 구양숙필(歐陽叔弼)이 관직에 부임할 때 도중에 낙양에 들르자 구양수가 말했다.

“이왕 낙양에 왔으니 소(邵) 선생을 찾아뵙거라.”

이에 구양숙필이 소옹의 집 앞에 이르러 문을 두드리기도 전에 소옹이 급히 신발을 끌고 직접 마중을 나와 집안으로 안내했다. 구양숙필은 소요부가 확실히 예지능력이 있음을 알고 감탄했고 두 사람은 함께 하루 종일 환담을 나눴다.

이때 소옹은 자신이 평생 봤던 사람, 배웠던 지식과 자신이 한 이야기들을 계속해서 들려주었다. 구양숙필은 당시 그가 왜 이렇게 자세한 내용을 들려주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몹시 이상하게 생각했다. 자신이 말할 내용을 다 말한 후 소옹은 또 구양숙필에게 말했다.

“제가 말씀드린 내용을 다 기억하셨습니까?”

당시 구양숙필은 비록 공손하게 소옹의 말을 듣고는 있었지만 그가 이런 말을 하는 목적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게다가 자신이 한 말을 다 기억했는지 묻기까지 하자 더욱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송나라 신종(神宗) 원풍(元豐) 연간에 소옹이 세상을 떠나자 조정에서는 그의 덕행을 기리기 위해 적당한 시호(諡號)를 정해 하사하기로 했다. 구양숙필은 아때 태상박사(太常博士)로 있었는데 소옹의 시호를 내리는 문제에 대한 문장을 작성해 황제에게 올리는 책임을 맡았다. 이때에 이르러서야 구양숙필은 활연히 깨달았다. 전에 소요부가 자신에게 평생의 사적을 들려주었던 이유는 바로 지금 이 문장을 쓸 때 도움을 주려던 것이었다.

세상 사람들은 예언능력을 말하면 흔히 진(晉)나라 때 곽경순(郭景純 본명은 박璞이고 자가 경순이다)을 떠올리는데, 소강절과 곽박 두 사람은 사적(事跡)은 비록 다르지만 미래를 예지했다는 점에서는 서로 유사했다.

또 사마광(司馬光)과 소옹 두 사람이 함께 낙수(洛水) 북쪽 강가를 산보하다 우연히 어떤 사람이 집을 짓는 장면을 보았다. 소옹이 그 집을 가리키면서 “이쪽 세 칸은 모년모월에 쓰러질 것이고 저쪽 세 칸은 모년모월에 홍수로 떠내려갈 겁니다.”라고 말했다.

사마광은 이날 집에 돌아와서 이 일을 자신이 쓰던 문장 뒷면에 기록해두었다. 그리고는 한동안 잊고 지냈다. 한번은 사마광이 낙수 북쪽을 지나다 문득 전에 소옹이 했던 말이 생각나 그 집이 있던 장소를 바라보니 깨진 벽돌과 기와만 남아 있었다. 현지에 사는 사람을 찾아가서 물어보니 그들의 대답은 과연 소옹의 예측과 맞아떨어졌다.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한 사람이 태어나면 장차 그가 어떤 일을 하고, 어느 곳에서 살며, 얼마나 많은 돈을 벌고, 누구와 결혼하는지, 어떤 병에 걸리는지, 어디서 죽는 지 등 모든 것이 다 신에 의해 배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마찬가지 이치로 한 칸의 집 역시 그것이 언제 완공되고 어떤 사람이 들어가 사는지, 어떻게 흥성했다가 파괴될 것이지 하는 것도 모두 배치가 있는 것이다. 때문에 성철(聖哲)들은 늘 사람들에게 “노력해서 일을 할 필요는 있지만 이익을 탐하진 말라”거나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자신을 돌아보고 즐겁게 살면서 자연스러움에 따르라”고 일깨워주었던 것이다.

“운명에 시작이 있으며 언젠간 끝이 있으니 억지로 구하지 말라.”
“공헌을 낙으로 삼고 탐욕은 수치로 여겨라.”
“온갖 악행은 저지르지 말고 각종 선행은 받들어 행하라.”

이런 것들은 모두 지극한 이치를 지닌 명언(名言)으로 마땅히 마음에 새겨두어야 한다.

자료출처: 청나라 유월(俞樾)의 《다향실총초(茶香室叢鈔)》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66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