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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제자는 어떻게 ‘예언’을 개변시키는가?

글/ 캐나다 대법제자

【정견망】

지난 1월 25일 명혜망에 발표된 대륙 동수의 글에서 한 15세 꼬마 동수가 천목으로 본 것을 기술했다. 앞으로 몇 년간 인간 세상에 발생할 일들에 대해 교류한 ‘정법이 끝나는 시간에 대한 사고(思考)와 예언’의 교류 내용이 수련인들 사이에서 몹시 큰 토론과 눈앞의 파동을 불러일으켰다. 내 주변에서 목격한 현상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일부 동수들의 첫 반응은 바로 화를 내고 불만을 품으며 교류문장의 문제를 찾아 전면적으로 교류내용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는 무슨 근거로 이렇게 말하는가!”가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둘째, 일부 동수들의 반응은 낙담인데, 어째서 아직도 그렇게 여러 해가 지나야 끝난단 말인가! 일부 나이가 많은 동수들은 자신이 그때까지 기다릴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한다.

셋째, 일부 동수들의 반응은 곤혹과 관망인데 이 문장이 왜 명혜망에 발표되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사존을 따라 정법수련을 한 지 20여 년이 지나면서 우리 모두 주지하다시피 예언(預言)은 사실 모두 정확하지 않았다. 아주 많고 아주 많은 유명한 예언들이 모두 사부님에 의해 고쳐졌다. 나의 개인적인 경지[境界]에서 이해하기로, 꼬마동수가 본 모든 것은 역시 구우주의 기제 하에 있는 것으로 현재 대법제자 군체와 인류의 상태에 근거해, 우주의 기제(機制)가 자동적으로 연화하고 연장했을 때 나타나는 구우주(舊宇宙) 역사의 표상이다. 하지만 역사가 과연 그날까지 걸어갈 수 있을지? 사부님께서 어떻게 역사를 바꾸실 것인가? 하는 이런 것들은 모두 그 어떤 생명도 보아낼 수 없다.

관건은 이 문장의 내용이 수많은 수련자들이 닦아버리지 못한 사람마음을 건드렸다는 점이다. 만약 모두들 이로 인해 과감하게 자신의 수련을 직면할 수 있고, 자신의 문제를 인식할 수 있다면 또 신속하게 집착을 내려놓고 중생을 구도하는 최후의 시각에 떨쳐 일어나 분발할 수 있다면 그럼 그가 본 일체는 아마 순식간에 개변될 것이다.

이번 대선을 거치면서 수많은 문제들이 폭로되어 나왔는데 우리 수련인들이 진지하게 반성해볼 가치가 있다. 20여 년간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너무나 많은 것을 감당하셨다. 지금 이 순간 매 하루는 모두 우리가 중생을 구도하도록 연장하신 것이다.

그러나 정사대결이 이렇게 분명한 대선(大選)이 인간 세상에 출현했을 때, 수많은 수련인들은 진정으로 사악의 미친 듯한 공격을 받는 세인들에게 관심을 갖지 못했고, 수많은 수련인들이 내심에서 자발적으로 우러나온 정념으로 사악을 깨끗이 제거하지 못했으며, 수많은 수련인들이 사부님께서 명백하게 설법하신 후에도 움직이지 않거나 또는 반대로 행동했으며, 수많은 수련인들이 세인들에 대해 냉담하고 무시하며 수수방관하는 마음을 품었다. 이런 표현들은 구세력의 신(神)과 아주 흡사한 것으로 사부님의 신(新)우주대법의 수호자에 대한 표준에는 부합하지 않는 것이다.

한 차례 역병에서 정진하는 제자들은 천상(天象)에 협력해 진상을 알리는데 큰 힘을 들였고 진심으로 세인들이 대도태(大淘汰)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확실히 적지 않은 수련인들이 나쁜 사람은 당연히 도태되어야 한다고 여기면서 암암리에 남의 불행을 고소하게 생각했다. 또 적지 않은 사람들이 다만 자신에게만 마음을 쓰면서 매일 진지하게 법공부・연공・ 발정념으로 자신의 안전을 보호하면서 사람을 구하는 일은 형식적으로 대처하는데 이는 마음속으로 혐오하는 이 인간세상을 벗어나려는 것과 같다.

형식에 흐르는 것을 말하자면 정말로 우리 자신이 억울한 게 아니다. 주지하다시피 션윈(神韵)은 사람을 구할 수 있지만 과연 얼마나 많은 동수들이 관심을 갖고 션윈 사이트나 영상을 구독했으며, 또 얼마나 되는 사람들이 평소 각종 SNS에서 션윈을 홍보했는가?

대법제자는 지금 시각 인간세상의 진정한 주역으로 세계 정세는 모두 우리의 마음에 따라 조성된 것이다. 모두들 꼬마 동수가 본 미래 몇 년의 상황을 보고 싶거나 받아들이고 싶어 하지 않는데, 사악이 어찌 그렇게 다년간 멋대로 날뛰게 할 수 있고 박해가 여전히 지속할 수 있단 말인가 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매 사람은 모두 생각해 보아야 하고 자기 정서의 근원을 파보아야 한다. 자신이 깨끗한 영혼을 닦아내지 못한 것은 아닌지 대법으로 한번 가늠해보아야 하고, 이를 통해 어떻게 해야만 이런 예언을 개변할 수 있는지 법에서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또 사람마음을 품고 사부님께서 오셔서 모든 것을 해결해주시길 기대할 수 없는데, 정법 사부님이 집착을 내려놓지 못하는 우리를 무조건 하늘로 데려가실 수는 없다.

꼬마 동수가 본 상황은 이렇다. 우리가 사람을 구하는 수량이 부족하고 대량의 수련인이 아직 마땅히 도달해야 할 표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가 본 것이 정확하든 정확하지 않든, 수련인은 이를 경종으로 삼아 무조건적으로 안으로 찾아야 하며 사실 이는 이치상 당연한 것이다. 문장에서 또 고지성(高智晟 가오즈성) 변호사를 언급했는데 나는 이를 보면서 2020년 션윈 공연 무용극 ‘도연(道緣)’이 떠올랐다. 속세의 슬픔과 고통을 투철히 보게 된 한 장군이 도(道)에 입문해 수련한다. 그는 앞서 인간세상의 명예와 지위를 내려놓았기 때문에 최후에 오직 사부님의 말씀에 따라 생사를 내려놓을 수 있었고 그 결과 신선으로 성취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입문한 다른 수련인들은 오히려 수련성취하지 못했다.

고 변호사는 대법(大法)을 위해 한마디 진실한 말을 했고 죽음조차 아쉽지 않다는 신념을 안고 명예, 이익, 지위, 가정을 모두 잃었음에도 ‘도연’의 장군처럼 다른 마음을 품지 않았다. 우리가 만약 꼬마 동수 예언의 모든 것이 발생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면 그럼 사람마다 모두 이 장군과 같은 수련인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분명 역사를 고쳐 쓸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역사는 사부님의 수중에 장악되어 있긴 하지만 만약 내일 정말로 결속된다면 우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영원히 수련 원만할 기연(機緣)을 잃어버리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사부님의 은혜에 감사드려야 하며, 지금 이 순간 수련할 기회가 있음에 감사드려야 하고, 아직도 우리에게 사람을 구할 기회가 있음에 감사드려야 한다.

이상은 모두 개인 수련 층차에서의 작은 깨달음이다. 우리는 사람 속에 있기에 모두 좋은 것을 듣고 싶어 하며 정면적이고 적극적으로 격려하는 말을 듣고 싶어 한다. 하지만 수련인이라면 더욱 진상을 마주할 용기가 있어야 한다.

교류 내용 중에 만약 법에 있지 않는 곳이 있다면 동수들의 자비로운 지적과 시정을 바란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66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