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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법(道法)’을 읽고 장기간의 마난에서 벗어나다

글/ 해외 대법제자

【정견망】 최근 ‘정진요지-도법(道法)’을 읽는데, 문득 사부님께서 한 층의 법리를 내게 점화해주셔서 활연히 깨달았다. 원래 장기적으로 좋은 사람이 되는 경지에 빠진 나는 표준을 바꿀 때가 됐으며 신(神)의 표준으로 바꿀 때가 됐다. 나는 반드시 사람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얼마나 잘했든지 간에 장기적으로 마난(魔難)에 빠질 것이다. 이는 사악이 나를 박해하는 것이며 또한 내게 가정의 마난을 만들어준 근본적인 구실이다.

나는 98년에 법을 얻어 다른 여러 제자들처럼 20년을 넘게 수련했다. 하지만 오성이 차해서 마난을 하나 지나면 또 하나가 오곤 했다. 남편에 대한 정을 닦는가 하면 또 딸에 대한 정을 닦았다. 마치 관문마다 모두 가정관을 넘는 것 같았고 또 매우 고통스러웠다. 늘 지난 후 한숨 돌리면 또 다음 난이 시작됐다. 나는 늘 방법이 없어 ‘내가 정말 업력이 이렇게 큰가? 언제면 끝날까?’라고 생각했고 심지어 과거에 심산 속에서 도를 수련하는 사람을 흠모했다. 어찌할 도리가 없었고 또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시종 문제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찾지 못했다.

무정하고 호색한 남편

이렇게 오랫동안 나는 줄곧 표면 현상만 보았다. 남편과 딸은 마치 빚을 받으러 온 것 같았다. 하나하나가 나에게 ‘인정도, 의리도 없이 은혜를 원수로 갚은 것’ 같았다. 그들은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는데 정말 끝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환상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다.

처음에 나는 남편에 대한 정이 너무 중한 것을 깨달았는데 이 때문에 그가 지속해서 외도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둘째를 임신했을 때 그는 바람을 피웠고 또 그 여자를 임신시켰다. 또 남편이 찾은 여자는 한 명이 아니었으며 또 나더러 이혼하자고 큰 소리로 떠들었다. 나는 계속 자신에게 이 정을 내려놓으라고 했고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은 너무 막막하다는 생각으로 그를 계속 용서했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덕으로 원한을 갚아도 시련은 계속 왔고 한동안 괜찮다가 또 시작됐다. 심지어 그의 무정함은 대단했다. 내가 다리가 아파서 지팡이에 몸을 지탱해야 했고 누구도 돌볼 수 없는 상황이라 그가 양심이 있다면 아이를 위해서거나 한 가닥 연민으로 내 곁에 남아 가정을 돌봐줄 수 있다고 여겼다.(남편 회사는 중국에 있고 나는 아이와 해외에서 살고 있음) 그러나 그는 평소처럼 집을 마음대로 드나드는 여관으로 간주했고, 한 번도 나에게 타국에서 돌봐줄 사람이 없고 잘 걷지 못하는 것, 어떻게 아이를 데리고 생활하는지 등에 관해 물어본 적이 없었다.

이렇게 10여 년이 지났다. 나는 마침내 뼈저리게 철저히 자신을 찾았다. 나는 자신의 마음속 깊이 아직도 그가 나를 잘 대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보기에는 크지 않는 마지막 약간의 기대, 마지막 남은 부부의 정에 대한 환상, 추구하는 마음, 나는 마침내 살을 도려내고 뼈를 깎는 고통 중에서 그에 대한 정을 베어냈다. 이번 생에 원망도 미움도 없이 빚을 갚고 인연을 끝낸다는 마음가짐으로 마지막 부부의 의(義)를 다해 그를 선하게 대했다. 마침내 정상적인 부부관계가 회복됐고 거의 모순이 사라졌다. 나는 아마 전생의 빚을 거의 갚았을 것으로 생각했다. 나는 마침내 가정에 대한 정(情)에서 벗어났다.

딸에 대한 빚을 마주하다

나는 마침내 명백히 알고 남편에 대한 정을 내려놓아 남편이 확실히 변했다고 생각할 때 또 다른 난이 시작됐다.

큰딸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나를 원수처럼 대했다. 사춘기 반항, 그로 인한 우울증, 섭식장애 등이 한꺼번에 왔다. 딸은 집이나 학교에서 끊임없이 소란을 일으켰고 가출, 퇴학, 입원 등을 반복했다. 남편은 대부분 중국에 있었고 시간이 길어지자 딸에 대해 상관하지 않았다. 나는 원망이 가득했고 또 아이가 수시로 사고가 날 가능성에 두렵고 불안했다. 딸 때문에 나는 거의 정신이 무너질 뻔했다.

그때 나는 사람을 구하는 편집 일을 하면서 세 아이를 돌봐야 했는데 정말 수련이 너무 고생스럽고 힘들었다. 나는 시종 자신이 정이 너무 심해 제거해야 한다는 생각에 끊임없이 남편에 대한 정, 딸에 대한 정을 닦았고, 스스로 아마 역사적으로 진 빚이 너무 많고 업을 너무 크게 빚었다고 끊임없이 자탄했다. 나는 또 무엇을 잘못했을까? 동수들이 내게 자식 정을 내려놓고 발정념(發正念)을 많이 하면서 자신을 찾고 법공부 등등을 많이 하라고 했다. 나도 이 말에 따라 수련을 했지만 관을 넘는 것이 뚜렷하지 않았다.

얼마 전 딸은 나에게 심지어 이후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자유를 줘야 하며 어떤 일도 상관하지 말라고 선포했다. 나는 마음이 쓸쓸했지만 또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딸은 내가 마음을 다해 보살피고 어려서부터 데리고 법을 배운 아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더욱 고통스러웠다.

이런 일들을 돌아보는 것은 동수들에게 내 괴로움을 토로하려는 것이 아니라 나와 유사한 동수들에게 이 모든 것은, 비록 역사적으로 빚을 진 원인이 있고 사람 중에서 버리기 어려운 정이 있을 지라도 결국은 법리를 명확히 몰라 수련의 근본을 찾지 못한 것임을 알려주고 싶어서다. 나는 좋은 사람이 되는 한 층차에서 지체했고, 수련 중의 난이 너무 길다고 사람의 이치로 대해 장기적으로 난에 빠져 있었다. 내 오성이 좋지 않아 남편과 아이가 장기적으로 이용당해 나에게 마난을 조성했다.

‘도법(道法)’을 읽고 철저히 각성

사부님께서는 내가 너무 고통스럽게 관을 넘는 것을 보시고, 비록 난 중에서 닦지 않겠다는 마음이 생기지 않았지만 너무 길게 관을 넘지 못하고 좀 무감각한 것을 보시고 수련생을 통해 점화해주셨다. 모든 것은 순서가 있고 사부님께서 관여하신다. 나는 갑자기 ‘도법’을 배우고 싶어졌다.

이 경문을 펼쳐서 첫 단락을 읽을 때 나는 단번에 진감(震撼)했다.

“장기간 대법(大法) 중의 중생, 특히 제자는 법에 대해 心性(씬씽)을 제고하는 방면에서 일종 부동한 층차의 오해가 줄곧 존재했다. 매번 마난(魔難)이 닥쳐올 때, 본성(本性)의 일면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완전히 사람의 일면으로 이해한다. 그럼 사악한 마(邪魔)는 이 점을 이용하여 끝없이 교란하고 파괴함으로써, 수련생으로 하여금 장기간 마난 속에 빠지게 한다. 사실 이것은 사람의 일면이 법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여 빚어진 것이며, 인위적으로 당신들 신(神)의 일면을 억제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당신들이 이미 수련 성취된 그 부분을 억제하여 신의 일면이 법을 바로잡는 것을 저애했다. 아직 수련 성취되지 않은 일면이 어찌 주사상(主思想)을 억제하며, 이미 법을 얻은 일면을 억제할 수 있는가? 인위적으로 사악한 마를 자양(滋養)하여 그것이 법의 틈을 타게 한 것이다.”

이것은 그야말로 나를 말한 것이 아닌가! 남편과의 관, 아이와의 관을 모두 사람의 기점에 서서 넘었고, 남편이 무정하고 아이가 터무니없이 굴고 철이 들지 못하고 은혜에 감사한 줄 모른다고 인식했는데 모두 사람의 이치로 옳고 그름을 가늠한 것이다. 틀린 것은 저들이고 나는 무고한 피해자인데, 고통을 받았지만 또 그들을 용서하고 인내하며 한번도 그들에게 상처 주지 않고 마음을 다해 보살펴줬다고 생각했으며 이렇게 ‘빚을 갚는’ 것으로 스스로를 위안했다. 단 한 번도 사악이 그들에 대한 나의 정과 그들에게 진 나의 빚을 이용해 자신을 신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핑계로 끊임없이 나에게 마난을 조성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비록 정을 내려놨지만 정을 내려놓는 것은 사악이 나에게 조성한 난의 근본 목적과 마지막 구실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시종 자신을 사람으로 여기고 아내 역할을 잘하고 좋은 엄마이자 좋은 며느리가 되는 등등 좋은 사람의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했다. 내가 신뢰를 지키고 인의(仁義)를 지키고 사람을 선하게 대한 이것은 모두 사람의 표준에 머무른 것이고 진정으로 사람의 사고와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마음속으로 늘 좋은 사람이 되는 표준이 있어 자신도 모르게 그것으로 옳고 그름을 가늠했던 것이다.

나는 자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간주하고 수련했다. 그러나 좋은 사람이 아무리 더 좋아진다고 해도 역시 사람 층차다. 때문에 수련하고 수련해도, 내가 가족에게 어떻게 잘해줘도 돌아온 것은 나는 성의를 다했지만 그들이 은혜를 원수로 갚는 어쩔 수 없는 결말이었다. 구세력이 보기에는 나는 시종 사람 중에 있으면서 사람의 사유 방식을 철저히 바꾸지 못했으며 신의 표준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다시 말해 나는 20여 년을 수련했지만 진정으로 자신을 신으로 여기고 대하지 못했다. 이것이 바로 구세력이 나를 놓아주지 않고 장기적으로 가정의 마난에 처하게 한 근본 구실이다.

사부님께서는 ‘도법’에서 또 말씀하셨다.

“당신들도 ‘자연(自然)’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필연(必然)’이란 원인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실 ‘자연’이란 사람이 우주에 대하여, 생명에 대하여, 물질의 현상에 대하여 해석하지 못한 나머지 무책임하게 스스로 그럴듯하게 하는 말이다. 그들 역시 그 ‘자연’이란 자체가 무엇인지를 생각하지 못한다. 이런 의식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당신들은 이 일체 마난(魔難)이 모두 필연적이고 바로 이러하다고 인정하므로, 일종 어찌할 수 없는 소극적인 상태가 생기게 된다. 그러므로 당신들 사람의 일면은 명백해야 하며, 더욱 중요한 것은 법을 얻은 그 일면이 똑똑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공부하자 나는 절반 이상을 깨달았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지는 몰랐다. 나는 그다지 자신 없는 마음으로 계속해서 경문 ‘정진요지-속인 마음을 버리고 착실한 수련을 견지하자’를 공부했다. 나는 사부님께서 나를 보고 계시며, 내가 곤혹해하는 것을 아시고 경문 제목으로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신다고 문득 깨달았다. 나는 다음 일보는 속인의 마음을 내려놓고, 모든 속인 층차의 사유 관념을 내려놓으며, 더욱 높은 표준의 수련으로 진입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어 다음 경문을 공부할 때 나는 또 매우 놀랐다. 제목이 ‘취중(取中)’이었다. 내용을 읽지 않아도 나는 즉시 알았다. 사부님께서 나에게 철저히 성숙을 향해 걸으라고 하신 것으로, 비록 내가 사람의 모든 것을 철저히 내려놓았지만 사람 중에서 사람이 하는 방법에 부합해야 하며 제정신이 아닌 느낌을 주면 안 된다. 사람을 대할 때는 좋은 사람이라는 느낌을 줘야 하지만 사실 내심의 표준은 이미 사람을 초월한 것이다.

뜻밖에도 이 세 편의 경문을 순서대로 보게 된 그 순간 사부님께서는 법리와 더욱 높은 천기를 내게 점화해주셨다. 나는 자신의 크고 작은 가정관을 되돌아보았고 심지어 동수와의 관도 모두 일목요연하게 확 트인 느낌이 들었다.

내가 이 층의 법리를 깨달았을 때 나는 자신이 승화됐음을 알았다. 이어 수년간 진상을 알려도 통하지 않았던 남편이 듣기 원했고 거부하지 않았다. 아이도 갑자기 변했다. 제야의 날 큰딸은 웃으며 나에게 “엄마, 아마 내가 빚을 받으러 왔나봐요.”라고 말했다. 장기간 내가 한 밥을 아예 먹지 않던 딸이 뜻밖에 내가 만든 만두를 먹고 “너무 맛있어요!”라고 연속 말했다. 만두는 평소에 만든 것과 다름이 없었다.

이튿날 딸은 내게 말했다. “안심하세요! 저는 절대로 나쁘게 변하지 않고 도덕이 부패한 일을 하지 않아요. 비록 연공을 하진 않지만 줄곧 자신에게 좋은 사람이 되라고 요구하고 있어요. 어쩌면 신(神)이 될런지도 몰라요! 고대에도 이런 사람이 있었을까요?”

나는 대답조차 하지 못했다. 설마 딸이 수년간 소란을 피우고 나를 원수처럼 미워하며 야단법석을 떤 것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단 말인가? 나는 그야말로 이 말이 딸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나중에 나는 이것은 아마 사부님께서 딸의 입을 빌어 사부님께서 아이를 관여하고 이 집을 관여하신다고 점화해주신 것임을 알았다. 사부님께서는 줄곧 나의 고뇌를 알고 계셨고 우리를 보호해주셨던 것이다. 나에게 방법이 없다고 소극적으로 생각하지 말라고 하셨고 원망하지 말라고 하셨다. 모든 것은 가상이니 좋은 일로 간주하고 끊임없이 착실히 수련하고, 더욱 높은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하며, 진정으로 신통해져 진정한 신이 되라고 알려주셨다.

이상은 내가 장기적으로 가정관(家庭關)을 넘은 체득과 깨달음이다. 법에 있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656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