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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고층차의 법리가 펼쳐지지 않을까?’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글/ 성자(聖子)

【정견망】

나는 7.20 이전에 법을 얻은 제자로 ‘전법륜(轉法輪)’을 약 천 번 이상 보았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들어서 법리(法理)가 펼쳐지는 것이 적어졌고 때로는 ‘전법륜’을 몇 번 읽어도 아무 법리도 깨닫지 못한 것 같았다. 나는 의혹에 빠졌다. ‘법을 배울 때 속도를 추구한 게 아닐까? 글자를 파고들거나 무엇을 구하려 한 게 아닐까? 청성한 사유로 법을 보지 않은 걸까? 어째서 법리를 깨달아내지 못할까?’

나중에 나는 ‘고층차의 법리’를 알려고 하는 자체가 바로 구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즉 좀 더 많이 알고자 하고 좀 더 빨리 제고하고자 하며 현재 상황에 만족하지 않는 것 등등. 이것은 사람의 ‘관념’이며 방향이 틀린 것이다. 비록 이런 추구가 제고를 위한 것이라 쉽게 발견할 수 없다 해도 바로잡지 않으면 오히려 제고가 느려질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대법은 무위(無爲)다”(‘북미 제1기법회설법’), “수련은 자신이 하나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 자신이 무슨 방법을 다 써도 당신은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는데 바로 이 뜻이다.”(‘미국서부법회설법’)라고 말씀하셨다.

수련인이 장악한 법리가 얼마나 되는가는 심성(心性)의 높이에 따라 결정된다. 마치 학교에 다니는 것과 같은데 초등학교에서 대학교까지 한 걸음 한 걸음 공력을 들여야 비로소 도달할 수 있는 것으로 마음을 닦고 이치를 아는 것도 이와 같다. 심성제고는 자신의 일이고 법리가 펼쳐짐은 사부님의 점오(點悟)에 따르는데 오직 마음을 닦기만 하면 당신이 마땅히 알아야 할 때가 되면 자연히 알려줄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우리는 겨냥성이 있기에, 진정하게 그 마음을 집어내어 그 마음을 제거하는데, 그러면 수련이 매우 빠르다.”(‘전법륜’)

‘심성’ 이쪽을 틀어쥐고 ‘법리’ 저쪽을 생각하지 않으면 제고가 아주 빠를 것이다. 늘 이런 현상에 부닥치곤 한다. 어떤 동수가 이성적인 인식이 좋고 교류할 때 아주 감동적이면 나는 생각한다. ‘나는 어째서 그만 못한가? 그가 닦은 게 평범해 보이는데?’

수련인이 이치를 깨닫는 것은 말로만 해서 되는 게 아니다. 만약 한 사람이 실제 수련에서 차이가 있다면 입으로 아무것도 말하지 못하고 겉으로 보기에 당신보다 수련을 못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총체적으로는 반드시 당신보다 낫다.

심성제고와 법리는 서로 교차되는 것으로 심성이 제고되면 법리가 펼쳐지고 또 제고하면 또 펼쳐지는데 줄곧 원만에 이를 때까지 그렇다. 만약 심성제고가 느리면 법리가 펼쳐지는 것도 분명히 줄어들 것이다. “씬씽(心性)이 얼마나 높으면 공도 얼마나 높다”(‘전법륜’) “멀리 천리를 보려면 누각을 한 층 더 올라가야 한다.”는 말이 있다. 심성이 제고된 후에 아름다운 광경이 저절로 펼쳐질 것이다.

동수들이 “나는 법을 오래 봤지만 아무런 법리도 펼쳐지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것을 늘 듣게 된다. 내 생각에 법리를 깨닫지 못하는 것은 조급해 하지 말고 냉정하게 자신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최근 어디가 느슨해졌는가? 세 가지 일은 어떻게 했는가? 어떻게 관(關)을 넘었는가? 매일 연공은 했는가? 사람은 몇이나 구했는가?”

곳곳에서 일사일념에 분명 제고가 느렸을 것이고 때문에 법리도 펼쳐지지 않는 것이다. 늘 자신을 찾고 심성의 근본을 주시하면 발견하게 될 것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적지 않은 법리를 알게 되며 다른 사람이 어떤 일을 이성적으로 인식한 것을 말할 때에도 가볍게 받아들이거나 심지어 보다 많은 인식을 갖게 될 것이다.

이성적으로 명백해진 것은 그 한 순간 명백해진 것이 아니며 그 전에 심성제고에서 이미 두드러진 것이다. 그것은 누각에서 또 한 층 올라간 후 필연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현재 층차에서 작은 인식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656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