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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에 대해 견정한 신심과 신념을 지녀야

글/ 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동수들과 교류하던 중 한 신동수(新同修)가 자신은 《전법륜》 중 많은 부분에 대해 믿을 수 없다는 체득을 말하면서, 비록 매일 연공과 법공부를 견지하고는 있지만 제고가 빠르다는 느낌이 없다고 했다. 신동수의 이런 사상 장애에 대해 모두 자신의 인식을 말했지만 설득력이 강하지 않았다. 집에 돌아온 후 나는 어떻게 하면 신동수의 이런 장애를 타파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올해 정월 초이틀 신동수와 교류 도중 나는 서유기에서 당승(唐僧)이 서천(西川)에 경전을 가지러 간 이야기를 말해주었다.

당승은 구구 팔십일 난을 겪었고 비록 왜 도처에서 난을 겪어야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또 매 차례 난을 잘 넘지도 못했지만 시종 서천에 가서 경전을 가져오겠다는 당승의 결심과 신심이 바뀌진 않았습니다. 때문에 당승은 공을 이루고 원만할 수 있었으며 사부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대법에 대해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많은 부분이 있고 심지어 관을 넘는 중에 잘못을 범한다 해도 우리 자신은 대법에 대해 견정한 신심과 신념이 있어야 하며 의심하거나 동요하지 말아야 합니다. 정말로 고통스럽고 또 어찌해야 할지 모를 때는 사부님께 오성을 제고하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할 수 있으며 가급적 빨리 이 난(難) 속에서 제고해 올라가야 합니다.

내가 이렇게 진상을 알려주자 신동수도 귀담아 들었다.

이 일을 통해 나는 한 가지 이치를 깨달았다. 우리가 속인에게 진상을 알릴 때 지혜롭고 이지적으로 해야 하는 것처럼 동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이지적이고 지혜롭게 마음을 써서 해야 하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좋은 효과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처음 파룬궁(法輪功)을 접할 때 아주 많은 당문화(黨文化)의 관념을 지니고 있었고 그때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믿음을 지니고 한 걸음씩 걸어 지나왔다. 그때 《전법륜》을 받쳐 들고 읽으면 나는 늘 자신이 초등학생이라고 느꼈다. 20여 년을 배웠음에도 나는 여전히 《전법륜》을 읽으면 자신이 여전히 초등학생이며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문제들이 아주 많음을 느낀다. 대법의 내함이 박대정심(博大精深)하기 때문이다.

대법제자로서 만약 우리에게 대법에 대해 견정한 신심과 신념이 없다면 우리는 오늘까지 걸어올 수 없었다. 구세력이 배치한 소위 관(關)과 난(難)이 대법제자를 훼멸시키고 그것들이 원하는 것을 남겼을 것인데 이는 위사위기(爲私爲己)한 일념이 조성한 것이다. 우리가 대법 중에서 수련 성취할 것은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각(正覺)이다. 대법에 대해 이런 견정한 신심과 신념이 없다면 문제에 부딪쳤을 때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안으로 찾지 못할 것이며 우리는 이 일보까지 걸어오지 못했을 것이다.

대법제자로서 우리는 왜 왔는지 알아야 하며 대법은 반드시 이뤄진다는 신심을 갖고 와야 한다. 오늘 또 사부님께서 직접 구도하신 것을 얻었으니 이는 우리의 무상한 영광이 아닌가? 우리는 더욱 마땅히 이 일념을 지켜야 하는데 이는 우리가 구세력의 미혹을 걸어 지나갈 수 있고 대법 중에서 정정당당하게 수련할 수 있는 근본이다.

개인의 작은 체험이니 부족한 곳이 있다면 여러분들의 지적과 시정을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655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