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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지역 설법을 학습하고 무엇이 대법 ‘수련’인지 분명히 알다

글/ 중국 대법제자 중생(重生)

【정견망】

최근 사부님의 각 지역 설법을 읽고 ‘수련’에 대해 약간의 깨달음이 생겨 이를 써내어 동수들과 교류하고자 한다.

사부님께서는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그 어떤 일종의 마음이라도 당신을 잡아끈다면 당신은 다 수련할 수 없다. 그것이 다 단단하게 당신을 잡아당겨서 당신으로 하여금 수련하지 못하게 하며 당신을 성불(成佛)하지 못하게 한다.”[1]

수련인에게 오직 사람마음이 존재하기만 하면 그럼 수련에 번거로움이 생기는데 왜냐하면 수련의 전 과정이 바로 사람마음을 제거하는 과정으로 바로 이 사람마음을 닦아 없애야만 하기 때문이다. 오직 사람마음이 존재하기만 하며 곧 수련 성취할 수 없다. 그렇다면 필경 사람마음을 어떻게 해야 깨끗이 제거할 수 있는가? 20여 년의 수련 중에서 사람마음을 닦아 없애는데 대해 나는 정말 수련이 너무나 고통스러움을 느꼈는데 특히 수구, 질투, 과시, 환희, 색욕 등의 사람마음을 수련하자면 정말로 마치 자꾸 반복되어 다시 시작되는 것처럼 느껴지곤 했다.

동수들과 교류 중에서 일부 정진하는 동수를 보면 사람마음을 아주 깨끗하게 제거한 것 같다. 반대로 자신을 돌아보면 바로 스스로 자신을 닦지 못했기 때문에 수련이 힘들어지게 했고 매 사람마음이 모두 반복해서 다시 나타나는 것 같았다. 이번에 나는 곧 무엇이 수련인지 분명히 아는 것부터 착수하기로 했다. 가장 먼저 무엇이 수련이고 어떻게 수련을 시작하는지부터 철저히 알아야 했다.

사부님의 각 지역 설법을 학습하면서 나는 사부님의 설법 중에서 수련방면에 관한 말씀에 중점적으로 주의했다. 나는 이 방면의 설법을 일단 베껴 썼고 다시 암기했으며 2달이 넘는 시간 동안 사부님의 각 지역 설법을 한번 통독했다. 사부님의 설법은 나로 하여금 활연히 트이게 했으며 내 마음의 매듭을 풀어주었다.

나는 “누가 여기에서 수련하든, 모두 이 미혹 중에서 속인의 방식으로 좋은 사람이 되고, 선을 행하며, 집착을 포기해야 비로소 이곳을 벗어날 수 있는데, 그래야만 비로소 수련이라고 부른다.”[2]를 읽으면서 자신을 반성해보았다. 지난 20여 년간 나는 속인 속에 있으면서 좋은 사람이 되고 선을 행하며 집착을 포기하는 방면에서 수련인의 표준에 부합했는가? 그렇지 못했다. 특히 집착을 포기하는 방면에서 나는 여전히 많은 사람마음의 집착을 아직 내려놓지 못했다. 이것은 자신이 잘 닦지 못했음을 설명하는데 그럼 또 속인 이곳에서 벗어날 수 없다. 다시 말해 나는 근본적으로 진정하게 자신을 수련해내지 못한 것이다. 앞으로 결심을 내려 닦아야만 한다.

‘정진요지’를 읽다가 “오로지 법을 배우고 마음을 닦으며 아울러 원만하는 수단 ― 연공(煉功)을 하여 확실하게 본질에서 자신을 개변하면 心性(씬씽)이 제고되고 층차가 제고되는,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수련이다.”[3]를 읽으면서 자신을 반성해보았다. 매일 법학습을 하고 공법도 매일 연마했지만 나의 심성과 층차는 매일 매일 제고하지 못했다. 이것은 자신이 진정으로 수련한 것이 아님을 설명하는 게 아닌가? 그렇다. 아! 나는 정말 후회했다!

그러다가 사부님의 설법 “당신들은 분명해야 하는바, 대법제자의 수련은 인간 속에서 걸어 나오는 것이며, 이 구(舊) 우주의 끝이 없고 헤아릴 수 없이 무량한 중생이 구성하는 각종 요소에 의해 속박된 구(舊) 궁체 속에서 걸어 나오는 것이며, 궁체의 성(成), 주(住), 괴(壞), 멸(滅)의 최후의 최후 환경 중에서 탈태하여 나오는 것이다. 누가 걸어 나올 수 있는가? 그 일체를 뿌리치고 진정 미래로 걸어 들어갈 수 있는 그것은 확실히 매우 어렵다.”[4]를 읽었다.

사부님의 설법에서 나는 수련은 확실히 아주 어렵다는 것을 인식했다. 박해가 20여 년이 넘었고 우리 매 대법제자는 각 방면의 압력을 받으며 세 가지 일을 하고 있다. 얼마나 많은 예전 동수들이 우리를 떠나갔는가? 또 얼마나 많은 동수들이 아직도 사악의 검은 소굴에서 박해받고 있는가? 이런 것들은 모두 우리가 아직 닦지 못했음을 설명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사람에서 걸어 나오지 못한 것이 아닌가? 구우주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궁체의 성주괴멸(成住壞滅) 최후의 최후 환경 속에서 탈태해 나오지 못했으니, 그렇다면 우리 역시 미래로 걸어가기란 아주 어렵다.

사부님께서는 정법 시간을 여러 차례 연장하신 것은 바로 우리가 아직 잘 닦지 못한 것을 보신 것이 아닌가? 우리가 아직 신우주의 표준에 도달하지 못한 것을 보신 것이 아닌가? 사부님의 자비로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려는 게 아닌가? 그러나 자신은 확실히 잘 닦지 못했고 여전히 구우주의 많은 요소를 닦아내지 못했으며 또 진정한 대법제자처럼 그런 신의 상태를 구비하지 못했다. 나는 후회했다! 하지만 후회는 소용없고 앞으로 자신을 닦을 결심을 내려야 한다.

내가 “사실 수련은 바로 고생을 하러 오는 것으로 인간세상에서 보호를 받으려고 오는 것이 아니다.”[5]는 설법을 읽을 때 나는 활연히 명백해졌다. 내가 전반생에 그렇게 많은 고생을 겪었던 것은 오늘날 대법을 수련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자신은 왜 법을 얻은 후 사부님의 말씀을 명심하지 못했는가? 대법을 배우면 가장 행복하고 대법 속에서 더 이상 전반생의 그런 많은 고생을 겪을 필요가 없다고 여겼는가? 이는 내가 행복을 누리길 추구하고 대법 중에서 인간 세간의 보호를 얻으려고 생각한 것이 아닌가? 이는 사부님의 설법과 완전히 배치된 것으로 사실 수련인은 반드시 큰 고생을 겪을 마음을 먹어야만 비로소 수련 성취할 수 있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나는 정말 부끄러워 어쩔 줄 몰랐다. 최후의 제한된 시간 내에 나는 시간을 다그쳐 자신을 잘 닦아야 한다.

“수련이라, 그럼 수련 중에서 당연히 당신이 잘못하는 것을 허용하는데, 당신이 매사를 모두 잘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신은 최종적으로는 잘해야 한다. 당신이 잘못할 수 있는 이상, 당신은 큰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다. 이는 일찌감치 생각했던 것이고, 이러한 문제들은 일찌감치 알았던 것으로, 당신은 대단히 큰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줄 것은, 당신은 수련하는 사람이며, 당신은 신의 길을 걷고 있기에, 당신이 잘못해도 괜찮지만, 당신은 잘못을 알아야 하고, 당신은 수련이 완성되기 전에 당신이 마땅히 해야 할 것을 잘해야 하며, 계속해서 당신이 마땅히 해야 할 것을 잘해야 하는바, 이것이 곧 수련이다.”[6]

나는 이 부분 설법을 읽고 사부님의 자비에 마음이 진감(震撼)되었다. 사부님, 당신은 너무나 자비하십니다. 한 명의 제자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당신께서 여러 차례 매 하나의 제자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사부님께서 이렇게까지 설법하셨는데 내가 아직도 무엇을 내려놓지 못한단 말인가? 이전에 잘하지 못했다면 당장 고쳐야 한다. 나는 정진해야 하며 최후의 시간 속에서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세 가지 일을 잘하고 자신을 잘 닦아야 한다.

특히 ‘2019년 뉴욕법회설법’에서 “당신이 한 일 자체가 수련은 아니다. 당신이 회사를 꾸리든 당신 대법의 항목이든 당신이 무엇을 하든, 이 자체는 수련이 아니다. 그러나 당신이 일을 하는 태도, 이런 문제를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는 대법제자 수련인의 표준으로 그것을 대하고 그것을 잘 처리해야 하는데, 이것이 수련이다!”[7]를 읽고 나는 더욱 활연대오했다.

나는 전에 줄곧 자신이 수련을 꽤 잘했다고 여겨왔다. 이 과정에서 대법 일을 하는 것을 수련으로 여겼는데 이것은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한 일 자체가 수련은 아니라는 말씀과 정반대였다. 때문에 20년 넘게 수련을 했지만 자신의 집착심은 여전히 아주 많고 심성 제고가 그리 빠르지 못했으며 자신의 수련상태 역시 당연히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어 그리 안정적이지 못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아직도 잘하지 못하는가? 지금 내가 인식한 것은 여전히 진정으로 사부님의 법을 학습하지 못했고 무엇이 진정한 수련인지 진정으로 인식하지 못했다.

일하는 것을 수련이라 착각하고 마음의 중점을 일을 하는데 놓았으며 일을 하는 과정 중에서 사람마음을 닦아 없애는 것을 주요하게 삼지 못했다. 때문에 장기간 한 무더기 일을 했지만 자신의 집착심 제거는 여전히 아주 느렸고 제고 역시 당연히 아주 느렸다. 명확히 말해서 자신은 수련할 줄 몰랐고 대법수련의 특수함을 몰랐으며 현재 말세(末世)에 도덕이 저하한 상황 하에서 수련이란 바로 마음에 힘을 들여야 함을 몰랐던 것이다. 여기까지 인식하자 나는 내가 사부님을 너무나 크게 실망시켰음을 느꼈다. 법을 얻은 지 이렇게 오래되었고 이렇게 좋은 사부님이 계시는데 나는 어째서 이토록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가?

어떤 동수가 이런 말을 한 게 기억난다.

“일을 하는 것이 수련이 아니고 바쁘다고 정진하는 게 아닙니다. 오직 안으로 찾고 자신을 닦는 것만이 진짜 정진입니다.”

후회한들 소용이 없다. 나는 지금부터 시작해 정확하게 현재의 정법형식을 대하고 발정념을 잘하며 보다 많은 중생을 구도하기로 결심했다. 진지하게 자신의 수련을 대하고, 마음을 닦으며 집착을 제거해 더욱 정진해서 세 가지 일을 하는 가운데 자신을 잘 닦고 진정으로 심성 상에서 자신을 제고할 것이다. 안으로 찾음은 영원히 수련인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며, 자신을 잘 닦음은 영원히 가장 가장 중요한 것이다. 오직 이렇게 해야만 비로소 한 초상적인 사람으로 수련 성취할 수 있다.

개인의 작은 인식이니 바르지 않은 곳이 있다면 동수들의 시정을 바란다. 감사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휴스턴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2004년 뉴욕법회설법》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무엇이 수련인가〉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4》〈2003년 애틀랜타 법회 설법〉
[5] 리훙쯔 사부님 저작: 《2005년 샌프란시스코법회설법》
[6] 리훙쯔 사부님 저작: 《대법홍전25주년 뉴욕법회설법》
[7] 리훙쯔 사부님 저작: 《2019년 뉴욕법회설법》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650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