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삼언양어: ‘깡그리 버림(舍盡)’을 다시 말하다

글/ 산우(山雨)

【정견망】

사부님께서는 《정진요지》 <원용> <무루> 두 경문에서 “누락 없음(無漏)”과 “깡그리 버림(舍盡)”을 언급하셨다. 나는 다음과 같이 이해했다.

“성인은 원인을 두려워하고 속인은 결과를 두려워한다(聖人畏因,凡人畏果)”는 말이 있다. 이미 생사를 내려놓은 수련자에게 있어 자연히 인과와 원신불멸을 굳게 믿는다. 그들에게 있어 육신의 사망은 그리 두려운 게 아니다. 두려운 것은 오히려 집착과 업력이다.

많은 때 사람들이 어떤 물건을 두려워하는 것은 이 물건 자체를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그것이 가져올 후과(後果)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가령 한 사람이 높은 건물의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본다면 이때 떨어질까 두려운 것은 떨어져 내리는 그 자체를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떨어진 후과 즉 떨어져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만약 건물 아래에 두꺼운 에어매트리스가 깔려 있다면 그럼 어떤 이들은 뛰어내리는 것이 아주 재미있다고 여길 것이다.

살생(殺生)은 집착의 일종이다. 인과의 이치에 따르자면 살생은 업(業)을 짓고 업을 지으면 갚아야 한다. 만약 한 수련자가 업무를 위해 살생한다면 그럼 수련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또 지옥에 떨어져 직접 거대한 업력을 갚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진정으로 두려운 부분이다. 그러므로 이처럼 집착을 두려워하는 집착을 내려놓는 것은 더 어렵고 요구도 더 높은 것이다. 생사를 내려놓을 수 있음은 이미 아주 대단하지만 보다 높은 경지에는 보다 높고 보다 엄격한 표준이 있다. 이것은 수련자에게 자신의 심성(이미 생사를 내려놓았는지 여부와는 관련 없이)에 대해 아주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판단 및 자신의 생명의 더욱 본질적인 이익을 포기하는 거대한 용기를 요구한다. 왜냐하면 생명은 더욱 본질적으로 보다 미시적이고 또한 보다 거시적인 범위에 대응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체 속인의 집착(생사를 내려놓는 것)을 포기하는 것에 상대해서 말하자면 “깡그리 버림”은 보다 높은 버림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651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