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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수련 경험

글/ 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나는 1998년에 법을 얻은 대법제자다. 원래 문맹이라 글자를 하나도 몰랐기 때문에 처음 법을 얻을 때 사부님과 대법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 당시 남편이 아팠는데 마음씨 좋은 한 직장 동료가 내게 보서(寶書) ‘전법륜’을 주려 했다. 나는 글자를 몰라 봐도 내용을 몰랐고 남편은 그저 숨만 겨우 붙어있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몰랐다. 그래서 나는 책을 받고 싶지 않았다.

남편의 직장동료는 “아침에 연공장에 가서 먼저 연공동작을 배운 다음 남편에게 가부좌를 가르치면 됩니다”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어보고 나는 일단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새벽 4시경 연공장을 찾아가자 어느 동수가 아주 흔쾌히 내게 연공동작을 가르쳐주었고 나는 거의 다 배울 수 있었다. 당시 나는 병원에 가도 치료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질병이 있었는데 며칠 연공 후 기적이 나타났다. 사부님께서 내 몸을 청리해 주셨고 온몸이 다 아팠다. 하지만 며칠 후 나는 환골탈태하여 온몸에 병이 없고 가벼운 기분을 느꼈다.

그 후 나는 남편에게 인내심을 가지고 연공을 가르쳤다. 남편은 똑바로 앉을 수 없어서 의자 끝에 기대야 했다. 하지만 내가 계속 가르쳐주자 신기하게도 남편이 동작을 따라할 수 있었다.

나는 남편에게 기뻐하며 말했다.

“우리는 정말 신불(神佛)과 인연이 있나 봐요!”

남편도 기쁘게 웃었다.

며칠 후 남편도 나와 함께 연공장까지 걸어가서 연공할 수 있게 되었다.

이웃들은 모두 파룬궁이 정말 놀랍다고 감탄했다. 반년 동안 걷지도 못하던 사람이 단번에 걸을 수 있고 건강해지다니 정말 불가사의하다고 했다.

그러나 좋은 시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1999년 7월 20일 오전 7, 8시 경 경찰이 연공장에 찾아와 연공을 방해했다. 남편은 너무 놀라 일어나지도 못했다. 그때부터 우리는 연공을 그만두었고 몇 달 후 남편은 세상을 떠났다. 그때는 아이가 어리고 일거리도 없어서 나는 수련을 포기했다. 어떤 사람은 나더러 교회를 다니라 했고 어떤 사람은 또 무엇을 믿으라고 하여 나도 따라갔는데 많은 굽은 길을 걸었다. 그러나 결국 그 어느 것도 내 고통을 해결해주지 않았다.

2005년 어느 날, 외손자를 데리고 공원에 놀러 갔다. 나무 아래 앉아있는데 몇몇 사람들이 내 귀에 “사부님께선 아직 당신을 기다리고 계시니 포기하면 안 됩니다!”라고 하는 말이 들렸다. 그러나 내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즉시 사부님께서 나를 포기하지 않으셨고 나더러 다시 수련으로 돌아오길 원하시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집에 돌아온 그날 천천히 그 연공동작을 떠올렸고 며칠 후 사부님이 다시 소업(消業)을 도와주셨다. 나는 땀을 많이 흘렸으며 온몸이 아팠다.

그 후, 나는 연공하던 동수를 찾아가 다시 ‘전법륜’을 요청해 얻어왔다. 나는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단체법학습에 나갔다. 천천히 책에 나오는 글자를 점점 많이 알아볼 수 있었고 몇 년 후에는 ‘전법륜’ 책을 다 읽을 수 있었다.

2015년에 동수들과 나는 장쩌민을 고소했다. 반년 후 경찰이 집에 찾아와 소란을 피웠고 고소장 작성에 도움을 준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다. 당시 나는 사부님께 제자를 구해달라고 요청했다. “제자는 절대 동수를 팔아먹지 않겠습니다.” 나중에 경찰은 더 부르지 않고 나를 놓아주었다. 구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나는 진상을 알리다 몇 차례 악인의 제보를 당했다. 경찰이 또 집을 찾아와 수색하고 나를 공안국에 데려가서 불법으로 심문하며 파룬궁 수련을 포기하라고 했다. 나는 경찰에게 협조하지 않았고 사부님의 말씀에 따랐다.

“생사를 내려놓으면 신(神)이고 생사를 내려놓지 못하면 바로 사람이다.”(‘미국법회설법-뉴욕법회설법’)

나는 마땅히 이 가련한 생명을 구도해야 하니 사부님께 제자를 가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중에 몇몇 경찰은 그리 악하지 않았고 말하는 태도도 변했으며 나를 집에 가도록 풀어주었다.

나는 또한 몇 차례 생사관을 경험했다. 한번은 버스에서 떨어져서 움직일 수 없었다. 머리가 터졌고 피가 흘러내렸다. 내가 기절하는 순간 기사가 구급차를 불렀다. 나는 천천히 깨어났으며 괜찮다고 말하면서 병원에 가지 않았다. 구급차가 왔으니 출장비를 달라고 해서 80위안을 주고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연공을 하고 싶었지만 움직일 수 없어서 스승님께 나를 구해달라고 부탁했고 며칠 후 완전히 나았다.

나는 또한 계단에서 떨어진 적이 있고, 오토바이에 부딪히거나 높은 건물에서 떨어진 긴 의자가 어깨를 스쳐 지나가는 일을 만났으나 역시 아무 일도 없었다.

2016년 한 여자 동수가 병업관(病業關)을 넘고 있었다. 나는 매일 그녀를 돌보고 경문과 진상 자료를 보내기를 꾸준히 유지했다. 동수는 회복된 후, 나더러 멀리 거주하니 보내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동수의 일은 내 일이다. 아무리 멀거나 어렵더라도 견지해야 한다. 왜냐하면 대법제자는 하나의 정체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부님의 말씀에 따라 세 가지 일을 잘할 것이다. 그 어떤 문제를 만나더라도 늘 자신을 찾고 선(善)과 자비심을 수련해 내어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621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