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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배후에서 교란하는 귀신인가?

글/ 일본 대법제자

【정견망】

수련 과정은 또한 끊임없이 미혹을 타파하는 하나의 과정인데, 최후로 갈수록 수련이 더욱 더 명석해지는 느낌이 든다. 또한 최후로 갈수록 사부님께서 각종 형식을 통해 나를 위해 미혹을 타파해주시고 나로 하여금 집착업력을 똑똑히 보게 하시며 이를 통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신심(信心)이 백배로 늘어나게 하심을 느끼게 된다.

최근 이틀 연속 명혜망 교류문장에서 모두 좋지 않은 사상 염두나 사람 감수의 배후에 확실하고 확실하게 생명이 있다고 언급했다. 이것은 나로 하여금 깊이 생각해 보게 했다. 비록 전에도 그런 집착심 또는 사람의 감수 배후에 모두 업력으로 구성된 나와 같은 형상을 지닌 생명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각 지역 설법 11-대법제자는 반드시 법 공부를 해야 한다’에서 말씀하셨다.

“진정한 인체는 바로 이러하며, 단지 생활과정 중에서 가져온 느낌을 향수하고 있을 뿐이다. 당신에게 단 것을 주면 당신은 단 것을 알고, 당신에게 쓴 것을 주면 당신은 쓴 것을 알고, 당신에게 매운 것을 주면 당신은 매운 것을 알고, 당신에게 고통을 주면 당신은 괴로움을 알고, 당신에게 행복을 주면 당신은 기쁨을 안다.”

나는 아직 사람 속에 있고 또 인체(人體)가 있기 때문에 아주 많은 것들이 모두 우리에게 강제로 더해진 것임을 깨달았다. 나는 닫혀서 수련하고 또 사람 중에서 수련하기에 여전히 아주 미혹되어 있음을 느낀다. 하지만 연속 이틀간 명혜망에 유사한 문장이 발표된 것은 나로 하여금 이것은 수련 최후 시각에 사부님께서 동수의 체험을 통해 우리처럼 아직 인식이 올라오지 못하는 제자들의 미혹을 타파해주시고 이를 통해 마음을 닦는 중에서 집착을 제거하고 인식을 제고해 가급적 빨리 제고해 올라가게 하려는 것임을 깨달았다. 나는 비록 천목으로 보진 못하지만 동수가 한 말은 내게 의심의 여지없는 확신을 주었다. 이것은 곧 나에게 어떻게 사상업과 집착심을 대해야 하는지 마치 하나의 문을 열어준 것과 같았다.

이전에도 집착심이 나온 후 분명히 구별해야 하며 그 이후 마음속에서 그것을 제거해 없애야 함을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많은 경우 파도가 한번 지나가면 또 다른 파도가 밀려오곤 했다. 또 완고한 집착심에 대해서는 더욱 곤란했다. 제거한 것은 일부 표면적인 것들이었지만 단지 겉만 치료하고 근본은 치료하지 못한 느낌이 있었다.

마치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았다.

“어느 곳에 검은 기가 있으면 바로 그곳에 병이 있다는 이것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검은 기는 병을 조성하는 근본원인이 아니며, 더욱 깊은 한 공간 중에 그런 영체가 하나 있는데, 그것이 내보낸 이 장(場)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배출하거나 내보내는 것을 말한다. 당신이 배출해 보라! 잠시 후면 그것이 또 생기는데, 어떤 것은 힘이 커서, 배출되자마자 당겨져 되돌아오며, 스스로 거둬들일 수 있어 아무리 치료해도 잘 낫지 않는다.”

나는 전에도 그런 집착심을 배척했지만 잠시 후면 또 다시 돌아온 느낌이 있었는데, 지금에 와서야 배후의 그런 영체와 같은 생명이 있음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그것이 멋대로 나의 집착을 이용하고 끊임없이 강화시켰고 심지어 고통스런 감수를 억지로 함께 더해 나로 하여금 ‘내’가 견디기 어렵다고 느끼게 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상(眞相)이고 이것이 바로 사건의 근원이다. 그러나 지금은 목표가 명확해졌고 배후의 그런 생명이 작용을 일으키고 이를 통해 내게 사상업이 생기게 하거나 또는 집착심을 강제로 더했던 것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이후 좋지 않은 염두 내지 집착심으로 곤혹함을 느끼거나 고통스럽고 괴롭다고 느낄 때면 나는 곧 그 배후의 생명을 겨냥했다. 마치 배후에서 조종하는 생명을 직접 겨냥해 대치한 것 같았고 그것을 직접 소멸하는 것처럼 느껴졌으며, 배후의 생명을 고정하고 목표를 명확히 하자 효과가 아주 좋았다. 이렇게 하자 집착심 또는 완고한 집착심을 제거하기가 전보다 용이해졌음을 느꼈다.

전에도 비록 발정념으로 이런 집착심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러나 구별정도가 지금처럼 명확한 정도에 이르진 못했다. 전에는 그냥 내게 집착심이 있다고만 여겼다. 비록 그 집착을 똑바로 간파하긴 했지만 마음속에서는 늘 ‘나’의 집착심으로 여겼고 진정으로 자신의 마음속에서 그런 집착심을 나와 철저히 분리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것은 배후의 생명이 교란하는 귀신이라고 확신하게 되었고 그것과 나를 명석하게 분리할 수 있게 되었으며, 다시 말해 나에게 억지로 더해진 이런 집착을 승인하지 않게 되었다. 생각해보니 전에 효과가 충분히 좋지 못했던 이유는 구별이 철저하지 못했기 때문인데, 내 몸에서 감수할 수 있으면 곧 자신도 모르게 ‘나’의 고통이라 여기고 비자각적으로 그 집착심을 자기라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인식이 제고된 후 구별이 더욱 철저해짐을 느낄 수 있게 되었고 효과도 더욱 뚜렷해졌다.

사부님께서는 ‘각 지역 설법 2-미국플로리다법회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다시 말해서 이 일은 이처럼 오랜 연대(年代)를 거쳐 모두 계통적으로 배치한 것이다. 그럼 여러분 생각해 보라. 인류 사회, 우리들이 볼 수 있는 이 일체가 우연히 존재하는 것인가? 현재 매 대법제자의 일거일동, 일언일행, 심지어 당신이 사색하는 문제마저 모두 간단한 것이 아니다. 장래에 당신들은 모두 매우 세밀하게 배치된 것임을 볼 것인데, 내가 배치한 것이 아니며, 이는 이런 구세력(舊勢力)이 배치한 것이다.”

나는 우리의 일사일념(一思一念)이 법에 있지 않기만 하면 배후에는 곧 구세력의 생명이 와서 우리를 조종하거나 심지어 사상마저도 우리에게 밀어 넣고는 우리더러 자신이 이렇게 생각한 것이라고 만들게 함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직접 이 생명을 목표로 지향하는 것은 바로 구세력의 안배를 부정하는 것이 아닌가? 지금은 일사일념을 닦는 것에 대해서도 보다 깊은 이해가 있게 되었다. 만약 우리가 시시각각 법에서 문제를 사고하지 않는다면 곧 구세력 등 우리가 볼 수 없는 생명에게 조종되고 이용당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전에 나는 수련이 몹시 어렵다고 느꼈지만 사부님의 가호와 인도가 있었기에 지금은 수련의 길이 갈수록 더 넓어짐을 느낀다.

이상은 개인이 소재한 층차에서의 깨달음이니 법에 있지 않은 곳이 있다면 자비로운 시정을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648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