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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리된 후

글/ 일본 대법제자

【정견망】

사부님께서는 《창춘보도원법회 설법》에서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모든 사람이 여기에서 수련할 수 있게 하려고 우리는 이런 수련 형식을 채택했는데, 이는 가장 빠른 것으로서 당신의 잘 닦은 그 부분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여 갈라놓는다.”

“마치 나무의 나이테와 같이 수련 중에는 한 바퀴, 한 바퀴씩 밖으로 확산하고 있는데, 나무껍질은 당신의 표면이다. 그렇다면 그는 수련이 잘 된 그 부분에서, 안에서부터 밖으로 수련하는데, 최후에는 표면까지 수련한다. 당신의 수련 잘된 그 부분은 신이고, 수련 안 된 그 부분은 사람이다.”

다년간의 착실한 수련을 거치고 반복적으로 ‘격리(隔開)’ 이 방면의 설법에 대한 수련경험을 총괄하니 갈수록 더 깊이 깨닫게 되었고 미망에서부터 더 이상 허둥대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비록 20년 넘게 수련한 노(老)제자라고는 하지만 그동안 착실히 수련하지 못했다. 전반기 십 수 년의 수련과정에서 나는 무슨 ‘격리’의 감수나 기억이 전혀 없었다. 진정으로 착실히 수련한 것은 대략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처음 착실히 수련한 후 사부님께서 신체에 붙어 있던 물질들을 제거해주신 후 자비롭게 들어 올려주셨는데 경지가 승화된 아름다운 상태를 느꼈다.

하지만 일단 격리되자 여전히 몸 위에 한 층의 두터운 사람의 물질이 덮여 있었다. 격리된 후 오히려 ‘격리’상태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자신에게 남아있는 사람의 부분을 끊임없이 닦아 없애고 계속해서 수련해 올라가야한다는 것은 더욱 몰랐다. 이에 한 층차에서 아주 오랫동안 배회했다. 그러므로 그때 비록 수련하고 있었다고는 해도 속도는 정말 완만하게 ‘격리’되는 느낌이었다. 때로는 몇 달에서 심지어 반년에 이르러야 비로소 이런 느낌이 한번 들었다. 그러나 이 역시 나의 주의를 끌지 못했고 심지어 생각조차 많이 해보지 않았다. 그러다가 나중에 한 차례 맹렬한 ‘격리’가 나를 마치 꿈에서 깨어나게 했다.

역병 이후 나는 시간의 긴박함을 느꼈고 수련의 발걸음을 더 가속화했다. 매사에 안으로 찾자 나는 듯이 신속히 제고되기 시작했다. 하루는 가부좌 중에서 갑자기 입정(入定)에 들어갔는데 세상이 완전히 사라지고 일체가 다 사라진 것 같았으며 완전히 공(空)의 상태였다. 이튿날 사부님께서 나를 신(神)의 상태로 밀어주셨다. 비록 닫혀서 수련하긴 하지만 나는 자신이 세상과 격리된 느낌이 들었다. 그러므로 상대방이 무엇을 말해도 나의 마당 속으로 들어오지 못했고 때문에 마음도 움직이지 않았다.

정법(正法) 일을 하는 것도 완전히 정념이 충족함을 느꼈으며 일체 사악마저도 접근할 수 없었다. 이런 상태가 약 3일을 지속했는데 4일째 되는 날 갑자기 나를 세간과 격리시켰던 갓이 보이지 않았다. 사람의 모든 희로애락이 다시 새롭게 내 몸에 돌아왔고 나는 뜻밖에도 상대의 지적에 따라 마음이 흔들렸으며 심지어 남과 논쟁까지 했다.

이 상태가 출현한 후 당시의 나는 붕괴되었다. 어제는 그렇게 좋은 상태였는데 오늘은 왜 신에서 사람 이곳으로 떨어져 내려왔는가? 나는 목 놓아 울면서 내가 사람으로 다시 변한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동수와 교류하자 그녀가 말했다.

“당신 이건 분명 격리된 상태가 아닌가요, 걱정하지 마세요, 이건 아주 정상이에요. 만약 격리하지 않으면 당신이 어떻게 계속해서 위로 수련할 수 있겠어요, 당신이 늘 한 층차에 있는 건 아니잖아요?”

사부님께서는 《창춘보도원법회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예를 들어 말하자면 수련이 잘된 부분이 이미 100층이나 된다 해도 당신의 표면에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단지 한 층뿐이라는, 바로 이런 뜻을 말하는 것으로서, 그것의 비례가 아주 작은데, 목적은 당신으로 하여금 속인 중에서 수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만약 모두 다 제거해 버려 당신에게 속인의 어떠한 관념과 속인의 어떠한 생각이 없다면 당신은 표면상에서도 속인이 아닌바, 그렇다면 당신은 속인 중에서 수련할 수 없다.”

원래 이것은 정상상태가 아닌가, 나는 서서히 마음을 안정시켰다.

‘격리’란 이런 상태는 나의 표현이 마땅히 아주 전형적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나는 ‘격리’ 전에는 늘 법리가 분명했고 법의 요구에 따라 자신을 착실히 수련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단 ‘격리’되고 나자 나는 곧 수련의 기억마저 잃어버린 것 같았고 또 다시 사람의 이치를 말하기 시작했다. 마난 역시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최근의 한 차례 겪었던 격리를 예로 들어보자.

‘격리’ 전 나의 상태는 아주 좋았다. 조금이라도 속인의 부면(負面)적인 사유가 없었으며 그 어떤 일을 만나도 오직 자신만을 보고 남을 보지 않았다. 남이 나를 좋지 않게 대해도 곧 자신에게 어떤 사람마음이 있는가 하고 찾았으며 자신의 마음이 이 관(關)을 촉성했다고 여겼다. 수련이 그야말로 실질에 가까웠고 표면의 가상에 이끌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 배후의 다른 공간에서 일체를 조종하는 실질에는 곧장 반응했다. 마음속으로 아주 평온했고 흉금이 몹시 넓게 느껴졌으며 물론 관을 넘는 것도 아주 가뿐했다.

그러나 이튿날 ‘격리’되고 나서 단번에 나는 또 남의 부족을 보게 되었고 초조함 등 사람의 부면적인 그런 정서들이 끊임없이 솟아나왔으며 속으로 용량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 평온했던 상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심지어 어제 깨달은 법리조차 생각하지 못했고 모순 속에서 스스로에게 자신을 찾아야 한다고 여겼지만 거의 주의식을 움직이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 한 순간의 느낌은 사람의 물질이 또 나를 뒤덮은 것 같았고 그때의 나는 너무나 약했다.

하지만 이런 반복적인 ‘격리’를 이미 여러 번 겪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당황하지 않았다. 설사 전과 같은 부동심(不動心)을 해내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표면적으로 자신이 남과 논쟁하려는 사람마음을 제어(일단 억지로 참는 것)할 수 있었다. 집에 돌아온 후 조용히 법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대법은 마치 한 가닥 맑은 샘처럼 한 방울 한 방울 나의 혈액에 녹아들어갔고 사람의 그런 패물(敗物)들이 끊임없이 제거되거나 용해되었다. 나는 마치 기갈(飢渴) 들린 사람처럼 대법의 감로(甘露)를 받아들였다. 이건 절대적으로 한 가지 비유가 아닌데 대법에 대한 나의 확고한 믿음이 나를 진실로 개변하게 한 것이다. 그렇다, 나는 오직 30페이지의 법을 배웠지만 신적(神跡)이 곧 내 몸에서 나타났다.

나는 마치 미혼약을 마신 후 다시 해독약을 찾은 것처럼 단번에 소생되었고 마음속의 패물이 사라지고 마음이 탁 트임을 느꼈다. 나는 대법이 나를 도와 정념을 회복시키고 나의 신의 일면을 다시 부활시켰음을 알았다.

일부 동수들과 교류한 후 현재 어떤 사람은 다년간 ‘격리’를 감수하지 못한 것을 발견했다. 이는 어느 한 층차에 너무 오래 머문 것이 아닌가? 아니면 어떤 동수는 ‘격리’상태를 겪었음에도 아주 오랫동안 또 양호한 상태를 회복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여기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렇다. 일단, 격리된 후 남은 사람의 부분이 감수하는 것은 반드시 사람의 사상, 사람의 정서이며 잘 수련되지 못한 사람의 각종 집착심이다. 우리가 반응할 수 있는가 없는가는 수련 중의 정상상태이지만 ‘격리’된 후 사람의 것이 몸에 돌아온 것을 즉시 구별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비자각적으로 교란 당해 비관적이고 소극적이 된다면 계속해서 신속하게 위로 제고할 수 없다.

사부님께서는 《창춘보도원법회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모든 사람이 여기에서 수련할 수 있게 하려고 우리는 이런 수련 형식을 채택했는데, 이는 가장 빠른 것으로서 당신의 잘 닦은 그 부분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여 갈라놓는다. 당신이 끊임없이 수련하고, 끊임없이 책을 보며, 끊임없이 인식하고, 끊임없이 명백해지면 바로 당신의 범위는 끊임없이 확대된다. 다시 말해서 갈수록 당신 표면으로 온다. 표면이 모두 개변되면 바로 원만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당신의 사상 중에 아직 좋지 못한 사상이 있다고 해서 겁먹지 말라. 그러나 한 가지 문제점이 있는데, 사부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명백해졌다고 하셨으니, 이는 속인 중에서 수련할 수 있음을 보증한 것이므로, 좋다, 나는 그것에 관계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다. 당신의 방임은 당신이 수련하고 있지 않은 것과 같은바, 바로 이런 관계이다.”

그러므로 내가 깨달은 것은 우리가 정확하게 ‘격리’된 상태를 이해하고 이런 상태가 다시 출현한 후 사람의 그런 것에 따라 미끄러져 내려가지 말아야 하며 사람의 그 일면에 이끌리지 말아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명시하셨으니, 이런 상태의 출현 이후 우리는 마땅히 바로 법학습을 해서 끊임없이 인식을 제고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개변시켜 줄곧 원만까지 이르도록 끊임없이 신(神)의 일면을 충실 시켜야 한다.

이상은 개인이 소재한 층차에서 깨달은 것으로 만약 법에 있지 않은 곳이 있다면 자비로운 시정을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646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