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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찾아 신념(神念)・인념(人念)・악념(惡念)을 똑똑히 구별

글/ 중국대륙 신생(新生)

【정견망】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다.

“참음(忍)은 心性(씬씽)을 제고하는 관건이다. 화가 나 원망하고, 억울해하면서 눈물을 머금고 참는 것은 속인이 해를 입을까 염려하는 참음이다. 화를 내거나 원망함이 전혀 생기지 않으며 억울함을 느끼지 않는 것이야말로 수련자의 참음이다.”[1]

그렇다면 어떻게 수련자의 참음에 이를 수 있을까? 나는 法輪大法(파룬따파)를 20여 년 수련했지만, 여전히 억울해하면서 눈물을 머금고 참는 상태에 머물러 있고 수련자의 참음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런 상태를 조성한 원인은 무엇일까?

최근 신체에 일부 문제가 나타났는데, 처음에는 자신이 수련을 느슨히 해서 조성된 것으로 생각했다. 나는 곧 자신의 집착심을 찾아보았는데 적지 않은 집착심을 찾았다. 그러나 여전히 근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나중에 나는, 수련을 20여 년이나 했으니 온 종일 신념(神念)을 움직여야 하며, 인념(人念)은 움직이지 말아야 하고 더욱이 악념(惡念)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신념(神念 신의 생각)이고, 무엇이 인념(人念 사람의 생각)이며, 무엇이 악념(惡念 악한 생각)인가? 20여 년을 수련했지만, 아직도 그런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신념, 인념, 악념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신성(神性)을 수련해 낼 수 없다.

1. 신념(神念)에 대한 이해

한참을 조용히 생각한 끝에 홀연히 깨달았다. 신념이란 자비(慈悲)・관용(寬容)・대도(大度 큰 도량)가 아닌가? 홍대한 관용, 모든 생명에 대한 자비, 평상시 발생하는 모든 일에 큰 도량으로 대한다면, 그것이 바로 신념이 아닌가? 그렇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천상(天上)에는 왕이 아주 많다. 여러분이 아는바 석가모니가 말하기를 여래불(如來佛)은 마치 갠지스 강의 모래와 같이 많다고 했는데, 인도의 갠지스 강에는 얼마나 많은 모래가 있는가? 어찌 이뿐이겠는가? 이는 석가모니가 형용해 말한 한 마디이다. 매 여래불은 모두 법왕(法王)으로, 그것은 불가(佛家)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불가는 단지 보편적이고 아주 많은 신(神) 중 하나일 뿐이다. 얼마나 많은 신이 있겠는가? 얼마나 많은 이런 왕(王)이 있겠는가? 만약 매 왕이 한 가지 일이 발생할 때 모두 당신들과 같이 이렇게 한다면, 잘못된다.”[2]

“그들에게는 그들이 위치하고 있는 층차(層次)의 상태와 부합되지 않는 이런 논쟁이 없다. 물론 그들은 진리(真理)를 보아낼 수 있고 가장 좋은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아낼 수 있지만, 간혹 일부 인식 면에서 어느 정도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렇다 해도 그들은 논쟁하지 않는다. 그것은 일종의 홍대(洪大)한 관용(寬容)이고, 생명에 대한 자비(慈悲)이며, 일체를 모두 선의(善意)로 이해할 수 있는 상태이다. 인간의 말로 하면 다른 사람을 모두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때때로 우리는 아주 강한 속인의 마음을 가지고 쇠뿔 속으로 파고 들어가서 늘 빠져나오지 못하는데,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 집착하게 되고, 생각하면 할수록 당신의 이 마음은 더욱 들끓게 되며, 생각하면 할수록 그 마(魔)에 더욱 이용당하게 된다.”[2]

사부님의 설법을 읽고 나는 분명히 알게 되었다. 홍대한 관용, 생명에 대한 자비, 평상시 발생하는 모든 일에 큰 도량으로 대함이 바로 신성(神性)이며, 우리 수련인의 마음에서 나온 다른 사람에 대한 관용의 마음이 바로 신념이고, 어떤 생명에 대해서도 자비로운 마음이 신념이며, 발생한 모든 일에 대해 늘 큰 도량으로 일체를 관용할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신념(神念)을 움직인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자 동료 수련생, 속인과의 오랜 원한, 오랫동안 눈물을 머금고 참으며 생겼던 모든 억울함과 화나고 미워했던 마음을 내려놓게 되었다. 나의 신체도 눈에 띄게 좋아졌고, 사부님께서도 많은 좋지 않은 것들을 없애주셨다.

2. 무엇이 인념(人念)인가?

신념이 무엇인지 깨달은 후, 나는 또 인념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인성(人性)이 사(私)하고, 위사위아(爲私爲我)한 염두에 부합하면 바로 인념이다. 다른 사람과 모순이 발생했을 때 다른 사람의 마음을 관용하지 못하고, 단지 이 일은 당신의 잘못이라고만 생각하며, 나를 왜 이렇게 대하는가? 라고 생각하거나 나는 잘못이 없고 당신이 잘못이라거나 혹은 나의 이익을 다른 사람이 침해했다거나 다른 사람은 절대 나를 속여서는 안 된다는 등등 일련의 좋지 않은 생각, 내 생각에 이런 것들이 모두 인념이다.

비록 이런 생각을 말로 표현하지 않았더라도, 이미 인념을 움직인 것이다. 또 자신은 수련인이니 참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바로 눈물을 머금고 참는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화를 참지 못하며 장기간 이렇게 나아가면 가슴에 화가 쌓여 가슴에 통증이 생기며, 더 심해지면 신체 다른 부위에 부정확한 상태를 가져올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오랫동안 신념(神念)이 없고, 인념만 있어 비로소 나타나는 신체의 부정확한 상태이다.

여기서 병업관(病業關)에 있던 동료 수련생을 도운 한 수련생의 일을 말해보고자 한다. 그는 줄곧 동료 수련생을 질책했다. 이것을 잘못했고, 저것을 잘못했고 하면서도 자신은 오히려 수련생이 집착심을 찾도록 도와주었다고 여겼다. 사실 이것은 수련생을 도와 준 게 아니라 오히려 마난(魔難)을 가중시킨 것이다. 왜냐하면 동료 수련생을 질책하는 과정에서 신념을 움직이지 않고, 인념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그 수련생도 비록 말은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화가 났다. 겉으로 표현되는 것은 눈물을 머금고 참은 것이다. 우리가 동수를 도울 때는 마땅히 그가 모든 원망하는 마음을 버리고, 신념을 움직여 넓은 아량으로 일체를 관용할 수 있도록 일깨워줘야 한다. 동수가 그에게 발생한 모든 일을 관용과 자비롭고 큰 아량으로 처리할 수 있다면, 나는 그의 병업관도 매우 빨리 넘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일부 병업관을 넘긴 수련생을 알고 있는데, 많은 수련생의 마음속에는 모두 다른 사람을 원망하는 마음이 있었다. 제거하지 못하면 병업관이 장기간 지속되며, 일부 심한 경우에는 병마에 의해 육신을 빼앗기기도 한다.

나는 그것들 대부분이 장기간 신념이 없고 인념만 있어 조성된 것임을 깨달았다. 따라서 마땅히 홍대한 관용, 일을 대하는 큰 아량, 생명에 대한 자비로운 신념(神念)을 구비해야 하는데, 그것은 또한 인념을 배척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3. 무엇이 악념(惡念)인가?

나는 사람에게 인념이 생겨나고, 자신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해, 인념에 따라 다른 사람에게 성질을 부릴 때면 바로 마(魔)에게 이용당하는 것이며, 이때 마성의 대폭발로 나타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이때는 인념이 악념으로 변한 것이다.

사람이 악념의 지휘를 받으면, 곧 이지를 잃고 화를 내고 다투거나 심지어 때리고 싸운다. 이런 악념은 우리 수련인에게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평소 동료 수련생을 도울 때, 만약 동료 수련생을 줄곧 질책한다면, 사실 이런 방식 역시 무의식적으로 인념을 움직인 것이다. 이 인념이 마(魔)에게 이용당하면 동수에게 많은 마난을 조성한다. 이에 내가 깨달은 것은 오직 우리가 한 말이 남이 받아들이기 어렵거나 또는 불쾌하게 한다면 그럼 이런 말을 하도록 지휘하는 생각이 바로 악념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후, 나는 곧 인념을 배척하는데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어디 앉기만 하면 머릿속에 항상 어떤 사람이 떠올랐고, 잠시 후, 누구누구가 나를 좋지 않게 대했으니 그를 상대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잠시 후에는, 누구누구가 나에게 좋지 않은 말을 했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어제 속아서 물건을 산 것이 생각나고, 누구누구가 나에게 화낸 것이 생각나서 마음이 괴로웠다. 사상 중에 이런 인념으로 꽉 차 있으니 마음이 대단히 혼란스러워 평정(平靜)하기 아주 어려웠다. 이때 대법 책을 꺼내서 보면 잠시 나아지지만, 대법 책을 내려놓으면 또 다시 이런 문제들이 어지럽게 떠올랐다.

이에 나는 깨달았다. 내가 마땅히 제고하려면, 머릿속이 신념(神念)으로 채워져야만 한다. 이때 내 마음에 홍대한 관용이 생겨나고, 나에게 좋지 않게 대했던 일체 사람이나 일을 널리 양해하게 된다. 사람이나 일에 대한 일체 원망을 내려놓고, 그런 다음 지속적으로 대법 책을 보고 명혜 교류문장을 읽어, 대법의 법리로 머리를 가득 채워야 한다. 나는 갑자기 가슴에서 한 덩이 혼탁한 기(氣)가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고 곧바로 몸이 가벼워졌으며 며칠 동안 몸을 힘들게 했던 증상도 아주 빨리 사라졌다. 또 며칠 동안 식욕도 없었는데 식욕도 좋아졌다.

이제 나는 눈물을 머금고 억지로 참지 않을 수도 있고, 진정 ‘억울함을 느끼지 않는 참음’을 해낼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정말 일념(一念)으로 좋고 나쁨을 결정한 것이 아닌가!

이상은 ‘무엇이 신념이고, 인념이고, 악념인가?’에 대한 나의 얕은 인식이다. 바르지 못한 곳이 있다면 여러분들이 자비롭게 바로 시정해주기 바란다. 감사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서: ‘정진요지 – 무엇이 참음인가’
[2] 리훙쯔 사부님 저서: ‘각 지역 설법 2 – 2002년 보스턴법회설법’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64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