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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에 순금은 없고 사람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글/ 청풍(清風)

【정견망】

한자 성어(成語)에 ‘금에 순금은 없고 사람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金無赤金 人無完人)’는 말이 있다. 송나라 때 대복고(戴複古)가 지은 ‘기흥(寄興)’이란 시에서 유래한 말이다. 세상에는 본래 십전(十全)십미(十美)한 완벽한 사람은 없고 금에도 완전한 순금은 없으니 사람은 누구나 장점이 있으면 결점도 있게 마련이란 뜻이다.

사부님께서는 “매 한 단어의 개념, 그것의 내포는 모두 천만 년 역사의 실제 연기(演出)를 거쳐 걸어온 것이며, 역사의 과정에서 언어의 내포를 배양한 것이다.”(《각 지역 설법 7》-미국서부국제법회설법)라고 말씀하셨다.

오늘 나는 문득 이 성어를 떠올리며, 단번에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 말해, 우리는 오랜 역사의 장하(長河) 속에서 무수히 많고 비할 바 없이 풍부한 연기를 펼치며 서로 다른 각도와 층차에서 이 단어의 개념과 내함을 표현해왔으며 또한 이것은 단지 순금을 사용해 완전한 사람이란 없다는 단순한 비유를 한 게 아니라 사실 구(舊)우주 속 생명의 진실한 상태를 말한 것임을 깨달았다.

우리는 비할 바 없이 순결한 경지(境界)에서 한 층 한 층 아래로 떨어져 내려왔으며 사람 이 층차에 왔을 때 우리 생명은 일찍이 불순(不純)해졌다. 사람뿐만이 아니라 이 한 층차 중의 그 어떤 물질도 모두 이와 같은데, 우리 사람의 상태와 대응하며 한 세트로 조합되었다. 가령 금을 예로 들어 말하자면 그것을 어떻게 제련하든 모두 백퍼센트 순금이 될 수는 없다. 사실 어찌 금만 그렇겠는가? 다른 화학원소들 역시 모두 마찬가지다.

한 속인이 아무리 좋을지라도 신체가 모두 순정(純淨)할 수는 없다. 속인의 각도에서 보면 이렇고 이는 수련의 각도에서 봐도 마찬가지다. 수련 과정이란 바로 끊임없이 사람의 집착심을 제거하는 과정이며 개인적인 이해로도 우리 육신과 다른 모든 공간의 신체가 끊임없이 순정해지는 과정이다. 하지만 우주는 이미 법에서 많이 벗어났기 때문에 과거의 수련인은 설사 수련성취한다 해도 원래의 백퍼센트 순정한 상태로 되돌아갈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 원래의 세계 자체가 불순해졌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과 최후 결과를 표현하기에 ‘금에 순금은 없고 사람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金無赤金 人無完人)’는 성어는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하다.

흰 천을 염색항아리에 넣고 천을 완전히 담그면 색이 변하지 않기란 불가능한 것처럼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속인의 큰 염색항아리 속에 담겨 있는데, 이 염색항아리란 단순한 비유가 아니며 다른 공간에서 보면 하나의 진실한 장면이다.

우리는 수련과정 중에 늘 자신이 아무리 정진한다 해도 늘 많은 집착심을 제거하지 못한 느낌을 받게 되는데 이 때문에 쉽사리 조급한 마음이 생기거나 또는 극단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사실 이런 생각은 전혀 불필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수련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각종 집착과 크고 작은 각종 업력이 있어 최후에 수련성취 되지 않았다면 좋지 않은 것들이 우리 사상과 행동 중에 반영되어 나오기 마련이며 이는 정상적이고 필연적이기 때문에 수련에 마음을 쓰면 된다.

‘금에 순금은 없고 사람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고 하지 않는가, 다행히 우리가 수련하는 것은 우주대법이며 사부님께서는 제때 우리의 수련 잘된 부분을 격리시켜 더 이상의 오염을 피할 수 있게 해주신다.

물론 우리는 끊임없이 정진해야 하며 생명 역시 끊임없이 순정해져야 하지만 자신의 힘만 의지해서는 완전한 순정함에 도달할 수 없다. 사실 첫 시작부터 최후에 이르기까지 사부님께서는 줄곧 우리를 가지(加持)하며 우리가 최종적으로 ‘순금’에 도달하고 ‘완벽한 사람’에 도달하게 하신다. 왜냐하면 우리가 수련하는 것은 우주의 근본대법이며 우리의 수련은 기존의 그 어떤 수련형식이나 법문의 정법수련과도 다르기 때문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629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