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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서의 세월 호탕한 사부님 은혜(7), 호주와 뉴질랜드 법회 회억

작자/대법제자 소엽

【정견망】

호주법회
(1)
1999년 4월 25일 북경에서 세상을 놀라게 한 4.25가 발생했다. 이날 북경에는 파룬궁 수련생 만 명의 평화 청원 사건이 있었다. 이때부터 일주일 후 호주 법회가 개최될 예정이었다. 책임자 젊은 위(魏)씨는 특별히 전화를 걸어 나더러 반드시 참가하라고 권했다. 나는 “갈 수 없어요, 비자 유효기간이 끝났어요.” “여권 확인해 봤어요?” “안 봤어요.” “그런데 어떻게 기간이 만료된 지 알아요?” 내가 다시 보니 정말 기간이 지나지 않았다. 그는 나더러 빨리 가라고 부탁했다.

이 민감한 역사 시각에 나는 이번 법회가 매우 심상치 않음을 알았다. 나는 북경 동수들이 많이 가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들은 소식을 기다려야 한다며 누구도 북경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정사대전(正邪大戰)은 이미 서막이 열렸고 이것은 폭풍우가 오기 전의 잠시의 정적이었다.

4월 말 나는 혼자 시드니로 날아갔다.

(2)
5월 2일 ‘전 호주 파룬따파 수련 심득교류회’가 시드니에서 경치 좋은 달링항 국제회의센터에서 거행되었다. 미국, 캐나다, 스웨덴, 태국, 일본, 뉴질랜드, 싱가포르, 홍콩, 마카오, 인도네시아, 중국 등에서 2,700여 명의 수련생들이 참가했다.

법회가 시작되자 열렬한 박수소리와 함께 사부님께서 강연대로 올라와 설법하셨다.

사존께서 세 번째 호주에 오시어 설법하셨다.
사부님께 헌화하는 대법제자 
법회 단상 위로 발출된 거대한 에너지
사부님 설법을 경청하는 2천여 명의 제자들
사부님 설법을 경청하는 2천여 명의 제자들

사부님께서는 4.25 사건에 대해서는 말씀이 없으셨고 기존처럼 제자들에게 어떻게 수련하고 어떻게 제고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말씀하셨다. 하지만 필경 4.25 사건은 파룬궁 수련생이 직접 참여한 것으로 이렇게 하여 사람들이 잘 모르던 파룬궁을 세계무대로 밀어 올리게 되었다. 때문에 이번 법회에는 많은 매체 기자들이 사부님을 인터뷰하려 했다. 이 정황에 대해 사부님께서는 한 단락의 설법을 하셨다.

“여기 앉은 분들 가운데 일부 기자도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천리 길도 마다하지 않고 왔을 것인데, 나는 여러분들을 이해한다. 나 리훙쯔(李洪志)는 속인 중에서 이름을 날리려 하지 않으며, 나는 그저 대법을 수련하는 나의 이런 제자들, 수련생들을 책임지려 할 뿐이다. 내가 호주에 온 목적은, 수련 중에 존재하는 그들의 문제들에 해답해 주어 그들로 하여금 제고되어 올라올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당신들이 왔으므로 나 역시 당신들이 빈손으로 돌아가게 하고 싶지 않다. 예전 나의 요구는, 『전법륜』을 끝까지 보지 않았다면, 나는 당신이 기자라도 만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신이 우리들에 대한 요해(了解)를 갖고 있어야만 나는 비로소 당신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왜냐하면 내가 전한 것은 대단히 크기 때문에 몇 마디 말로써는 전혀 명확히 말할 수 없다. 당신이 알고 싶어 하는 것은 모두가 속인사회 중의 문제들인데 나 또한 해답해주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현재 나는 속인 중의 일에 전혀 관여하지 않으며 사회상의 일에 전혀 관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왕 당신들이 왔으므로, 나는 당신들이 오늘 여기에 앉아서 조용하게 우리 수련생들의 발언을 듣고, 이틀간의 우리 전체 법회(法會)를 다 들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 다음 내가 당신들을 대면할 때 당신들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이 회의기간에 나는 절대로 어떠한 사람도 만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수많은 일들을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법회는 수련생들로 하여금 진정으로 제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절대로 형식이 아니고 절대로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박수) 됐다. 나는 이만큼 하겠다.”

이어서 수련생들의 교류 발언이 있었고 사부님은 시종 회의장에 남아 발언을 들으셨다.

(3)
5월 3일 오전 가랑비가 내렸다. 각국 수련생들은 달링항 잔디밭에서 배자(排字 역주: 여러 사람이 대열을 지어 글자를 만드는 것)와 단체 연공을 준비했다. 내가 잘못 기억하지 않았다면 이는 해외 수련생들이 최초로 한 대형 배자였다. 수련생은 각자 자리를 잡아 섰을 때 하늘은 맑아졌고 노란색 옷을 입은 우리는 중문과 영문으로 “真 善 忍”, “FALUN DAFA”란 대형 글자를 만들었다.

시드니 달링항에서 배자와 연공하는 파룬궁 수련생들

이는 한 폭의 수승하고 장엄한 장면이었다.

이때 연공 음악이 울렸다. 자비롭고 상화 편안한 장면에 흡인된 많은 행인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구경했다.

연공이 끝날 때 진행요원이 사부님께서 와서 참관한다고 발표했다. 사람들은 기뻐서 열렬한 박수를 쳤다. 사부님은 미소로 마이크를 잡고 사람들의 홍법의 역할을 긍정하셨다. 또 우리더러 연공동작이 좀 더 가지런해야 에너지장이 더욱 강하고 홍법 효과도 더 좋을 거라고 일깨워 주셨다.

(4)
오전에는 수련생들이 계속 발언했고 오후에는 사부님께서 제자들의 질문에 해답하셨다.

수련생들이 4.25 사건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거나 아니면 이 사건이 유발할 결과에 대해 소홀히 했는지 모르겠지만 제출된 문제 중에서 4.25에 관한 문제는 의외로 적었다. 어쩌면 우리가 정체적으로 정법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서인지 아니면 대법제자가 너무 선량해서 사악이 파룬궁을 억누르려는 이 점에 대해 전혀 어떤 마음에 준비도 없었는지 모른다.

법회 후 사부님께서는 기자들을 접견하셨다.

기자들은 파룬궁에 대해 하나도 몰랐고 무슨 문제든지 다 물어보았다. 사부님은 인내심 있게 대답해주셨다. 그중 한 명이 사전에 일이 있어서 미리 장소를 떠나려고 했다. 사부님은 그가 의심이 있어서 여론을 오도할까 봐 통역에게 부탁해 그를 잠시 머물게 하고 인내심 있게 그에게 설명해주셨고 그가 명확히 답하고 문제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떠나도록 하셨다.

사실에 대한 바른 이해를 확실하게 하기 위해 법회가 끝난 후 얼마 후 사부님의 허락을 받아 호주 매체에 사부님께서 기자들과 가진 회견의 전문을 발표했다.

이 일이 있은 후 호주의 중문과 영문 매체들은 대부분 파룬궁에 대해 긍적적으로 보도했다. 그중 내게 가장 인상이 깊은 보도는 제목이 <동방이 붉어지니 태양이 솟아오른다. 중국에 파룬궁이 나오다>.

호주법회 후기
(1)
나는 법공부할 때 어려운 문제를 만났는데 책에 문자나 뜻이 때때로 변하는 것이었다. 이 문제는 나를 오랫동안 곤혹하게 했다. 나는 본래 시드니 법회에서 제출하려 했는데 내가 이 문제를 제기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사부님께서 공개적으로 해답하시기에 적합한가 아닌가, 그래서 제출하지 않았다.

어느 날 밤 갑작스런 전화를 받았다. 우리더러 공항에 나가 뉴질랜드로 떠나시는 사부님을 배웅하라는 요청이었다.

우리는 곧장 공항으로 달려갔다. 얼마 후 사부님께서 수련생들을 대동하고 오셨다. 사람들이 사부님을 둘러싸고 이야기하며 웃었다. 당시 나는 사부님 왼쪽에 바싹 붙어 있었는데 기회를 보아 사부님께 여쭤보았다. “사부님 제자가 법공부 중에 한 가지 문제가 있는데 말을 해도 될까요?” 사부님은 된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법공부 중의 곤혹스런 문제에 대해 말씀드렸다. 사부님의 대답은 대강 이랬다. “어떤 것은 나타난 것이 옳고 어떤 것은 나타난 것이 마가 교란하고 당신을 속이는 것이다. 그러니 당신 스스로 잘 분별해야 하며 법으로 가늠해야 한다.”

사부님께선 내가 북경에서 온 제자임을 아시고는 몸을 돌려 재삼 당부하셨다. “어떤 일이 발생할지라도 당신은 전부 상관하지 말고 오직 수련만 하세요. 어떤 일이 발생하든 오직 수련만 하세요. 기억하세요 ‘당신 자신을 잘 수련하고 다른 건 모두 상관하지 마세요.’”

나중에 나는 법에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전에 사부를 따라 내려왔거나 부동한 역사 시기에 사부와 인연을 맺었던 이러한 사람은 매 일생, 매 일세 모두 업력을 깨끗이 없애고 나서 다시 전생했다.”(《세계 法輪大法의 날 설법》)

자비로운 사부님께서 다시 나를 보호하신 것이다.

(2)
일 년 후 시드니에서 있었던 일이다. 나는 당시 시드니 중국 영사관의 영사를 만났다. 나는 그와 파룬궁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내게 “지난 번 당신들 사부님이 시드니에서 설법했는데 우리 영사관에서도 사람을 파견해서 들었습니다. 당신 사부님이 아주 말을 잘했으며 이치에 맞았습니다. 사람들에게 진선인을 가르치는 것은 잘못이 없지요.”라고 말했다.

나중에 한번 내가 진상을 하는데 진용림(陳用林 천융린)과 전화 통화를 했다. 당시 그는 아직 중국 영사관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는 내게 말하길, 자신이 하는 일이 바로 파룬궁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며 우리 매체 모든 신문은 그가 다 수집한다고 했다. 그는 당신들 파룬궁이 하는 말은 모두 대게 다 옳으며 나는 탄복합니다. 그런 내용이었다. 그 때 나는 그와 40여 분간 이야기 했으며 거의 저녁 8시가 되어 그는 아직 식사를 못했다고 했다. 나는 얼른 미안하다고 사과했고 그의 시간을 너무 점유했다고 했다. 그는 매우 진심으로 매우 정중하게 말했다. “당신 탓이 아닙니다. 제가 당신과 대화하고 싶었습니다.”

이 두 사건을 통해 대법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들어가 있으며 중공 체재 내의 많은 이들도 파룬궁 진상을 잘 알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뉴질랜드 법회

호주 법회가 막 끝난 후 뉴질랜드에서 법회가 열린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호주 동수들이 나도 같이 참가하자고 권유했다. 내가 비자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고 걱정하자 그들은 뉴질랜드는 무비자로 갈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또 나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일부 동수들이 내 비행기표를 사주었다. 지금까지도 나는 어떤 동수가 나를 위해 표를 사줬는지 듣지 못했는데 모두들 내게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뉴질랜드에서 최초로 거행된 법회로 현지 수련생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법회 개최가 임시로 결정되었기 때문에 법회에 참가하러 온 수련생들은 주로 호주수련생들이었다. 전체적으로 2~3백 명이 참가했다.

막 뉴질랜드에 도착한 후 나는 국내 동수의 전화를 받았다. 소기(小紀)동수의 집이 공안의 조사를 받았다고 했다. 내가 전화를 받을 때 주변에 적지 않은 동수들이 있었고 우리는 곧 긴장했다. 나는 빨리 소기 동수를 찾았는데 그는 당시 마침 사부님 곁에 있었다. 내가 그에게 집에서 발생한 일에 대해 들려주었다. 사부님께서 들은 신 후 표정이 아주 엄숙해지셨고 주변에 있던 동수들도 모두 당황해서 이런저런 의론이 분분했다. 이를 보던 소기 동수가 큰 소리로 말했다. “당신들의 정념은 어디로 갔습니까?” 우리는 단번에 멍해졌고 말문을 닫았다.

비가 내리려 했지만 우리 특히 해외 동수들은 여전히 아무런 사상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법회는 5월 8일 열렸고 사부님께서 먼저 설법하셨다.

사부님은 몇 차례나 4.25사건에 대해 언급하셨다.

“다음으로 나는 다시 최근 한 시기 사회에서 나타난 일부 정황을 말해보겠다. 특히 중국에서 일부 수련생이 중난하이(中南海)에 가서 국가 지도자들에게 문제를 반영해 주도록 했는데, 나는 말이 나온 김에 여러분과 이 문제를 좀 이야기하고자 한다. 현재 홍콩 신문에 실린 것은 난잡한 것으로서, 다른 국가의 화교신문도 모두 홍콩 신문에서 베낀 것이다. 그러나 홍콩은 전 세계가 잘 알듯이, 그곳은 인구가 단지 6백만뿐인데도, 그렇게 많은 신문이 있고 그렇게 많은 간행물이 있어, 모두 뉴스를 앞다퉈 보도하며 돈을 벌려 하고 있다. 그래서 오랫동안 뉴스보도에 대해 매우 무책임한 현상을 키워왔다. 그것은 제멋대로 유언비어를 날조하고 제멋대로 꾸며내며, 한 가지 문제에 근거해 제멋대로 상상을 발휘한 다음 그것을 보도하는데, 바로 이렇다. 그러므로 전 세계에서 가장 엄정하지 못한 신문이 바로 홍콩의 중국어 신문이다. 심지어 떠도는 말들까지도 정식 뉴스로 간주하여 보도한다.

여기에서 여러분에게 나의 관점을 말하고자 한다. 우리 수련생들이 중난하이(中南海)의 국가 지도자에게 정황을 호소하러 갔는데, 그것은 시위가 아니며 또한 침묵시위도 아니다. 여러분은 결코 침묵시위를 하지 않았으며, 어떤 사람은 거기에 앉아서 연공을 했다. 구호도 없고, 표어도 없으며, 격렬한 행동도 없고, 과격한 언어도 없었다. 모두 선념(善念)으로 국가 지도자들에게 우리의 진실한 생각을 말하려고 했지, 공안부서가 들은 근거 없는 풍문 같은 그러한 상황이 아니었다. 어떤 사람은 늘 중난하이에 가서 어떠어떠했다고 강조한다. 중난하이는 인민정부의 소재지가 아닌가? 인민은 갈 수 없는가? 수련생은 무엇을 하려고 갔는가? 정부를 반대하러 갔는가? 가서 국가 지도자에게 문제를 반영케 하여, 국가 지도자들이 국민을 위해 책임을 지고 처리해 주기를 바라서가 아닌가? 무엇 때문에 조직적으로 어떠어떠했다고 말하는가? 조직적으로 정부를 지지하면 정부는 좋아하지 않는가?

물론 여러분 생각해 보라.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갔는가? 사실 내가 느끼기에는 간 사람이 너무나 적다! (박수) 사실 나는 여기에서 결코 여러분에게 가라고 권고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무슨 뜻인가? 이 대법을 배우는 사람이 1억(億) 명이나 되는데, 여러분 생각해 보라. 상대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아주 적게 간 것이 아닌가? 왜냐하면, 배우는 사람이 많기 때문인데, 이런 이치가 아닌가? 그렇다면 여러분이 간 이유는 무엇인가? 여러분이 알다시피 텐진(天津) 경찰들이 우리 수련생을 잡아가고 우리 수련생을 구타했으며 우리를 사교라고 말했다. 여러분은 모두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을 배우고 있다. 만약 우리가 정말로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이고 당신이 나를 삿되다(邪)고 말한다면 당신은 나를 무엇이라고 말해도 나는 역시 개의치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러나 여러분은 확실하게 진정으로 좋은 사람이 되고 있는데, 당신이 나를 삿되다고 말한다면, 당신은 여러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당신 여기에서 이치를 말할 수 없고 분명하게 말할 수 없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중앙 지도자에게 가서 말을 하는데 방법상 잘못이 없다! (박수) 왜냐하면, 우리는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고 또 정부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단지 공안부서의 일 처리 방법이 틀렸다는 것을 말할 뿐으로 이 속에는 문제가 없다.

뉴스를 보도하는 어떤 기자들은 상당히 무책임하기 때문에 그는 냄새를 좀 맡기만 하면 유언비어를 날조하는데, 그렇다면 우리도 그에게 틈탈 기회를 주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나의 태도는 아주 명확한바, 우리 여기는 정부를 반대하지 않았고 또한 어떤 시위, 행진도 없었으며 과격하게 이 일을 하지 않았고 다만 정황을 호소하러 갔을 뿐이다. 당신도 가고 싶고 나도 가고 싶어, 그렇게 해서 많아졌다. 그 1억이 넘는 사람 중에 겨우 1만여 명이 간 것으로 자투리마저도 안 되는데 그건 너무 적은 것이 아닌가? 만약 그 일을 더욱 크게 하고 더욱 과격하게 한다면 내가 생각하기에 1만 명에 그치지 않았을 것이며 아마 간 사람이 훨씬 많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황을 호소하러 간 사람이 많다 하여 그것을 틀렸다고 말할 수 없지 않은가? 국가 지도자에게 문제를 호소하는 이것은 매 국민의 의무이자, 직책이며 그의 권리인데 여기에 무슨 잘못이 있는가? 잘못이 없다. 우리는 정부에 반대하지 않고 정치를 간섭하지 않으며 동시에 우리는 또한 자각적으로 국가의 법을 지켰다. 이렇지 않은가? 우리는 어디에서든지 모두 좋은 사람이다. 이 문제에 관해서라면 내가 생각하기에 바로 이런 정황이다.

여러분 알다시피 우리는 수련(修煉)이다. 기왕 수련인 이상 우리의 수련 이 길에는 우연한 일이 없다. 나는 항상 이런 말을 하는데, 반대하는 것과 지지하는 것이 동시에 존재하고, 믿는 것과 믿지 않는 것이 동시에 존재하며,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동시에 존재하고, 바른 것과 사한 것이 동시에 존재하는데, 이것이 바로 인류이며, 이것이 또한 바로 상생상극(相生相剋)의 이치이다. 반대하는 사람이 있는 그것을 좋은 일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마(魔)가 없으면 여러분은 수련할 수 없다. 그것이 당신을 반대하면 우리는 그것의 반대 속에서 당신의 사람마음(人心)을 보고, 당신이 확고한지 아닌지를 보며 당신이 수련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본다. 수련은 엄숙한 것이기 때문에 한 평범하고 평범한 사람이 원만의 경지에 도달하려면 여러분 생각해 보라. 당신에 대한 진정한 그런 고험이 없는데, 그렇다면 인정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이런 고험이 있을 것이며, 이런 일이 있을 것이다.

사람이 나쁜 일을 하는데, 결코 그가 우리를 돕는다고 말할 수는 없으며 그는 확실히 나쁜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오히려 그가 이런 나쁜 일을 하는 자체를 이용하여 수련자에게 기회를 제공해 준다. 반대하는 사람이 있는데 당신이 여전히 연마하는가, 연마하지 않는가? 어떤 사람이 좋지 않다고 말하는데, 그렇다면 당신 자신은 그를 좋다고 여기는가, 좋지 않다고 여기는가? 이는 바로 사람의 마음을 보는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수련은 매우 엄숙한 것이며, 우리는 여러분이 이 점에 분명하기를 요구하는바 절대로 어떠한 한 가지 일도 우연한 것은 없다.

이 일을 통하여 여러분은 생각하는 것이 없는가? 온 세계가 다 대법의 출현을 알게 되었다! (박수) 이것은 당신들이 얼마만큼 홍법(洪法) 일을 했든지 간에, 그보다 범위・면적이 모두 클 것이다. (박수) 동시에 국내의 수련생에 대해서도 확실히 아주 엄중한 고험이다. 당연히 나의 이 말은 수련인에게 말한 것으로 속인사회에서는 바로 속인사회의 그런 표현 형식이다. 나의 견해를 방금 이미 말했는바, 바로 이런 견해이다. 우리는 국가의 어떤 한 지도자・정부・법률 등등 일체에 대하여 모두 간섭하지 않았으며 또한 파괴하지 않았다. 여러분은 좋은 사람이 되려 하기 때문에 단지 정황을 호소하러 갔을 뿐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 나는 이만큼 말하겠다.”(《뉴질랜드 법회설법》)

또 문답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제자: 베이징(北京)에서 발생한 일에 대하여 우리는 모두 마땅히 참고, 대법에 견정해야 합니다.

사부: 자신을 수련할 수 있는 이 점은 당연히 정확한 것이다. 만약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사법(邪法)이라고 말해도 당신들 모두가 다 아무렇지도 않다면 나는 잘못됐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수련생 매 한 사람이 모두 대법 중에서 수련하고 있으며, 대법의 존귀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법 자체를 소중히 하는 것 또한 당신 자신을 소중히 하는 것이다. 당신들은 대법을 배우는 과정 중에서 항상 일부 고험이 있을 것이다. 당신들이 수면 중에서 꿈속의 고험이든지, 실제적인 일 중에서 관을 넘든지, 실제 생활 중에서 관을 넘든지를 포함하여, 마치 작은 시험처럼 한 기간 배운 후 좀 시험을 치는데, 당신이 확실한지 확실하지 않은지, 잘 배웠는지 잘 배우지 못했는지를 본다. 그러나 나는 당신들에게 알려주는데, 당신이 최후에 이르러 대법 중에서 원만을 이루려 할 때 시험이 있을 것이다?(《뉴질랜드 법회설법》)

“제자: 法輪功(파룬궁)은 眞(쩐)・善(싼)・忍(런)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톈진(天津)에서 法輪功(파룬궁) 제자들에 대해 공정하지 못한 일이 발생했는데, 역시 마땅히 참아야 하지 않습니까?

사부: 이 문제를 이미 여러분에게 말했으므로 더 말하고 싶지 않다. 참음이란 수련자의 일체 행위 속의 표현이지 행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큰 법이 사람에 의해 사사로이 파괴되었는데, 가서 의견을 표현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내가 다시 한 번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베이징(北京)에 간 수련생들은 가서 시위한 것이 아니고, 행진한 것이 아니며, 구호가 없고, 표어가 없으며, 악의가 없이 모두 선한 생각에 근거하여 국가 지도자에게 진실한 정황을 호소한 것이다. 나는 이러한 일은 역시 마땅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대법제자에 대한 불공평이 마치 그에 대한 불공평과 같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당신이 그를 사(邪)하다고 말하면, 나에게 사(邪)하다고 말한 것과 같다. 사람마다 모두 이렇게 생각했고 사람마다 모두 대법을 위해 이름을 바로잡으려고 국가 지도자에게 정황을 호소하고 호소했던바, 바로 이 마음은 잘못이 없다! 간 사람이 많은가? 나는 간 사람이 절대 많지 않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1억 명이 연공하고 있기 때문인데, 사람마다 모두 간다면 그건 엄청나서 베이징(北京)도 다 담지 못한다. 전국의 1억 명 중에서 겨우 1만여 명이 갔는데 어찌하여 많다고 하는가? 만약 당신이 정말로 그를 사교로 정한다면 내가 보기엔 간 사람들이 1만 명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중앙을 향해 진실한 정황을 호소하는 것도 잘못된 것인가? 잘못이 없다! (박수)

우리는, 우리가 정부를 반대하지 않았고 정치에 참여하지 않았으며 여러 사람이 모두 좋은 사람이 되려 한다고 말했는데, 여기에 잘못이 있는가? 당신은 아직도 기어코 그를 사(邪)하다고 말해야 하는가? 만약 여러 사람이 모두 속인과 같은 일을 하고 있다면, 당신이 그를 뭐라고 말해도 그는 아마 아무렇지도 않을 것이다. 그가 진정으로 좋은 사람이 되려 하는데, 당신이 그를 사하다고 말한다면 그가 마음이 아프지 않을 수 있겠는가?”(《뉴질랜드 법회설법》)

4.25 사건의 발생은 대법제자들이 개인수련에서 정법수련으로 진입하게 했지만 수많은 동수들은 아직 이성적으로 이 점을 인식하지 못했다. 사부님의 상술한 설법은 수련생들과 세인들에게 4.25에 대한 견해와 인식을 분명히 바로잡아 주셨으며 이 사건의 적극적인 역할과 의미에 대해 명확히 긍정해주셨다.

사부님은 사람을 구하고 계시며 중국정부에 기회를 주셨다. 왜냐하면 대법의 주체가 중국에 있기 때문이다.

사부님은 또 대법제자들에게 수련할 기회를 주셨다. 대법이 사악한 세력에 의해 악의적인 공격을 받을 때 미래 신우주의 불도신이라면 당연히 대법을 지키고 수호해야 하는데 이는 장차 미래 신우주의 역사에서 참조가 될 것이다.

자비하신 사부님께서는 또 세인들에게도 기회를 주셨다. 진선인(眞善忍)과 가악투(假惡鬪)를 앞에 두고 세인들이 어떻게 대하는지는 그들에게 생과 사의 선택이 되었다. 왜냐하면 사부님께서는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을 구도하시기 때문이다.

——

법회가 곧 끝날 무렵 나는 작은 방에서 사부님을 뵈었는데 사부님께서는 마침 수련생의 발언을 듣고 계셨다. 나는 사부님께 제자는 곧 북경으로 돌아가는데 사부님께 국내에 전달하실 어떤 소식이 있는지 여쭤보았다. 사부님께서는 엄숙하고 무거운 표정으로 주요 의견를 개괄적으로 말씀하셨다. “돌아가서 그들에게 정진실수(精進實修)하라고 전하세요. 아마 모든 것은 다 우연이 아닐 수 있습니다. 혼란 속에서 사람마음을 보는데 어쨌든 한차례 졸업시험이 있을 겁니다.”

나는 사부님의 말씀을 마음속에 단단히 기억해 국내로 가져갔다.

또 다른 한 대륙 동수는 사부님께 손 편지(手書)를 청했다.

진성이 보이노라

대법 확고히 수련하며 마음 움직이지 않나니
층차를 제고함이 근본이로다
고험(考驗) 앞에 진성이 보이나니
공성원만하면 불도신(佛道神)이로다

1999년 5월 8일

見真性

堅修大法心不動
提高層次是根本
考驗面前見真性
功成圓滿佛道神

一九九九年五月八日

사부님의 신경문은 곧 대륙과 해외에 아주 신속히 전달되었다.

우리가 막 시드니에서 돌아왔을 때 여러 매체에서 앞다퉈 다음 보도를 하는 것을 보았다. 즉 북경시간 1999년 5월 8일 유고 주재 중국대사관이 나토의 폭격을 당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의 발생은 구세력이 또 다시 장난을 쳐서 사부님의 정법과 중생 구도를 교란한 것이다. 세계 매체들은 본래 4.25사건에 집중해야 했지만 유고 주재 중국대사관의 폭격으로 시선이 전이되었다.

내가 중국으로 돌아온 후 2주 동안 사부님의 가지와 보호 및 절묘한 안배로 중국 각지 파룬궁 수련생들이 모두 제때에 사부님께서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하신 설법의 내용에 대해 듣게 되었다. 이는 당연히 그들을 격려하고 확고하게 했음은 짐작할 수 있다.

오늘 우리가 사부님의 4.25관련 설법내용을 다시 보면서 사부님의 홍대한 자비와 구도의 어려움 및 고생스레 선을 권하셨음을 더 깊이 느낄 수 있다.

다시 말해 이번 법회 이후 대륙 수련생과 해외수련생은 그 어떤 역사적인 참조도 없는 상황에서 생사를 내려놓고 일체 사람의 관념을 내려놓고 우리 자신이 개창한 조사정법의 신로(神路)대도(大道)로 걸음을 내디뎠다.

중생은 평등하고 생명은 고귀한 것이다. 자비하신 사부님께서는 중생들이 구도될 기회를 충분히 주셨고 오직 그들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지 여부와 어떤 선택을 하는가 만을 보신다.

후기:
이틀간의 법회 교류에 많은 파룬궁의 친구들이 왔는데 다시 말해 대법에 대해 호감을 갖고 진일보로 대법을 알아보려는 사람들이다. 주회의장 수용공간이 부족해서 그들의 자리는 복도에 배치되었고 폐쇄회로 화면으로 법회장면을 보아야 했다. 그중 60대의 한 남성은 아주 열심히 듣고 또 진지하게 필기하는 모습이 다른 사람들과는 달랐다. 휴식시간에 나는 호기심이 생겨서 그에게 다다가 말을 걸어보았다. 그는 내게 자신은 전에 임표(林彪, 린뱌오)의 비서를 지냈으며 《전법륜》을 읽어본 적이 있는데 파룬궁을 몹시 배우고 싶다고 했다.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51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