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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수련의 길

작자/중국 호북 대법제자

【정견망】

나는 1997년 법을 얻은 노제자로 올해 73세다. 초등학교 학력의 농민이다. 법을 얻은 후 지금까지 적지 않은 수련인의 이야기를 보았는데 오늘 나에 관한 이야기를 하여 사부님께 보고 드리고 동수들과 교류하고자 한다. 법에 있지 않은 점이 있다면 자비로이 지적을 바란다.

1. 하늘에서 내려온 단비, 기쁘게 대법을 만나다.

어느 날 한 언니가 남편에게 책 한권을 부탁하며 말했다. “이 책을 동생에게 좀 보여줘요. 그녀가 가지고 싶다면 돈을 부치고 원하지 않으면 되돌려주면 됩니다.” 남편이 집에 돌아와서 책을 내게 주어 내가 받아보니 《/span>전법륜이었다. 내가 읽어보니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는 것이어서 남편에게 이 책을 가지겠다고 말했다. 남편은, “한번 보면 됐지 뭘 하러 가져”라고 했지만 나는 이 책이 좋으니 갖고 싶다고 했다.

그 때 남편은 농기구 점포 건물을 지어주었는데 상대방이 우리 집에 일만 여 위안의 돈을 주지 않았다. 게다가 남편의 직장은 거의 도산했다. 우리도 다른 사람에게 빚진 돈을 갚지 못하여 날마다 빚쟁이가 빚을 받으러 왔다. 방법이 없어서 나는 날마다 울면서 원망했다. 내가 《/span>전법륜을 한번 본 이후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점점 통하게 되었고 남편을 더 원망하지 않았다.

나는 매일 책을 보았는데 책에는 아는 글자도 있고 모르는 글자도 있었다. 이렇게 책을 읽다보니 온 몸에 병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다 나아 버렸다. 책을 보기 전에 몸에 온갖 병이 많았다. 고혈압, 심장병, 위장병, 두통, 백내장 등등 수십 가지 약을 먹어도 낫지 않았는데 책을 본지 한 달도 안 되어 병이 다 없어지고 몸이 가벼워졌다. 나는 이전에 먹다 남은 약을 전부 다 버렸다. 나는 40여세 때 안경을 썼었는데 책을 본 후 눈이 밝아져서 안경도 벗어버렸다. 그때 나는 아직 연공도 배우기 전이었다.

약 두 달이 지난 후 언니를 찾아가 물었다. “또 오장 공법이 있나요?” 언니는 있다고 하며 배울 것인지 물었고 나는 당연히 배우겠다고 했다. 언니는 어느 동수를 찾아가서 우리를 가르쳤다. 당시 세 사람이 함께 배웠다. 다 배운 후 언니는 또 나에게 자기 집의 녹음기를 가져가서 녹음기를 따라 연마하라고 했다.

나는 언니 뒤를 따라갔는데 한참 가다보니 다리를 절뚝거렸는데 하지만 아프지는 않았다.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았고 생각하기를 사부님이 내 신체를 정화해주시는 것이다. 집에 돌아오니 식구는 나의 다리를 보고는 곧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나는 그들에게 아무 일도 아니며 아프지도 않다고 했더니 다시는 뭐라 하지 않았다. 두 달이 지나자 다리가 나았다. 꿈을 꿀 때 사부님이 나의 뼈는 모두 시커멓다고 말씀하셨다. 나도 내 뼈가 모두 시커먼 것을 보았다. 하지만 연공을 한 이후 신체는 건강하게 변했다. 정말 온몸에 없는 가벼움을 느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구도에 감사드립니다.

2. 풍운이 돌변하여 화가 날아오다

1999년 7월 22일 아침 나는 연공장에 연공하러 갔는데 연공하지 말라는 통지를 받았다. 나는 이렇게 좋은 공법을 어떻게 연마하지 말라고 하는가? 그래서 동수와 나가서 박해를 반대하고 진상 자료를 뿌렸고 각종 스티커를 붙였다. “법정건곤 사악전멸! 법정천지 현세현보!” “사부님의 결백을 돌려달라” “파룬따파는 정법이다” “파룬따파하오 쩐싼런 하오!”

2000년 7월 8일 나와 언니는 북경에 법을 실증하러 갔다. 우리는 식구에게 알리지 않고 몰래 갔다. 기차에서 무장경찰이 몇 차례 돌며 검문했는데 우리는 동생 집에 간다고 했다. 다음날 아침 북경에 도착하여 버스를 타고 천안문 광장에 도착했다. 당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곳에서 기다렸다가 다른 대법제자가 어떻게 하는지 보려고 했다. 잠시 후 어느 동수가 포륜하는 것을 보고 우리도 가서 포륜했다.

몇 분도 되지 않아 경찰차가 왔다. 경찰은 우리를 강제로 차에 끌어넣고 우리가 어디 사람인지, 이름이 무엇인지 물었다. 우리는 두려운 마음에 있는대로 다 대답했다. 어떤 동수는 말하지 않았는데 경찰은 곤봉을 꺼내었고 어떤 사람은 얼굴에 맞아서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이어서 또 우리를 어느 곳으로 끌고 가서 가두었다. 그곳에는 많은 동수가 갇혀 있었다. 잠시 후 경찰은 우리 몇 사람을 단독으로 불러내어 호북성 주경사무소로 보냈고 그곳에 불법으로 사흘간 가두었다.

이어서 우리 집에 전화를 걸어 사람을 오게 하여 우리를 차에 태워 간수소에 9일간 가두었다. 우리가 사악의 전향에 협력하지 않았으므로 나중에 전향반에 보내져 날마다 전향공작을 받았다. 그곳은 매우 사악했는데 그들은 사부님의 법상을 입구에 붙여놓고 사람들이 그 위를 밟도록 했다. 매 방마다 그렇게 했다. 나는 우리 방 입구의 것을 찢어버리고 물로 씻었다.

내가 불법으로 십여 일 갇혀있는 동안 딸은 출근을 해야 했고 사위가 북경에 있기에 그들의 두 살 된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딸은 마음이 매우 급했다. 정이 움직여 나는 간단히 보증서를 쓰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온 후 이것은 대법에 부합되지 않음을 알고 사부님과 대법에 미안하여 엄정 성명을 써서 명혜망에 발표했다. 성명하기 전에 법에 있지 않은 언행은 전부 폐한다!

3. 다시 박해를 받고 몸이 마굴에 빠지다

2001년 11월 9일 내가 길에서 진상 자료를 나눠주다가 진상을 모르는 사람에게 신고당해 파출소에 갇혔다. 경찰 몇 명이 돌아가며 저녁 내내 나를 심문했다. 이전에 그들은 우리 집에 가서 일부 진상자료를 수색해냈기 때문에 그 자료가 어디서 났느냐고 따졌다. 나는 바깥에서 주운 것이라고 했고 그들이 어떻게 물어도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다음날 아침 그들은 나를 간수소로 보냈다.

2002년 5월 1일 나와 몇 동수는 저녁 발정념을 했는데 이때 경찰이 보고는 하지 못하게 했다. 또 우리에게 오분 내에 다리를 내려놓으라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발에 수갑을 채우겠다고 했다. 우리는 내려놓지 않았다. 앞의 두 동수는 발에 수갑을 채였고 목판 위로 옮겨졌다. 그들은 내게 수갑을 채울 때 대나무로 때렸다. 나는 큰소리로 외쳤다 “경찰이 사람을 때린다!” 당시 수십 대 맞았다. 하지만 조금도 아픈 느낌이 없었다. 나는 이것은 사부님이 제자를 대신해 감당하는 것임을 알았다! 우리는 단식으로 박해에 반대했고 그들이 족쇄를 치우지 않으면 밥을 먹지 않겠다고 했다. 사흘이 되지 우리에게 음식을 주입했다. 그때 우리집의 식구에게 날마다 610 사람이 찾아갔으며 우리 부친은 그들에게 돈을 주었다. 5월 21일이 되어 겨우 집으로 돌아왔다.

2005년 10월 18일 나의 작은 며느리가 아이를 가졌으니 내가 가서 좀 도와 달라고 했다. 내가 갔을 때 많은 진상 자료와 평 공산당책자를 가지고 갔다. 나는 아파트에서 대부분을 나누어주었다.

11월 11일 오후 3시경 나는 나가서 얼마남지 않은 진상자료를 다 뿌리려고 했다. 내가 일동의 12층에 도착했을 때 누가 발견하여 보안에 신고했고 재빨리 보안이 달려왔다. 내게는 아직 다 뿌리지 않은 자료가 좀 있었으므로 계단에서 아래로 달려갔으나 얼마 후 보안에게 가로막혔다. 보안은 파출소에 전화를 하더니 잠시 후 사람을 보내 나를 파출소로 데려가겠다고 했다. 나중에 나는 병원에 보내져 신체검사를 받았다. 의사는 내 혈압이 매우 높다고 했으며 경찰은 좀 낮게 써도 된다고 했다. 이렇게 밤 12시 경 나는 강제로 간수소로 끌려왔다. 그곳에서 불법으로 2달간 갇혀 있었다. 이후 불법으로 노교소 2년을 판결 받았다. 조견처로 보내져서 또 6개월 간 구류되었다. 그 후에 나를 네이멍구 후허호트 여자 노교소로 보냈고 2007년 11월 7일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4. 교묘한 배치와 정심어린 보호

내가 노교소에서 돌아온 이후 《/span>전법륜책이 없었으므로 그저 연공만 했다. 어떤 때 이전에 외우던 법을 약간 외우고 논어를 외울 수 있는 데까지 외웠다. 2010년 나는 비로소 고모에게 부탁하여 《/span>전법륜을 구했다. 아들이 자기 아버지에게서 이 일을 듣고 집에 책을 뒤졌는데 한참 뒤져도 찾지 못했다 나는 엄숙하게 아들에게 말했다. “네가 그 책을 가져간다면 나는 이 집에 있지 않을 것이다. 나는 끝까지 수련할 것이며 누구도 나를 마음대로 할 수 없다.” 그때 이후 집 식구들은 나를 어쩌지 못했다. 하지만 남편은 여전히 긴장하여 나가지 못하게 했으며 나는 몰래 나가서 진상을 알렸다.

한번은 내가 시장에서 진상을 말할 때 시장에 채소 사러 온 동수를 만났다. 그녀는 내가 진상을 마치자 내게 인사를 하며 그녀도 파룬궁을 연마한다고 했다. 나는 그 말에 너무나 기뻤다! 나는 외지에서 와서 다른 동수를 모르며 단체 학습 환경이 없다고 말했다. 그녀는 자기 딸집에서 외손자를 봐주고 있다고 하며 자기 집에 가자고 했다. 내가 가자 동수는 물건을 좀 주고 함께 법공부 했다. 내가 그녀 집에서 한달 여를 배운 후 그녀는 나를 법공부 팀에 데리고 갔다. 그래서 주변의 이런 동수를 알게 되었다. 동수들의 내게 도움이 많이 되어 사부님의 모든 설법을 구해주었으며 진상자료와 씨디(그때 션윈씨디를 나눠줄 때였다)를 주었다. 여기에서 사부님의 교묘한 안배에 감사드리고 동수들의 사심 없는 도움에 감사드린다.

수련의 길에 사부님의 법신은 줄곧 나를 보호하시고 위험을 만날 때 사부님이 풀어주셨다.

2013년 어느 날 문을 나가서 션윈씨디를 나눠주었는데 어느 사복 경찰에게도 주게 되었다. 그는 왜 그에게 이걸 주느냐고 끊임없이 따져 물었다. 나는 친구가 보고 좋다고 느껴 내게 보내준 것인데 내가 보니 좋아서 당신에게 준다고 했다. 그는 이유를 찾아 내 신체가 좋다고 하며 내가 파룬궁 연마한다는 것을 말하게 하려고 했는데 나는 말하지 않았다. 그는 내 전화번호를 받고 싶었는데 거짓으로 나를 누님으로 삼고 싶다고 하며 집에 몇 사람이나 있느냐 등 물었다. 나는 그의 음모를 간파하고 속지 않았다.

그는 또 오늘 당신은 갈수 없다고 했다. 나는 그의 말을 인정하지 않고 속으로 사부님께 도와달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나는 돌아가 밥을 해야 한다고 했으나 그는 기죽지 않고 내 뒤를 따라왔다. 나중에 아들이 일이 있어 내게 전화를 했다. 그는 잠시 떨어졌고 10미터 쯤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나는 전화가 끝나고 왼쪽 편에 학교 대문이 하나 있는 것을 보았다. 아들이 원래 그곳에 살았기에 나는 익숙한 곳이었다. 그래서 얼른 학교로 들어갔고 멀리 걸어간 후 돌아보니 그가 따라오지 않아서 직접 학교안에서 걸었다.

사부님이 나를 도와주셔서 위험을 해결해주셨음을 알았다. 사부님의 구도은혜에 감사합니다.

5. 난인능인(難忍能忍), 법을 공부하고 마음을 닦다

한번은 나와 남편이 어느 음식점에서 밥을 먹었는데 합해서 19위안이 들었다. 내가 주인에게 100위안짜리 한 장을 주었는데 그는 오히려 내게 131 위안을 주었다. 당시 자세히 보지 않고 바로 주머니 지갑에 넣었다. 나중에 남편이 좀 더 먹겠다고 하여 나는 여기 돈이 있으니 가져가라고 했다. 내가 돈을 지갑에서 꺼낼 때에야 비로소 돈이 많아진 것을 발견했다. 나는 얼른 더 많아진 오십 위안을 음식점 주인에게 주었다. 그 여자 사장이 말했다. “당신 정말 좋은 사람이예요, 백살까지 살거예요, 고맙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나는 파룬궁을 연마한다, 우리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다른 사람을 생각하라고 가르쳤으니 사부님께 감사하라고 말했다.

밥을 다 먹은 후 우리는 차를 타고 돌아가려고 했다. 이때 하늘에서 비가 오기 시작했다. 남편은 노기등등하여 나에게 한마디 욕하더니 혼자 가버렸다. 나는 길을 잘 알지 못하기에 겨우 정거장을 찾아 버스를 탔는데 그때 옷이 전부 다 물에 젖었다. 집에 돌아와 남편을 쳐다보지 않았다. 이것이 내가 돈을 되돌려주어 그가 화를 낸 것이 아닐까? 현재 속인은 바로 편리한 점만 점유하려 하지 사당이 당신더러 좋은 사람이 못되게 한다. 이때 사부님께서 안으로 찾고 자기를 찾으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나는 내가 선심으로 그를 대해야 대법제자는 좋은 사람임을 체현할 수 있고 이렇게 해야 그를 구도할 수 있다.

또 한번은 고향에 아주버님 손자가 결혼을 했다. 우리는 하루 전에 고향으로 달려갔다. 그날 밤 온가족 노소 4대가 함께 모여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눴다. 한참 대화를 나누다 막 이 집으로 시집오는 손자며느리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손자의 여자 친구가 어떻게 좋지 않은지 말했는데 더욱이 남편은 더 힘주어 말했다. 나는, 사람이 내일 결혼하는데 더 말하지 말라고 말렸다. 뜻밖에도 남편은 즉시 일어나 큰소리로 나를 욕했다. 나는 당시 참고 다투지 않았다. 하지만 속으로 완전히 내려놓지 못했다.

사부님은 “장래에 어쩌면 당신이 가장 체면을 잃을까 봐 두려워하는 사람 앞에서, 다른 사람이 당신의 뺨을 두어 번 때려 당신으로 하여금 망신을 당하게 할지도 모르는데, 당신이 이 문제를 어떻게 대하는지, 당신이 참아낼 수 있는가 없는가를 본다. 당신이 참아낼 수 있지만 마음속으로 내려놓지 못한다면 이 역시 안 된다.”

나는 자신의 미워하는 마음, 체면, 쟁투심, 질투심을 찾았다. 진정한 수련인으로서 나는 사부님의 법에 대조하여 철저히 이런 나쁜 집착심을 버려야 한다.

후기

과거에 나는 세 번 박해 받았는데 가족들이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은 내 몸이 좋아졌고 21년 동안 주사나 약을 하나도 먹지 않고 심성도 제고되어 다들 나를 지지한다. 사부님의 보호하에 온가족이 평안하고 순조롭다. 우리는 주위 사람들이 다 부러워하는 가정이 되었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오직 수련을 잘하고 세 가지 일을 다 잘하여 사부님 걱정을 덜 끼쳐드리겠습니다. 견정하게 신사신법(信師信法) 경사경법(敬師敬法)하여 엄격히 자기를 단속하고 곳곳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하여 합격한 대법제자가 되겠습니다.

다시 한번 사존의 구도에 감사드립니다! 동수들의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513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