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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중에 본 사부님 법리의 오묘한 실례 (4)

작자/ 대륙제자 경주

【정견망】

앞서 든 몇 가지 예들은 주로 1998년 초 사부님의 위대함과 대법의 현묘함을 견증한 경험이었다. 그것도 당시 내 층차에서 감수한 그 층차 그 한 층차의 불법(佛法)이 체현된 장관의 일부일 뿐이다. 사실 불법무변이라, 법리는 《/span>전법륜에서 수련 중 만나는 각종 정황을 책에 천명해놓았다. 내가 이런 경험을 쓰는 이유는 주로 동수들에게 거울이 되고 속인이 대법의 정심하고 위대하며 불가사의한 내포를 느끼게 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또 사존께서 어떻게 제자의 수련을 이끄시는지, 어떻게 진정으로 제자를 위해 책임지고 사회에 대해 책임지시는지 알게 하기 위해서이며 대법을 중도에 포기하고 떠난 사람들이 다시 수련의 신심을 불러일으켜 만고에 다시 오지 않고 신선조차 얻고자 해도 얻지 못하는 대법과 스쳐 지나가 평생 후회하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함이다.

되돌아보면 1998, 1999년에서 2015 년까지 나의 수련은 감성적으로 법을 인식하는데 머물러 있었고 진정으로 법에서 법을 인식하지 않았고 법에서 수련하지 않았다. 이 역시 내가 1999년 고험에서 떨어진 주요 원인 중 하나이다.

1999년은 수련의 이정표이자 전환점이었다. 희비가 교차했고 원만할 수 있는가 하는 고험 중에 각종 심태, 각종 수련 상태가 빠짐없이 폭로되어 나왔다. 매 수련자는 스스로 자신의 수련이 어떤지 원만 표준에 도달했는지 마음속으로 자명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주원신이 착실히 수련하는 정황에 대한 전면적인 검열이기 때문이다. 그 어떤 사람마음도 하늘로 가져갈 수 없다.

아래에 나의 이 1년간 수련의 기본 정황을 여실히 기록한다. 어떤 인식은 법상에 있지 않으니 동수들의 지적을 바란다.

이 해에 나의 천목은 아주 똑똑했다. 매일 대법의 행복에 빠져 수련하는 중에 홍법, 학법, 법을 베껴 쓰고, 연공했으며 친척과 동료들도 모두 대법의 복음을 들었다. 어떤 사람은 수련으로 들어왔다. 설사가 나며 신체 청리하는 일은 늘 나타났고 자기의 몸이 가볍고 정력이 충만했다. 업무능력도 뛰어나 어떤 때는 직장환경이 법을 공부하고 홍법하는 장소로 변했다. 비할데 없이 행복과 행운을 느꼈다. 이 단계에서 나는 여전히 신체의 변화와 대법의 위력과 신기를 느꼈으며 사존을 한번도 뵙지 못한 것이 일생의 유감이었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눈을 뜨니 벽에 대야만한 크기의 구역이 밝은 것을 보았다. 나는 움직이지 않고 보았는데 그 구역에 아주 작고 작은 벌레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아, 그때 나는 사부님께서 법에서 말씀하신 대로 사람의 신체는 미시적인 하에서 모래알 같은 것임을 알았고 내가 본 그 벽의 작은 부분이 꿈틀거리는 벌레는 바로 분자가 활동하는 것이었다. 그것들도 살아있었다. 사부님이 말씀하신 법은 조금도 허황하지 않았고 다만 자기가 그 층차까지 수련하지 못해 몰랐을 뿐이었다.

나중에 나는 벽에 손바닥만한 거미, 바퀴, 게 등이 기어다니는 것을 보았는데 모두 손바닥 만했다. 그 후 천천히 담담히 벽속으로 사라졌다. 처음에는 내가 가서 그것을 때렸는데 때릴 수 없었다, 나중에 내가 본 것이 다른 공간임을 알았다.

우리 시의 한 대학에서 한차례 7일간의 합숙 법공부 반을 조직했다. 보도소장이 나더러 참가하라고 했다. 나는 학교 다니는 것처럼 누가 와서 설법한다고 생각하여 매우 기뻐하며 명단을 올렸다. 내가 기록이 빠르니 가능한 한 받아 적어서 보여주겠다고 아내에게 말했다. 하지만 대학에 가보니 일백여 명이 왔는데 조를 나누어 《/span>전법륜을 읽었고 아침에 단체 연공을 했다. 저녁에는 조를 나누어 책을 읽거나 아니면 각자의 체험을 이야기했다.

나는 실망했다. 기왕 왔으니 단체 법공부도 괜찮았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공부하는지 귀감이 되었다. 나는 말을 거의 안했는데 법리를 잘 몰랐기 때문이었고 오성이 더욱 따라 올라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한 교사가 있었는데 그의 오성이 아주 좋았다. 그의 말에 의하면 사부님께서 수인하는 사진 아래 두 개의 인감이 무슨 뜻인가 하고 사람들에게 물었다.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나도 그것에 유의하지 않았다. 그는 나중에 말했다. 그는 그 정방형의 인감은 제자더러 정정 당당하게 수련하라는 것이며 그 발바닥 같은 도장은 제자들에게 착실하게 수련하라고 한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 동수의 오성에 탄복했다. 나는 어떻게 깨닫는지 몰랐고 무엇을 깨달음이라고 하는지 몰랐다. 자기는 너무 뒤떨어져 있고 반드시 따라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저녁에 단체 교류할 때는 성(省) 보도소에서 사람들이 와서 각 조를 안내했다. 우리 조는 20여 명이었고 조장은 여자였는데 그녀는 각자 체험을 이야기하라고 했다.

나는 원래 발언하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나더러 말해보라고 해서 꿈에 색관을 넘긴 일을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즉시 나더러 너무 상세히 말하지 말라고 제지하며 비판했다. 그때 나는 기분이 나빴다, 당신들이 말을 하게 해놓고 내가 사실대로 말하니 또 싫어하는구나. 그날 밤 기숙사에서 몇 명이 함께 있었는데 원래 서로 모르던 사이였다. 그들은 모두 노인이었으며 나만 젊었다. 그들은 내가 방금 발언한 것을 듣고 어떻게 법을 얻었느냐고 물었다. 나는 간단히 내가 법을 얻은 과정을 말해주었다.

그 중 한 노동수(나에게 둥근 빛이 있는 사진을 보내준 동수)도 천목이 열렸는데 내말을 듣고 말했다. “내가 본 것을 좀 말하려는데 당신들은 마음에 두지 마세요.” 그는 내 옆에 있는 동수를 가리키며 그의 공기둥이 좀 짧으며 천장 높이 정도라고 했다. 그리고 나를 가리키며 말하기를, 당신은 꽤 괜찮은데 잘 수련하세요, 공기둥이 상당히 높아요. 2000년 후 나는 줄곧 그를 찾으려 했으나 소식을 듣지 못했다. 내 옆에 있던 동수는 현재 병마로 고생하고 있다.

한번은 단체 법공부 할 때 어느 노부인 물컵을 그녀의 손자가 깨뜨렸다. 그녀는 이후 물컵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 그녀는 교류 중에 말하기를 법공부하는데 물컵이 필요 없고 물을 마실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물컵을 가지고 오지 않으며 목이 마르지 않아서 좋다고 했다. 그때 나는 매우 감동되었다. 나는 내가 지식이 있으니 법을 다른 사람보다 더 잘 배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오성은 교육 수준이 낮은 할머니보다 낮았던 것이다.

나중에 소장이 몇차례 나더러 시내 각 연공장의 매주 법공부 교류회에 참가하라고 했다. 한번은 우리가 법공부 후 교류할 때 나는 《/span>전법륜표지의 파룬이 일어서서 춤을 추고 또 떨어지고 올라왔다 내려갔다 하는 것을 보았다. 매우 기묘했는데 마치 여자 어린이가 자기도 모르게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아마 에너지 장이 강하니 파룬이 활기를 띠는 것 같았다.

4.25가 일어난 후 어느 법공부 교류상에서 어느 대학 연공장의 여대생이 참가했다. 그녀들이 도로 옆에서 연공하고 홍법하다가 그곳 파출소에게 제지당했으며 파출로소로 끌려가 심문 받은 일이 있다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사람들은 이 일에 관해 토론했다. 나는 조용히 들었다. 몇차례 교류회에서 특별히 이번 차례에 나는 일부분 동수의 쟁투심이 강한 것을 들었다. 다른 사람 특히 속인이 우리가 좋지 않다고 말하는 것을 제지하려는 것 같았다. 대법을 수련하니 좀 높은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 자리에서 많은 사람이 파출소 공안국에 편지를 쓰고 방문을 하자고 제기하는 것을 보았다. 또 사람들은 근거 없이 여대생이 대법에 먹칠하는 뜻이 있다고 질책했다.

소장은 사람들의 발언을 다 듣고 나의 의견을 물었다. 아울러 사람들에게 나는 연공장 책임자는 아니고 임시로 참가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 때 파출소에서 한 처리가 법률 규정에 위반한 것은 없다고 했다. 반대로 우리가 일을 할 때 주위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길거리에서 길에서 단체 연공하고 행진하는 것은 법률이 허용하지 않는 것이며 비록 양옆에서 연공 홍법을 하는 것도 안 된다. 사람들이 와서 쳐다보면 도로 교통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나는 상방도 하지 말고 편지도 보내지 말자, 우리가 잘못한 것이지 저쪽이 잘못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앞으로 교훈을 얻으면 된다. 이 일은 지나가게 하고 법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다. 필경 그들은 한번 기록해놓았을 뿐 신문이나 방송에 보도하지 않았지 않느냐. 그들은 나의 건의에 동의했으며 일리가 있다고 여겼다.

6월 1일 직장에서 긴급회의가 열려 파룬궁 문제를 처리하는 데 대한 중앙의 의견을 전달했다. 공산당원이나 기관간부들은 파룬궁을 연마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머리가 띵해졌다. 첫 반응은 당의 결정이 잘못이라는 것이었다. 그날 밤 꿈을 꾸었는데 체육 위원회에서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들에게 회의를 개최하라고 했다. 나도 참가했는데 약 20명이었다. 사람마다 두 장의 자료를 나누어 주었으며 모모 공을 소개했다. 나는 자료를 둘둘 말았다. 어떤 사람은 보았고 어떤 사람은 버렸다. 모임을 주재하는 사람은 자료를 읽어보라고 했는데 나는 회의장을 나가서 자료를 버렸다.

속으로 불이법문(不二法門)을 지켜야 하니 안 된다고 생각했다. 돌아갔을 때 회의는 이미 끝나 있었다. 사람들은 떠났고 나는 입구로 가다가 25세 정도 된 체육 위원회 여직원을 만났다. 그녀는 찻잔을 씻고 있었다. 내가 가서 당신 파룬궁을 연마해보세요, 그래도 파룬궁이 좋아요,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하라고 하며 좋은 사람이 되라고 해요. 그녀는 자기가 부체공을 연마한다고 했다. 나는 집착심을 버리고 심성을 제고하면 층차가 제고된다고 했다. 그녀는 좋다고 했다. 나는 집에 돌아가 《/span>전법륜을 주겠다고 했더니 그녀는 내일 달라고 했다, 나는 아니요, 오늘 주겠다고 했다.

처음에 나는 정부가 일시적으로 잘못한 것이며 재빨리 바로잡힐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직장 상사에게 여전히 파룬궁을 연마하겠노라고 했다.

매일 나는 여전히 시간이 되면 연공장에 가서 연공했으며 아내는 저녁에 연마했다. 7월 21일 밤 아내가 연공하고 돌아왔는데 소장이 쪽지 하나를 주었다면서 가져왔다. 내가 보니 내일 정부에서 파룬궁에 대해 대대적으로 수색 체포를 하니 책을 숨기고 도시를 떠나라는 것이었다. 그때 친구가 우리집에 손님으로 와있었는데 정말 그녀가 좀 빨리 가주었으면 했다. 매우 긴장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내가 어떻게 하다 보니 그때 이미 거의 11시가 되었다. 나는 모든 대법 서적을 여행 배낭 속에 넣었다. 그녀가 막 떠나자마자 즉시 책을 장모님 집에 보내고 사무실로 돌아와 대법서적을 숨겼다. 아내는 소장이 빨리 도망가라는데 어떻게 해요 하고 물었다? 나는 도망가지 않고 집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그날 밤 오랜 기다림 끝에 가장 긴 밤, 불면의 밤, 걱정하는 밤을 보냈다. 공안국 인원이 와서 문을 두드려 사람을 잡아가기를 기다렸다.

부지불각 중에 연속 세 개의 꿈을 꾸었다. 모두 자기를 잡으러 온 사람을 어떻게 응대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첫 번째는 나의 상급자가 설명하게 하는 것이었다. 둘째는 내가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어 난관을 넘기려고 하는 것이었다. 세 번째는 자기가 직접 파룬궁 연마를 부인하는 것이었다.

깨어난 후 나는 관을 넘기지 못한 것을 확인했다. 그때는 이것이 원만할 수 있는 고험인지를 알지 못했다. 세 개의 꿈 속에서 성경에서 말한 예수가 수난을 받을 때 베드로가 세 차례나 주(예수)를 부인하는 경험과 거의 일치했다. 사부님은 꿈이 비록 수련은 아니지만 수련이 착실한지 아닌지 고험한다고 하셨다. 짧은 몇 개월간의 꿈에, 홍법을 하여 파룬궁을 배우라고 하는 것과 파룬궁을 부인하는 것을 다 꾸었으니 차이가 얼마나 큰가. 비록 꿈에 공안국 직원을 속여 관을 넘기려고 하는 성분이 있었지만 그것도 안 된다. 수련은 엄숙하다. 조금도 대충할 수 없고 더욱이 거짓말로 사람을 속이는 것을 허용하지 못한다. 실패했고 철저한 실패였다.

이때부터 수련의 다른 고통스런 과정으로 들어갔다. 수련 환경을 잃었고 신경문도 없었다. 정부의 압력과 하늘 땅을 뒤덮는 악독한 공격 하에서 나는 반복해서 생각했다. 정부의 결정이 옳은지 반복하여 생각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내가 배운 이 법이 맞는지 맞지 않는지, 바른지 바르지 않는지? 리훙쯔(李洪志)는 어떠한 사람인지? 이 유언비어를 날조하여 중상한 사악한 세력, 그것이 한 말이 맞는지, 맞지 않는지? 매 수련생은 모두 이런 문제를 생각하고 있었다. 많든 적든 당신들 모두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는 또 당신들에게 한 차례 생각할 기회를 준 것이다.” 《/span>도항 – 북미 오대호 법회 설법확실히 이렇다. 같이 한번씩 사고했고 할 때마다 굳건해졌다. 무엇 때문에 발생할 수 있었는가? 무엇 때문에 발생해야 했는가? 나는 줄곧 답안을 찾고 있었다.

나는 평소 맡은 일에 책임지고 공명을 구하지 않으며 이익을 도모하지 않았다. 특히 집을 분배하거나 간부로 뽑히는 일에 동료나 상사가 수련자의 박대한 흉금을 이해하도록 했고 게다가 줄곧 직장의 우수 모범사원으로 선정되어 사람들의 평판이 좋았다. 때문에 파룬궁 이 일에서 그리 큰 상해를 조성하진 않았다.

나는 정직 당했다. 그래도 매일 반드시 시간에 맞춰 사무실에 가야 했다. 업무는 주지 않았지만 반성하고 반성문을 써서 보고해야 했다. 직장에서 전적으로 교육 팀을 만들어 매주 나의 상황을 상급에 보고했다. 동료들이 나를 두려워했고 상사도 나를 멀리했다. 나는 이렇게 고독하게 무료하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법공부, 법 베껴 쓰기, 연공은 집에서 매일 진행했고 담담히 일체를 내려놓고 심성을 지켰다. “마음에 진선인을 품고 자비로 주위 일체를 대한다”를 일과 생활의 준칙으로 삼았다.

비록 고험에서 관을 넘기지 못했지만 사부님은 제자에 대해 늘 한결같으셨다. 이 못난 제자를 버리지 않으셨다. 나의 천목은 여전히 또렷이 분별할 수 있었다. 그때 눈을 뜨면 한 줄의 파룬만 보이는 게 아니라 온 하늘에 빽빽히 가득 찬 파룬을 보았다. 어떤 때는 검은 색 바닥을 보면 더 뚜렷해졌다. 이것으로 사부님께서 정말 수련생을 제자로 삼아 이끈다는 것을 보기 충분하다. 이때 나는 《/span>전법륜을 8번 베껴 썼고 다른 대법서적도 문답을 제외하고 다 한번씩 썼다.

말할 것이 있는데 한번은 박해가 발생한 지 얼마 안 되어 꿈에 또 사부님을 뵈었다. 그것은 고향의 어느 관방(官房 고대 지방관원의 가족이 머무는 곳)이었는데 앞뒤로 두 개의 문이 있었다. 사부님은 흰 셔츠에 짙은 색 바지를 입고 성큼성큼 나를 향해 걸어오셨다. 관방의 한쪽은 주민들의 주택인데 그들의 문이 다 열려 있었다. 입구에 사람이 서 있었는데 그중 한 노년 부녀는 우리 연공장의 사람이었다. 그녀는 제 3장 공법을 연마하고 있었다. 사부님이 내 앞에 5미터도 안 되었을 때 걸으면서 말씀하셨다. 처음에 나는 사부님인 줄 몰랐는데 나와 어깨를 스칠 무렵 나는 사부님의 한마디 말이 머릿속에 들어왔다. “몇 명이 원만할 수 있는가?” 나는 깜짝 놀랐다. 이는 사부님이 아니신가? 하고 “사부님”을 외쳤다. 사부님은 돌아보지 않으셨고 계속 앞으로 가셨다. 나는 사부님에게서 7,8 미터 떨어진 상태에서 몸을 돌려 다시 “사부님”, “사부님, 저는 당신 신변의 제자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사부님은 이미 문 입구로 나가버렸다. 관방의 밖에는 큰 대포가 꽝꽝 울리고 있었고 탱크가 줄을 지어 들어왔는데 마치 전쟁터에 진공하는 것 같이 포화가 하늘에 닿았다.

하지만 사부님은 여전히 씩씩하게 앞으로 걸어가셨고 전혀 이런 것을 눈에 담아 두지 않으셨다. 나는 즉시 지름길로 달려가 사부님을 따라 잡고 싶었다. 그리고 깨어났다. 반성해보니 사부님의 정법의 걸음을 따라잡지 못했다. “몇 명이 원만할 수 있는가?” 그렇다, 자기는 원만에서 아주 멀었고 법리에 똑똑하지 못하고 심성이 높지 않다.

“의지 확고하지 못하면고비는 산과 같나니어이 속세를 벗어나랴” 《/span>홍음2>-끊다

(계속)


원문위치
: http://www.zhengjian.org/node/24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