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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에 법광이 비추다

작자: 대륙대법제자

【정견망】

나는 1995년 법을 얻은 노제자다. 법을 얻기 전 십여 가지 병이 있었으나 법을 얻은 후 부지불식간에 다 사라져 버렸다. 건강해진 나는 격동되어 만나는 사람마다 파룬따파가 좋다고 하며 대법을 수련하면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했다. 나의 영향으로 배우자와 주위에 두 자매, 그의 남편 외생질이 잇달아 대법으로 들어왔다. 이와 동시에 나는 또 주위의 여동생에게 대법 서적과 자료를 신속히 고향으로 가져가게 하여 고향의 친척들에게 전해주어 그들이 이익을 얻도록 했다. 이때부터 우리 집의 식구에게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약골’ 사촌이 대법을 배운 후 강건해져

내게는 원래 타고난 약골로 병이 많던 사촌 여동생이 있다. 그녀는 결핵을 다년간 앓았고 오랜 세월동안 대문 밖을 나가지 못했다. 하루종인 찡그린 이마를 펴지 못했고 매우 비관한 그녀는 약을 밥 먹듯 했으며 허약하여 바람만 불어도 쓰러질 것 같았다. 집 안팎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 그녀가 대법을 만난 후 약을 완전히 버렸을 뿐 아니라 온몸의 병이 다 사라졌고 정신력도 좋아지며 신체가 건강을 회복하며 힘도 강해져 집안일이란 일은 다 할 수 있게 되었다. 매일 매부와 함께 산에서 밭에서 아침부터 밤늦게 일을 하고도 피곤할 줄 몰랐다. 두 사람이 관리하는 과수원은 해마다 수입이 늘었고 상황이 날마다 좋아졌다.

5년 전 사촌 매부가 다리에 골절을 입었다. 보통 뼈와 근육을 다치면 백일이 걸린다고 하는데 매부는 집에서 아무 일도 할 수 없었고 또 마침 추수의 바쁜 계절이어서 집안일이나 밭일은 전부 여동생 혼자 해야 했다. 때문에 그녀는 밤낮 이러저리 뛰어 다녀야 했다. 집에 돌아와서는 또 집안일에 바빴으며 움직일 수 없는 남편을 돌봐야 했다. 마을의 이웃이 엄지를 치켜들고 칭찬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또 파룬따파가 그녀에게 복을 가져다 주었다고 칭송했다. 그녀의 변화로 인해 마을의 많은 사람들이 대법 수련으로 걸어 들어왔고 촌 간부도 부득불 대법의 신기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악이 미친 듯이 대법과 대법제자를 박해하던 기간에 촌 간부는 사촌과 다른 제자들을 보며 말했다. “당신들은 집에서 잘 연마하시오! 위에서 뭐라고 하면 모든 것은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손녀가 대법의 이익을 얻다

손녀는 올해 13살로 중학교 3학년이다. 매번 학교에서 돌아올 때마다 나는 기회를 보아 대법 진상을 알려주었고 또 삼퇴도 도와주었다. 그러나 아이 외할머니는 예수를 믿어 딸과 손녀를 억지로 교회로 끌고 가서 세례를 시켰다. 그래서 내가 말하는 진상을 그리 마음에 두지 않았다.

올해 설날 기간에 나의 옛 동창생(역시 수련생) 부부가 우리집에 놀러왔다. 손녀는 이 두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한 후 막 떠나려 하는데 노부부가 옆에 끌어다 놓고 말했다. “오늘 내가 너에게 세뱃돈을 가져왔는데 두가지 문제에 답을 해야 되. 하나는 목숨을 구하는 9자 진언이 무엇인지 말해봐.”

손녀는 손가락을 짚으며 생각하더니 말했다.

“파룬따파하오! 쩐산런 하오!” 라고 했다.

동창은 말했다. “잘했어, 두번째 문제는 삼퇴가 무엇이지?”

손녀는 즉시 답했다. “퇴당, 퇴단, 퇴대예요.”

동창은 “잘했다. 각각 세 번씩 써보거라.”

손녀는 공경하게 두 문제에 대한 답을 세 번 써서 할머니에게 바쳤다. 동창은 만족해하며 300위안이 든 세뱃돈 봉투를 손녀에게 주며 다시금 부탁했다.

“‘파룬따파하오! 쩐산런 하오!’를 늘 외우렴.”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는 두 노인을 그리 잘 알지 못하므로 세뱃돈을 받지 않겠다고 사양했으나 마지막에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동창은 내게 말하기를 올해 12월 30일 이런 방식으로 손자 손녀에게 세뱃돈을 주며 아이의 사상 깊은 곳에 대법이 좋다는 인상을 심어 놓았다고 했다. 당시 그녀의 손자 손녀는 두 문제를 다 대답하고 열 번씩 쓴 후 또 외할머니에게 달려가 문제에 답을 하겠다고 하여 모인 식구들이 두 아이 덕분에 하하 크게 웃기 시작했다.

금년 3월 중순 손녀가 다니는 학교에 배구팀이 있는데 외지에 가서 성(省)대회에 참가해야 했다. 대회를 일주일 하고 돌아온 다음날 전교 동급생의 등급 시험을 보았다. 성적이 나온 후 보니 손녀는 반 60명 중 삼등을 했으며 전교 600여 명 중 84등이었다. 그녀 엄마는 기뻐서 전화를 걸어 아이가 일주일 간의 수업을 빼먹었는데 시험 결과는 이전보다 7,8 등 올라갔고 전교에서 30등이 올랐다고 했다. 나는 이 모든 게 지난 설날 무렵 진상문제를 답하고 진언을 외워 이익을 본 결과라고 말해주었다. 전화중에 며느리가 기뻐하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대법이 동생에게 두번째 생명을 주다

내 동생은 63세로 근면, 성실, 정직하며, 사람 돕기를 낙으로 삼는 농민이다. 내가 법을 얻은 후 그에게 대법서적, 연공테이프를 구해주었다. 처음에 그도 따라서 연마했다. 그러나 이 물욕이 횡행하는 시대에 그는 명리를 내려놓지 못하고 더욱이 대법이 난을 겪는 동안에 두려운 마음에 장애가 되어 줄곧 대법 속으로 걸어 들어오지 못했다.

2008年5 월 경 현에 가서 신체검사를 했는데 위암이 나왔다. 즉시 성(省) 암병원에 가서 위를 제거하는 수술을 했다. (겨우 1/5만 남겼다) 수술 후 의사의 요구에 따라 또 화학치료 네 과정이 거쳐야 했다. 치료과정 하나를 거친 후 오심 구토 등이 반응이 강렬했으며 이어서 복통, 복부 팽창으로 급히 입원하여 이차 수술을 했다. 수술 중 복강 출혈이 생겼다. 지난번 수술 후 생긴 상처가 잘 아물지 않은 것으로 다시 꿰매야 했다. 퇴원 후 우리의 재촉 하에 그는 또 다시 법공부 연공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그의 과수원과 논밭을 내려놓지 못했다.

2009년 신년이 막 지나서 다시 급성 복통이 나타났다. 그곳 현병원에서 해결할 수 없어서 도시 지역 큰 병원으로 옮겨 검사해보니 급성 장폐색이었다. 당시 이미 쇼크상태에 있었기에 즉시 재차 배를 갈라 조사했는데 수술중 복강이 한덩어리로 붙어 있어서 20 여 센티 괴사된 장을 잘라내는 수밖에 없었다. 수술 후 보호실에서 줄곧 혼수상태로 깨어나지 못했고 일주일을 간호한 후 겨우 호전 되었다. 그러나 수술하여 개복한 부위는 전부 갈라져 잘 낫지 않았다. 이 기간 나는 불원천리하고 차를 타고 와서 그를 찾아가보니 그는 병상에 누워 수심이 펴지지 않았고 나를 보자마자 두눈에 눈물을 흘렸으며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를 위로하며 가지고 간 대법서적 《홍음》을 주며 시간이 나면 많이 보라고 했다. 그는 반드시 잘 보겠다고 했다. 퇴원 전에 의사가 그에게 말했다. “당신의 배는 더는 칼을 댈 수 없습니다. 창자가 들러붙어 더 이상 수술은 못해요.”

동생은 병마에 시달리는 중 세 번의 귀문관(죽음의 문턱)을 지났다. 체중이 78에서 60 킬로도 안되었으며 인민폐 20 여 만 위안을 썼고 몹시 고통을 겪었다. 이 대 그는 비로소 파룬궁 만이 자기를 구할 수 있음을 의식했고 그가 이전에 내려놓지 못한 마음을 전부 다 내려놓았다. 논밭, 과수원을 아들에게 관리하라고 하고 매일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 5장 공법을 단숨에 연마했으며 낮에는 적어도 1-2시간 법공부를 했다. 매우 빨리 신체가 회복되었고 체중이 72 킬로까지 증가 했다. 복부도 갈수록 편안해졌다. 얼굴의 찌푸린 주름살이 펴졌다. 매일 밭에 일도 할 수 있었다. 지금 이미 5년이 지났는데 그의 신체가 매우 좋으며 수술 이전과 전혀 다름이 없다.

동생이 죽음에서 살아난 일은 주위 가족들에게 영향이 매우 컸다. 모두 대법이 2차 생명을 주었음을 알고 있다. 마을에서는 이전에 대법을 믿지 않았지만 역시 대법의 신기함을 믿었고 대법에 반대하는 사람도 인정했고 심지어 이미 대법 수련으로 들어온 사람도 있다.

오늘 우리 40 여명의 대가족 대부분은 진상을 알고 삼퇴했으며 13명이 수련을 하고 있으며 온 가족이 대법과 사부님께 매우 감사하고 있다. 인연 있는 모든 사람이 들어와 우리처럼 대법에서 이익을 보았으면 하고 있다.

발표시간: 2014년 6월 1일

정견문장: http://www.zhengjian.org/node/13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