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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명의 길 (2)

작자:회비(回飛)

【정견망】

4.선량한 사람이 되는 것은나의 추구이자 소망

나의 생명 중에 선량한 마음이 있는데 그것이 생명의 본질이다.나는1950-60년대에 태어나 성장한 사람이다. 어려서 집안 환경이 비록 가난하긴 했지만 남 돕기를 좋아했고 남을 돕는 것이 아름다운 일이며 고상한 일이라고 느꼈다.기회만 있으면 다른 사람을 도왔다.길은 앞으로 걸으며 인생 존재의 의의가 무엇인지 마땅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자기도 사고하며 찾고 있었다.

83년 내가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나는 당시 어느 회사의 관리직을 맡아 사업의 길로 들어섰다.생명의 이 전환점에서 어떤 사람이 내게 말해주기를 사업을 하는 것은 사람이 되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이익을 위해 생각해야 하며 이렇게 해야만 오래갈 수 있다고 했다.그의 이 말은 내가 이후 사업을 하는데 매우 큰 작용을 일으켰으며 나의 소원에도 부합되는 것이었다.

한번은 우리 회사에서 일부 화공 원료를 수입했다. 수입하기 전에 우리는 이미 국내의 많은 공장과 구매를 계약하고 공장은 계약금을 지불했다.원료가 항구에 도착했을 때 이때 국내의 은행은 긴축 정책을 실시하고 있었기에 돈을 빌리지 못하자 당초 화물을 많이 계약한 공장은 지불할 돈이 없었다.당초 계약은 화물이 도착했을 때 공장에서는 돈을 다 지불해야 화물을 출고시켰으며 그렇지 않으면 계약금을 위약의 보상금으로 하며 물리지 않기로 되어 있었다.

현재는 공장이 계약을 어기면 일반적인 회사의 작법은 계약금을 삼켜버리고 다시 법원의 추징으로 책임을 물린다.나는 이렇게 할 수 없다고 느껴 마땅히 다른 사람을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계약이 어긋난 것은 공장측에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며 은행의 긴축정책 때문이니 그 책임은 우리가 져야 한다. 나는 즉시 화물을 출고하라고 했다.이미 계약금을 얼마나 냈으면 그만큼 출하하여 공장 생산에 차질이 없도록 하라고 했다.나머지 원료 약70%는 우리 회사가 팔아볼 방법을 찾으라고 했다.

비록 우리 회사는 커다란 자금 압박을 받았지만 공장은 원료를 생산에 투입하여 자금이 회전된 후 다시 두 번째,세번째 원료를 가져갔다.어떤 공장은 사람을 보내어 감사의 뜻을 전했고 어떤 공장장은 눈물을 흘리며 고마워했다.이때 나는 좋은 사람이 된 것을 느꼈고 이기심이 없는 사람은 타인과 사회에 대해 모두 유익하며 자기의 사상 경지가 약간 승화된 것을 느꼈고 인생의 목적과 생명의 존재의의를 조금 더 똑똑히 알게 되었다.

1990년대 사회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희망공정,희망학교(역주:당시 공산당 청년단에서 제창한 운동-빈곤층 아동에게 의무교육을 시키려고 만든 학교)에 투자했다.나는 이것이 사람을 구할 수 없음을 보았다.왜냐하면 많은 사람의 도덕이 나쁘게 변했고 선생의 도덕도 마찬가지로 나쁘게 변했는데 도덕적인 학생을 교육해낼 수 있는가?

나는 그래서 사범대학을 하나 만들 생각을 했다.이름을“정본(正本)사범대학”으로 불렀다.도덕을 근본으로 하여 우선 합격한 도덕성 있는 교사를 배양한 후에야 비로소 도덕이 있는 학생을 배양할 수 있으므로 우리 사회는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다. 1997년 내 나이40세 일 때 나는10년의 시간을 들여 자금을 모아 기금회를 만들도 이 광대한 소원을 실현하려고 했다.

나중에 한 친구를 알게 되었는데 그가 내 뜻을 알고는 말했다. “자네의 이 사상은 매우 위험하군.사물이나 인생에 대해 너무 뚜렷하게 알고 추구가 너무 완벽해.그것은 사회와 격이 어울리지 않으니 나중에 출가할 것이다.”라고 했다.나는 듣고 나서 생각했다.좋아,그게 내 뜻에 맞는다.

그래서 당시 나는 속으로 나이50세에 바로“정본사범대학”을 설립한 후 바로 출가하고 세간의 일체를 포기하며 인생의 최고 경지를 추구하며 우주의 진리를 추구하려고 했다.사실을 말하면 이때 나는 이미 이 더러운 속세에 생존하기 어려웠으며 사람 도덕이 패괴한 후의 사상 의식 행위가 너무 두려움을 보았다.

사회는 앞으로 발전해 나가며 과학기술도 발전하고 있다.사회의 발전,과학기술의 발전이 결코 사회가 갈수록 좋게 변한다는 것이 아니다.현실 사회는 인류 도덕이 미끄러지고 있으며 후퇴하고 사람은 더욱 이기적이 되어가며 조그마한 이익을 위해 싸우며 생존환경은 더욱 거칠어진다.이 때문에 고난을 가져오며 사람은 벗어날 길이 없으며 너무나 고생스럽다.때로는 사람이 너무 고생스러운 것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사람의 출로는 어디인가?사람은 어떻게 해애 고해를 벗어날 수 있는가?어떻게 해야 비로소 도덕이 되돌아 올수 있는가?

5.그 생명이 나를 부처님께 인도

1997년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회사는 이미 비교적 큰 발전이 있어서 금전과 재산이 많아졌다.나는 그것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느끼며 내가 원하던 것이 아니며 사람이 살며 하루 세끼 먹고 간단한 차나 마시면 되지 얼마나 많이 먹고 쓰는 것이 전부 다 몸 밖의 것이라 날 때 가지고 가지 못하며 죽을 때 가지고 가지 못한다.명리에 담담해진 후 생활은 더욱 간단해졌고 사상은 많은 변화가 있었으며 생명 존재의의에 대해,어떻게 좋고 선량한 사람이 될 것인가 더욱 많이 사고하기 시작했다.

과거 많은 친구들이 늘 나에게 함께 커피,차를 마시며 이야기 하며 인생,생명,사업의 등의 화제에 대해 이야기 했는데 나는 나의 깨달음을 이야기 했다.매번 내가 그들에게 이런 인생의 의의를 말할 때 나의 사상은 그 생명에 의해 열렸으며 마치 수도꼭지를 열듯이 생명의 깊은 곳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왔다.모두 좋은 번쩍이는 사상과 철학성이 있으며 불성을 지닌 것이었다.사실 그들에게 들려주는 동시에 후천적인 나를 깨끗이 씻는 과정이며 그들은 듣고서 너무 좋다고 하며 어떤 때 그들이 물었다“너는 어떻게 하여 이런 좋은 인식을 가졌냐?” “너는 부처를 믿느냐?”사실 나는 불교의 것을 보지 않았으며 부처에 대한 인식도 희미했다.

나중에 이런 말을 묻는 사람이 많아지자 나는 그들에게“나는 부처님을 믿는다”고 말했다.그들 중 일부는 그들의 친구를 데리고 와서 나를 소개해주었고 좋은 사람이 되는 도리를 듣기 희망했다.많은 사람이 듣고서 가고 싶어 하지 않았으며 얻은 이익이 적지 않다고 하며 나는 더욱 많은 사람이 좋은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느꼈다.점점 나는 좋은 사상과 철학이 불교와 관련이 있음을 느꼈다.

그래서 사전에서“부처”의 뜻이 무엇인지 찾아보았다. “수련하여 깨달은 사람”으로 되어있었다,나는 이것이 바로 내가 가려던 길이라고 생각하고 만물에 대해 인생에 대해 깨달음이 있었다.나는 수련 후《전법륜》에서 이 말을 보았다.몇 년 후 어느 날 나는 갑자기 속인의 사전에 어떻게 이런 말이 있는가 생각하게 되었다.나는 즉시 그 사전을 다시 찾아내어“佛”자에 대한 주해를 찾아보았는데 이런 말이 전혀 없었다. 다시 말하면 당시 이 구절의 말은 그 생명이 연화하여 내게 보여준 것이며 나를 인도하여 부처와 선을 향하게 한 것이었다.

1996년 시청의 모 부서(통일선전부)에서 청해성의 어느 활불(活佛)을 초청했다. 다시 말해 탑니사(塔爾寺)의아가(阿嘉)활불이었다.청해의 티베트 족은 아가활불을 보거나 들으면 합장하고 절을 한다.통일선전부에서 전화를 하여 나보고 식사 대접을 하라고 하여 나는 응답했다.그가 도착했을 때 많은 불교거사들이 왔다.그들은 그의 이름을 흠모하여 온 것으로 방안에는 많은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아가활불은 사람마다 정수리를 만졌는데 어떤 사람은 감동하여 눈물을 글썽거렸다.아가활불은 마지막에 내 앞에 왔는데 바로 정수리를 만지지 않았으며 모든 사람들 앞에서 나를 가리키며“그는 부처와 인연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왜 내 머리는 만지지 않는가?나는 수련 후 알았는데 아가활불은 초능력이 있어서 그는 내 몸에 불가의 수기가 있으며 사부가 관여하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정수리를 만질 수 없었던 것이다.

한번은 친구인 주(朱)소저가 내게 종이 한 장 크기의 관음상 사진을 보내주었다. 대만 사람이 비행기를 타고 찍은 것이라고 했다.그날 밤 꿈에서 나는 비할 바 없이 광활한 창궁에서 거대한 부처가 서 있으며 자상하며 자비로우며 금광이 번쩍이며 장엄했다.정말 나는 그 앞으로 다가가고 싶었다.이 꿈은 매우 뚜렷하여 비할 바 없이 아름다워 신불에 대한 개념이 더욱 뚜렷했으며 신불의 존재를 더욱 믿고 우러러 존경했다.

한걸음 한걸음씩 그 생명은 또 나로 하여금 부처님을 찾도록 인도한 것이다.

1997년4월 어느 날 나는 어느 절에 가서 향을 올리고 합장을 하고나서 나를 보호하는 천상의 그 생명에게 묵묵히 말했다.“부처님,저는 아무것도 구하지 않으며 단지 제가 곤란한 위험을 만났을 때 지혜와 힘을 주시어 제가 곤란과 위험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해 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향로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서서 눈을 감았다.갑자기 거대한 뜨거운 열 흐름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꿰뚫었으며 비할데 없이 편안하고 미묘했다.나는 천천히 눈을 떴는데 눈앞에 호수와 소나무 숲이 깨끗이 새로워졌으며 투명하고 맑았다.그것은 이전에 보지 못한 아름다운 장면이며 나의 생명이 새로 바뀐 것 같았다.수련 후 나는 이것이 관정임을 알았다.사부님께서 고에너지 물질로 제자의 신체를 정화시켜준 것이며 나의 처음 관정이었다.

1997년9월 시 무역협회에서 조직한 호주와 뉴질랜드 시찰단에 참가하게 되었다.떠나기 전 우리는 홍콩의 한 호텔에 모여 함께 식사를 했다. 그곳에서 나는 시찰단을 배치한 외국기업인 주(朱)여사를 만났다.식사 후 인생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다 나의 깨달음을 좀 말했는데 당연히 불성(佛性)이 좀 있었다.주 여사는 내 말을 듣고 난 후 감개하며 말했다. “뜻밖에도 중국 대륙에 아직 이런 분이 있네요.”

그래서 우리는 시찰단이 돌아온 후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다.시찰단에서 돌아온 후 전화를 하여 우리는 어느 찻집에서 만나 우리는 인생, 생명, 고통, 질병, 생사, 행복에 대화했고 또 어떻게 이런 것을 초월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했다.그녀는 내게 법호(法號)가 있는지 물으며 제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나는 법호가 없으며 제자를 받을 수 없다고 했다.사실 나는 생명의 진체를 아주 조금만 알뿐이며 탐색 중에 그 고급 생명이 나의 선천적인 지혜를 열어주어 알게 된 것이다.

이 진실한 경험은 나로 하여 더욱 보이지 않지만 나를 따라다니는 그 생명은 대지대혜(大智大慧)하고 법력이 무한하며 하지 못하는 일이 없는 큰 부처임을 믿었다.나도 마치 무슨 사명을 지니고 무엇을 실현하려고 세간에 온 것을 느꼈다.이때 선한 본질이 되돌아 나왔고 세간이 너무 위험하고 고난이 겹쳐 사람이 고생스러움을 보고 늘 눈물을 흘렸다.이때 나는 이 세속의 생활에 더는 미련을 남기지 않았고 나의 사상은 이미 승화되어 하루빨리 세속을 벗어나 더 높은 경지로 수련하여 고해를 벗어나려고 생각했다.

3개월 후 나는 그녀가 보내준 전송팩스를 보았다.“당신을 보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그날 밤 당신의 말이 내게 큰 도움이 되어 저의 생명을 구했습니다.만나 뵌 다음 날 다음날 오전 병원에 가서 검사 보고를 받았는데 결과가 말기 자궁암이었습니다.그날의 담화로 인해 나는 이 일체를 담담하게 대할 수 있었고 병원에 가서 수술과 치료를 했으며 회복이 매우 빨라 저는 행운입니다.”

6.기쁘게 법을 얻어 수련의 길에 오르다

1997년8월 나는 북경 출장을 갔다. 친구가 북경 모 대학 교수로 있었는데 그가 꼭 자기 집에 와달라고 해서 그 집에 가는 수밖에 없었다.그의 아내는 나와 생명 질병의 문제를 이야기 했다.나는 자기의 인식을 알려주었고 그녀는 듣더니 오히려“당신 말은 우리 사부님이 하신 말씀 같네요.” “당신 사부님이 누구신데요?” “저는 방금 파룬궁을 연마한지 일개월쯤 되요.”그러면서《전법륜》을 보여 주었다.내가 두어 페이지 읽어보니 그 속의 말이 매우 옳아서 그녀에게 말했다. “당신 사부님 말씀이 매우 좋군요.”그리고 책을 돌려주었다.

그녀는 즉시 이 책을 주겠다고 하여 나는 이 책을 가지고 돌아왔다.좋은 책인 줄 알았지만 바빠서 내내 보지 못했다.얼마 후 또 북경에 가서 또 그 집에 머물렀다. 이번에 그 부인은 또 내게《경문(經文)》을 주었는데 아주 작은 책이었다.심천에 돌아온 후 이어서 나는 호주 뉴질랜드에 시찰을 갔는데 이 책을 가지고 가서 가는 도중 몇 페이지를 보았다.돌아온 후 줄곧 이 책을 기억했다.

어느 토요일 좀 일찍 집에 돌아와 식사 후《경문》을 들고 보기 시작했다.읽어가면서 이 책에 쓰인 것이 너무나 옳음을 발견했고 단숨에 다 읽었다.이것이 바로 내가 찾으려던 진리였다.많고 많은 내가 과거에 이미 알고 있던 것과 알고 싶어도 알지 못했던 도리가 이 책속에 다 있었다.책속에 내가 모르던 더욱 높고 더욱 깊은 내포가 있었다.마침내 나는 사부님을 찾았고 세간의 가장 진귀한 법울 얻었다.늦게 만났음이 한스러울 뿐이었다.

다음날 오전6시 나는 차를 몰고 공원에 가서 연공장을 찾았다.문을 열고 들어가 왼쪽으로 가니 한무리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나는 그 사람들 쪽을 걸어갔는데20여 미터 정도 떨어져 있을 때 한가닥 뜨거운 흐름이 머리 정수리에서 발까지 관통했다.이것은 두 번째 관정이었다.내가 다가가니 얼굴이 불그레한 할머니가 나를 향해 걸어왔다. 나는 “이곳이 파룬궁을 하는 곳입니까?”라고 물었다. 그녀는 “네,네.우리가 바로 파룬궁입니다.”라고 대답했다.이때 나는 눈물이 그치지 않고 솟아나왔다.마침내 사부님을 찾았고 집을 찾았다.어려서 집을 떠나 천신만고 끝에 온갖 역경을 거쳐 먼 길을 돌아 마침내 늙어서 되어 집을 찾은 그런 행복한 느낌이었다.

내 생명 중에 나를 따라 다니며 보호하고 선과 부처로 인도하던 그 생명이 바로 대법 사부님이었음을 알았다.사부님이 인도하셔서 나는 대법 수련으로 들어왔고 이때 사부님에 대한 감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그저 솟아나는 눈물뿐이었다.

이때 나는 세간의 일체를 버리고 수련하여 천상의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이것이 최고의 일이다.나중에 법공부 할 때 사부님이《북경 국제교류회설법》에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을 보았다.

“그러나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겠다.당신은 이 법을 얻기 위하여 아주 쉽지 않았다.아마 당신이 전반생(前半生)에서 겪은 고생은 모두 이 법을 얻기 위한 것일 텐데 이것은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이다.또 당신이 모르는 것도 있다.아마 당신의 전(前)몇 세 심지어 더욱 긴 시간에서 모두 이 법을 얻기 위하여 고생을 겪었거나 고달픔을 겪었을 것이다.또 어떤 사람은 이 법을 얻기 위하여 더욱 큰 고통을 겪은 적이 있는데,이는 당신이 모르는 것이다.장래 당신이 원만한 후,당신은 알게 될 것이며 또한 보게 될 것인데 매우 쉽지 않았다.”

공원에서 돌아와 바로 회사로 달려가 형을 만나 말했다. “오늘 이후 회사 일은 형님께 일임하고 저는 수련할께요!”당시 형은 이 말을 듣고 멍하니 나를 쳐다보았다. 이 동생이 비정상이 아닌가 하고.나중에 나는《전법륜》을 공부하고 비로소 내가 한 것이 잘못된 것이며 사부님의 요구에 부합되지 않음을 알았다.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세간에서 수련하며 정상인의 사회에서 일하고 생활 중에서 수련하라고 하셨다.출가수련 즉,세상과 격리되어 수련하는 것이 아니었다.

다음날 일어나 나는 매일 아내를 데리고 공원에 가서 단체 연공,법공부에 참가했다.비가 오나 눈이 오나 끊이지 않았다.내 생명은 대법의 진귀함을 알았고 생명 존재의 의의를 알았으며 대법은 생명이 고해를 벗어나게 할 수 있고 아름다운 천국세계로 돌아가게 할 수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법을 얻은 후 나는 전체 사회의 도덕이 마치 염색항아리처럼 급속이 패괴되고 정토는 이미 존재하지 않음을 알았다.나의 정본 사범대학은 그저 꿈이었으며 염색항아리 속에서 정토(淨土)를 건설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현재 대법에서 수련하니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하나의 정토,진정한 정토를 열어주셨다.

7.부모님의 엄한 가르침에 감사

생명은 길고 긴 세월 중에 나는 여러 번 윤회전생했다.이번 생은 매우 운좋게 이 집에 태어나게 되어 어려서 고생을 겪고 의지를 단련하며 좋은 교양과 성장을 할 수 있었다.

모친은 어려서 엄격히 교육하여 우리에게 철이 들고 좋은 사람이 되게 하셨으며 장래 발전이 있게 하셨다.

어려서 가정이 매우 궁했는데 모친은 늘 쌀을 가져다 다른 사람을 도왔다.이런 일은 비록 작지만 나에게 무사무아(無私無我)한 기초를 닦아 주었다.매번 내가 말을 듣지 않을 때면 모친은 나뭇가지로 나를 때리셨다. 때리신 후에는 늘 눈물을 흘리며 간곡하게 교화하셨다.비록 나의 살갗은 아픔을 겪었지만 모친은 나를 위해 한 것임을 알았다. 부친은 비록 모친처럼 나를 교화하지 않았지만 정직하고 몸으로 나에게 모범을 보여주셨다.마찬가지도 내가 말을 듣지 않을 때 부친은 굵은 대나무로 나를 단단히 혼내셨으며 부친이 때리면 살갗이 반드시 터질 때 까지 때려 나를 그 교훈을 영원히 잊지 못하게 했다.나는 여기서 부모님이 회초리로 가르치심에 감사드린다.

부모님은 언행으로 가르치시고 게다가 회초리를 나의 행위를 바로잡아 내가 나쁘게 되지 않도록 하셔서 내가 점점 자라서 사람의 도덕규범을 갖추고 선량하고 남을 도우며 고생을 하며 인내하는 품성을 갖게 되었다.이런 것은 생명으로 말하면 가장 중요한 것이다.나중 안생에서 사회도덕이 패괴(敗壞)되었을 때도 나는 도덕과 양심을 견지하고 찾으며 기다릴 수 있었다.마침내 나는 대법이 세상에 전해질 때 암흑 중에서 불법(佛法)을 찾았으며 광명과 희망을 찾았다.만일 내가 세상에서 나쁘게 변하여 도와 멀어졌다면 오늘 대법이 널리 전해져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내 생명은 암흑 중에 훼멸(毁滅)로 향했을 것이며 그건 가장 두려운 일이다.

그러나 부모님 덕분에 나쁘게 변하지 않았고 대법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그러므로 부모님의 엄격한 가르침의 은혜에 감사한다.

발표시간: 2014년 3월 7일

정견문장: http://www.zhengjian.org/node/1280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