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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를 옮기지 않기

작자:대법제자

【정견망】

전에 한 노년동수에게 괴로움을 하소연할 때면 그녀는 매번 내 말을 듣고는 미소를 지으며 “허허”하고 웃어넘기곤 했다. 나는 그녀의 표정을 보며 ‘어째서 동정심이라곤 전혀 없을까?’ 하면서 더욱 화가 났다. 부모님은 먼 외지에 계시고 주변에 아는 사람이 없는 관계로 나는 무의식중에 동수를 가족처럼 여겨왔다. 때문에 고민이나 번거로운 일들이 생기면 동수를 찾아가 넋두리하곤 했던 것이다.

어떤 동수는 대화를 하고 나면 상대방이 나를 이해해준다는 느낌에 마음이 편해졌지만 이 노년동수에게 말을 하고 나면 오히려 더욱 힘들어질 뿐이다. 이런 상태가 한동안 지속되었다.

어느 날 문득 ‘동수는 내가 남을 원망하는 병을 없애도록 돕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떠올랐다. 공자(孔子)는 일찍이 자신의 수제자 안회에 대해 “남에게 분노를 옮기지 않고 한번 저질렀던 잘못을 두 번 다시 저지르지 않는다”고 칭찬한 바 있다. 이처럼 고대인들조차 다른 사람에게 분노를 옮기지 말아야 하며 좋지 않은 정서를 남에게 옮기는 것은 부도덕할뿐만 아니라 이기적인 행위임을 알았다. 그렇다면 대법제자로서 나는 왜 그렇게 하지 못한단 말인가?

사부님께서는 “어떤 구체적인 일들에 부딪혔든지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준 적이 있는데, 그것은 모두 좋은 일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수련했기에 비로소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아무리 큰 마난(魔難)으로, 아무리 큰 고통으로 여기든지 간에 모두 좋은 일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수련했기에 비로소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 마난 중에서 업력을 없애버릴 수 있고, 마난 중에서 사람 마음을 제거할 수 있으며, 마난 중에서 당신으로 하여금 제고하여 올라오게 할 수 있다.”(2008년 뉴욕법회설법)라고 말씀하셨다.

수련의 길에서 우연한 일이란 없다. 기왕 모두 좋은 일이라면 나는 왜 도리어 사람마음으로 동수에게 하소연하는가, 이는 오성이 너무 낮은 게 아닌가? 이 이치를 깨닫고 난 후 관념을 바꾸자 나는 더 이상 동수에게 그 어떤 고난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게 되었다. 난관이 올 때면 나는 다만 법학습과 가부좌를 다그친다. 입정에 들면 사부님께서 자연스레 점화해주시고 법리가 눈앞에 나타나 사람 중에서는 돌파할 수 없었던 일들이 일목요연해진다. 이럴 때면 안으로 찾는 법보(法寶)가 자동적으로 법력(法力)을 발휘해 내 심성상의 부족과 구(舊)우주 생명의 나쁜 습관을 조금씩 닦아 버린다. 유암화명(柳暗花明)의 새로운 경지가 눈앞에 펼쳐지며 사람에게 구하는 것이 신께 구하는 것만 못하다는 이치를 절실히 체험하게 한다.

“당신이 평소 늘 자비로운 마음과 상화(祥和)한 심태를 유지한다면, 문제와 마주쳐도 잘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완충적인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늘 자비롭고 선(善)으로 남을 대하며, 무슨 일을 하든지 언제나 다른 사람을 고려하여 매번 문제와 마주칠 때마다 이 일을 다른 사람이 감당해 낼 수 있는가 없는가,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는가 안 되는가를 우선 생각한다면 문제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연공(煉功)함에 높은 표준, 더욱 높은 표준으로 자신에게 요구해야 한다.”(전법륜)

사부님의 법을 명심하고 절대 부정적인 정서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지 말아야 하며 누군가를 넋두리상대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 친근하고 존경하는 동수라면 더욱 그렇다. 가시밭길과 같은 길을 지나 오늘까지 걸어오기가 쉽지 않았을 그들을 소중히 여겨야하는데 내가 무슨 자격으로 부정적인 물질과 정신적인 쓰레기들을 그들에게 더한단 말인가?

발표시간: 2013년 10월 9일

정견문장: http://www.zhengjian.org/node/12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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