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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사진 : 잊을 수 없는 시간

작자: 가연(佳緣)

【정견망】

동수가 겁난(劫難) 이후 남은 사진 중 일부를 보내왔다. 당시 사진을 보니 감회가 매우 깊다. 그 아름답던 시간을 되돌아보면 정말 잊을 수 없고 가슴이 울렁거려 많은 생각을 떠오르게 한다.

내가 사는 도시는 비록 동북 변두리에 있다. 마치 봄이 오듯 파룬궁은 1994년 4월 우리 시에 전해졌다. 십여 명의 연공장(사진1)에서 시작해 입소문으로 전파되었고 갈수록 사람이 많아졌다. 불과 몇 년 만에 당시 40여 만 명의 작은 도시에 전면적으로 파룬궁이 번졌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파룬궁을 수련했는지 통계를 낼 순 없지만 매번 사부님의 신경문을 인쇄하여 배포할 때마다 1만부를 나누어 주었다. 우리 시 보도소가 막 세워졌을 때 사부님께서는 우리 시를 위해 전적으로 보도소가 바르게 걸으라고 써주셔서 우리는 지금까지도 이것을 우리 시 대법제자의 숭고한 영예로 삼아 소중히 하고 있다.

 

사진 1 : 겨울 날 연공장 (1996년 촬영)

세월은 물처럼 흘러갔지만 그 수승(殊勝)했던 수련의 날은 아직도 눈에 역력하다.

1995년, 1996년 우리 시에서는 녹음 및 비디오 학습반을 개최했다. 회사 시청각 교육관에서 14차례 비디오 학습반을 열었는데 매 기수는 7일간이었다. 먼저 법을 얻은 동수가 직접 친지들을 데려와 식구들이 함께 법을 들었는데 그 정황은 마치 사부님이 세밀하게 형상적으로 묘사한 것과 같다. “둘둘이 연달아 온다” 《정진요지 깨달음》.

이 2년은 우리 마음속에 우리 시 최대의 일이었으며 내심에서 우러나는 충격과 영문 모를 마음의 희열은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아 있다. 우리는 매일 새벽에 공원, 광장에 나가 동공을 연마했는데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영하 20-30의 매서운 날에도 중단되지 않았다. 밤이 되면 대법 서적이 담긴 가방과 가부좌 할 방석을 들고 초등학교 복도에 가서 학교 방송을 이용하여 법공부와 정공을 연마하곤 했다. 우리 시 수련생들은 대부분 그 2년 사이에 법을 얻어 우리세계의 중생들이 구도될 희망을 다져놓았다.(사진 2)

 

사진 2. 비디오 학습반 수강증 (1996년)

1997년 사부님 경문의 인도 하에 다시 안으로 찾으며 착실히 수련함을 중시했다. 그때 우리는 늘 심득교류를 했는데 우리 시뿐만 아니라 하얼빈, 장춘에 가서 경문을 가져왔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시간과의 대화’란 경문을 보고 매우 이상한 생각이 들었는데 알고 보니 시간이 바로 신이란 사부님의 말씀이 아직도 귓가에 울린다.

“사부 : 이러한 것은 노제자 중에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의 가장 뚜렷한 표현은, 그들은 늘 사람과 비교하며, 늘 그들 자신의 과거와 비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법의 각 층차의 요구로 자신을 가늠하지 못합니다.

신 : 이러한 문제는 이미 몹시 심각합니다. 상대방이 어떠어떠하다고 그들이 본 것으로 반대로 자신을 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정진요지)

우리에게는 이 일년이 가장 감촉이 컸다. 수련은 안으로 찾는 것이다. 토론회를 열 때 늘 따라잡지 못하는 느낌이 있었다. (사진 3)

 

사진 3 심득교류회 단체 사진(1997년 촬영)

그러나 수련의 필경 보통의 일이 아니며 특히 법을 막 얻은 초기에 매 사람이 모두 마난과 고험이 있었다. 하지만 사부님의 점화와 도움 하에 조금씩 제고하고 승화했다.

또 한가지 사람들에게 영향이 큰 신기한 일이 있는데 바로 손잡이가 있는 계란이야기 였다(사진 4)

 

사진 4 손잡이 달린 계란(1997년 촬영)

어느 집에서 양씨 아저씨는 아내가 대법을 수련하는 것을 반대하며 늘 시끄러움이 끊이지 않았다. 아내는 이 대법이 좋다고 여겨 반드시 수련하려 했고 이 때문에 두 사람은 늘 모순이 첨예했다. 못살게 굴어 아내는 절망했다. 그녀는 너 아니면 내가 죽자고 하며 이렇게 그냥 지낼 수 없다고 했다. 남편은 더욱 화가 불같이 일어나 죽으라고 했다.

딸이 이런 모습을 보고 침착하게 아버지에게 말했다.

“왜 파룬궁을 수련을 반대하세요? 엄마는 집에서 무슨 일이든 다 하고 몸도 좋아져 돈 한푼 안 쓰고 약도 안 쓰는데 얼마나 좋아요?”

그러자 아버지도 할 말이 없었다. 그저 반대만 하며 그는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고 했다.

“이런 저런 것이 있다고 하는데 너희들 누가 그런 것을 직접 본 적이 있니?”

딸이 말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해서 없는 것은 아니잖아요!” 라고 했다.

이 말을 할 때가 97년 정월 초이튿날이었는데 초나흘날 오전에 그의 집에 유일한 암탉이 손잡이 달린 계란을 낳았다. 아버지는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속으로 좀 두려워 중얼거렸다. 신이다 ! 신!

14년의 중공의 피비린내 나는 진압을 거치는 동안 양씨는 무신론의 악보를 받았다. 자기는 병이 있어도 돈이 없어 입원을 못했고 일도 못하고 병들어 죽는 사회를 벗어날 길이 없었다. 아내가 수련을 하여 조금의 병도 없고 70대인데 자전거를 타고 온 시내를 달리는 것을 보고 마침내 선택을 하여 파룬궁 수련자가 되었다.

1998년이 되자 개인 제고의 기초상에 이렇게 좋은 공법을 더욱 많은 사람에게 전하려는 열정에서 단체 연공과 홍법이 절정에 이르렀다. 시 광장, 공원 등에 천명 이상의 대집회가 열렸고 웅대한 장관을 이루어 거대한 에너지는 시의 구석구석까지 파고들어 녹았고 매 한 사람의 세인, 중생을 일깨웠다(사진 5,6)

 

사진 5 가목사(佳木斯) 시 단체연공(1998년 촬영)

 

사진 6 가목사 시 단체연공(1998년 촬영)

1992년 5월 파룬궁이 전해 나와 1998년이 되기까지 짧은 6년이란 기간에 파룬궁은 중국 대지에 널리 퍼졌고 그 세력은 산을 밀고 바다를 뒤엎을 듯 했다. 진선인(眞善忍)을 표준으로 좋은 사람이 되는 수련 단체가 사회를 변화시켰고 그들의 행동은 세상 사람들이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보게 하였다.

1998년 정말 잊기 어려운 한해로서 파룬궁이 최정상에 올라가 있을 때였다. 하지만 이런 꼭대기는 오히려 정(正)과 부(負) 두 가지 힘이 함께 밀어올린 결과였다.

1998년 국가체육총국 국장이 장춘에 와서 파룬따파 수련의 정황을 관찰하며 파룬따파의 홍전(洪傳)과 단체 연공이 하늘을 뒤덮을 듯하며 우뚝 선 모습을 보고 겉으로는 칭찬했다.

 

사진 7 장춘시 단체연공(1998년)

 

사진 8 장춘시 단체연공(1998년)

그러나 중공의 유관 부문에서는 이미 파룬궁에 대해 무조건적인 모함, 탄압을 시작했으며

공안내부에서는 파룬궁에 대한 조사 비밀지령을 하달했다. 당시 흑룡강성 하얼빈 파룬궁 보도소, 요녕성 대련시 파룬궁 보도소장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본 시내의 파룬궁 수련생에 대해 “파룬따파 수련생의 건강 및 정신문명조사”를 실시했고 진실하게 파룬궁 수련생의 정황을 반영했다. 우리 지역 마찬가지로 정부의 관련기구를 찾아가 관원과 좌담회를 열고 수련인은 자기의 직접 경험으로 얻은 수확을 말하여 좋은 효과를 보았다. 1994년 말 대련 보고회상에서 초기에 법을 전할 때는 사부님이 매 한사람마다 병을 하나씩 제거해주셨다. 나는 어려서부터 결핵을 앓았는데 사부님께서 손을 한번 휘두르시자 날개 달린 듯 날아가 버렸다.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이렇게 사람마다 느낌이 좋은 결과 에 당국도 생각지도 않게 더욱 많은 사람을 수련행렬로 이끄는 결과가 되었다. 하지만 공안국은 특무(特務) 수단으로 통계를 낱낱이 파악하고도 오히려 우리에게는 숫자를 알지 못하게 했다. 당시 중국에는 1억 명이 파룬궁 수련을 하고 있었다.

수천년간 동서고금에 얼마나 많은 성현들이 생명의 진리를 찾고 있었으며 우주의 진상을 알기를 갈구했는가? 오늘의 인류는 얼마나 행운인가? 이 만고에도 만나기 힘든 기연을 만나고 창세주(創世主)가 직접 인간세상에 내려와 대법을 전하는 것을 만나다니.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런 행운과 더불어 사람들은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을 진정으로 감지하고 수련으로 들어왔다. 사람의 심령이 끊임없이 승화되며 사람들은 사람이 된 진정한 목적-반본귀진-을 똑똑히 인정하게 되었다. 파룬궁을 수련하는 것은 바로 “집으로 돌아가는” 여정에 오른 것이다.

그러나 1999년 7월 공포 대왕이 하늘에서 내려왔다….. 사악한 악룡이 대륙에서 설쳤으며 도처에 피비린내가 진동했고 억만인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끊으려고 했다.

5천년의 역사는 바로 한바탕의 연극이었다. 그 실질은 바로 사람들이 큰 연극의 최후의 일막-대법의 홍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오천년 역사는 바로 용솟음치는 큰 강물로서 진흙을 일궈내고 남는 번쩍이는 진금(眞金)을 드러나는 것같다. 정법의 길에 오른 수련자는 사존을 바짝 뒤쫓아 진상을 말하고 중생을 구도하며 사전의 대 서원을 완성하며 신기원을 열어 법선을 타고 출항하려 한다.

발표시간: 2013년 5월 18일

정견문장: http://www.zhengjian.org/node/1186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