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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딸 이야기

작자: 내몽골 대법제자 영춘(迎春)

【정견망】

1. 어린 아들 이야기

(1) 나는 천상의 신선들을 다 알아요!

우리 아들은 올해 11살이다. 아들이 말을 막 하기 시작했을 때 중공 사악이 파룬궁을 가장 미친 듯이 탄압할 때였다. 남편은 이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포기했다. 갑자기 어느 날 아들이 정중히 그의 아빠에게 말했다. “당신은 왜 연마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연마를 하지 않아요? 천상에서 보니 당신 집은 전부 대법제자라서 내가 비로소 내려왔답니다. 원래 나는 날 수 있었지만 당신 집에 오고 나서는 날 수 없게 되었어요.”

나중에 내가 아들에게 “너는 어떻게 날아 내려왔니?”라고 묻자 그는 “나는 한참을 날아서 검은 집에 내렸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어요.”라고 대답했다

남편이 이 말을 듣더니 대법은 정말 신기하며 정말이라고 여겼다. 그는 이 아이가 보통이 아니며 정말로 법을 위해 왔다고 느꼈다. 이때부터 남편은 비틀거리면서 따라왔다. 아들이 출생했을 때 우리 집안과 친구인 보통 사람 한명이 말했다.

“이 아이가 태어날 때 한줄기 빛이 내려왔어요.”

이는 아들이 평범한 아이가 아니며 반드시 특별한 내력이 있다는 말이다.

나중에 아들이 4살 쯤 되었을 때 아빠에게 말했다.

“천상의 신선들을 나는 다 알아요. 하느님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알아요.”

아빠가 말했다.

“헛소리 하지 말거라. 쪼그만 녀석이 거짓말 하면 안 된다.”

아들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그는 증거를 보여줄 수 없자 아빠에게 얼른 말했다.

“믿지 못하겠거든 가부좌를 보여드릴께요.”

그러더니 방석을 가져와서는 두 다리를 틀고 오장 공법을 연마하기 시작했다. 어린 나이임에도 동작이 정말 보기 좋았다. 그 전에 나는 아이에게 연공을 가르친 적이 없었다.

나중에 나는 아이가 아주 신통한 것을 보고 법공부와 연공하러 갈 때 아이를 데리고 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아들에게 설법을 듣게 했다. 어느 날 아이는 휴대폰 게임을 하면서 법을 들었다. 한참 놀다가 갑자기 휴대폰을 내려놓더니 말했다.

“엄마, 큰 손 하나가 머리를 치면서 놀지 말라고 해요. 엄마 따라서 공부할래요.”

이때부터 아이는 법공부를 진지하게 했다. 법을 공부할 때는 아무 놀이도 하지 않았고 조용히 법공부를 했다.

(2) 자료를 붙이다

아들이 법공부 연공을 매우 정진하는데 내가 독촉할 필요가 없이 오히려 늘 나를 일깨워준다. 때로 내게 안일한 마음이 생겨 밖에 나가 홍법을 하려하지 않으면 그는 싫어하며 상심하여 한바탕 울곤 한다.

작년 겨울 어느 날 당시 10살인 아들에게 말했다.

“오늘 엄마가 너를 데리고 나가서 자료를 좀 붙여야겠다.”

홍법하러 나간다는 말을 듣자마자 아들은 정말 기뻐했다. 낮에 준비를 잘하여 저녁이 되지 우리 둘은 집문을 나서 남쪽길에서 북쪽에 으르기까지 가져간 모든 자료를 다 붙이고 돌아왔다.

집에 돌아온 후 그의 첫마디는 “엄마 내가 한 장 한 장 붙이는데 커다란 손 하나가 또 나를 도와서 붙여주었어요. 이것은 사부님께서 저를 도와 붙이시는 게 아닐까요?”라고 했다. 나는 그렇다고 하면서 사부님께서 너를 격려해주시는 거라고 했다. 또 더욱 단단하게 붙이는 것이라고 했다. 과연 반년이 지났는데 그 자료는 여전히 희미하게 보인다.

또 한번은 아들이 대낮에 자료를 붙이러 갔다. 흔히 내가 전동차를 타고 그가 내려서 붙인다. 우리는 천멸중공(天滅中共) 스티커를 공산당 정부의 벽에 붙이는데 마침 여러 사람이 둘러싸고 보았다. 본 후 몇 명은 약속이나 한 듯 아들을 보며 웃었다. 그것은 찬탄과 아울러 스티커 내용에 그들도 동의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이미 멀리 걸어갔는데 그들은 멀리서 아들을 향해 미소 지었다. 나는 아들을 격려했다. “잘했다. 중생들이 모두 너 때문에 기뻐할 거야.”

(3) 반 전체에 호신부를 나눠주다

아들이 초등학교 4년에 올라갈 때 내게 진지하게 말했다.

“엄마 소원이 하나 있어요. 우리 반 아이들을 전부 구도할래요.”

그는 많은 호신부를 가져가서 학우들에게 하나씩 나누어주었다. 전부 45명인데 한 사람만 가지려 하지 않아서 그에게 돌려주었다. 다른 반의 어느 학생이 보고는 “내게 줘!” 라고 했다.

남편이 다른 사람이 보면 안 되니 나누어주지 말라고 하자, 아들은 괜찮다면서 나쁜 사람은 보지 못하며 감히 움직이지 못한다고 했다. 사부님께서 날마다 자신을 따라다니며 보호하신다는 것이다. 때로 내가 나가서 홍법의 일을 할 때면 그는 나를 정념으로 가지해준다.

“엄마 두려워마세요. 사악은 보지 못해요.”

아이의 순진함에 어른이 부끄럽다. 그렇게 많은 사람의 마음을 남겨놓아 뭐에 쓰려고 하는가?

(4) 때려도 맞 받아치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다

아들은 필경 아이인지라 때로는 심성을 지키지 못한다. 누나와 큰소리로 화를 내거나 잘못된 말을 하면 아들은 곧 넘어지는데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면 곧 넘어지곤 한다. 그러면 아들은 일어난 후 말한다.

“사부님께서 나를 관여하시니 대법제자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해.”

그래서 다른 학우들과 다툼이 생길 때에도 기본적으로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다”를 해낸다. 어떤 사람이 왜 맞받아치지 않느냐고 묻자 아들은 “파룬궁을 수련하면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아무런 관념도 없이 대법을 실증한다.

2. 딸에 관한 이야기

(1) 네 살때 법을 얻어 엄마보다 빠르다

우리 딸은 1992년 6월 11일 출생했다. 출생 후 스스로 바로 몸을 뒤집을 수 있었다. 한달 후 어느 친척이 그녀를 보러왔는데 친척이 손을 내밀자 아이는 그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아이는 어려서부터 외할머니 집에서 자랐다. 외할머니가 대법제자이므로 날마다 그를 데리고 법공부 연공을 했다. 그래서 나보다 더 일찍 법을 얻었다. 네 살 때 연공구결, 홍음 등의 시를 욀 수 있었다. 다섯 살 때 새벽수련을 할 때 스스로 일찍 일어나 연공장에 가서 연공을 했다. 연공장에는 또 두 명의 어린이 제자가 있었는데 가부좌할 때 서로 비교하면서 연마했다.

한번은 내가 그녀를 데리고 동수집에 가서 사부님의 설법 비디오를 볼 때의 일이다. 아이가 졸아서 업고 돌아오자 아이가 깬 후 크게 울었다.

“왜 절 데리고 돌아왔어요. 나는 잠을 자면서도 설법을 들을 수 있단 말이에요.”

사람들의 홍법 연공을 따라하는 중에 20여 명의 어린이 제자들이 있다. 2장 동작 포륜을 할 때 우리 딸 한명만 끝까지 견지한다. 한편으로 미소 지으며 연마하는데 어느 노인 동수가 왜 웃느냐고 물으면 눈앞이 전부 연꽃과 파룬이라고 말했다.

(2) 신체 정화

사부님이 아이의 신체를 정화해주실 때 고열이 40몇 도에 달했으며 손발은 찼다. 나는 법을 막 얻었으므로 아직 좀 불안했으나 다음날 고열은 물러갔다. 아이가 태어날 때 두 손목, 두발목에 한바퀴 자국이 있었다. 친정어머니는

“이 아이는 전생에 감옥에 잡혀있었던 것 아니니? 손과 발에 족쇄와 수갑을 찼던 흔적이 있구나.”라고 말했다.

이번에 고열이 난 후 두 손발에의 파란 자국이 없어졌다. 이때부터 다시는 병원에 가지 않고 약이나 주사를 맞지 않았다.

(3) 공산당의 붉은 기를 내리다

3학년에 올라갔을 때 딸이 보기 좋고 목소리도 바르므로 선생은 강단에 올라가서 발언하고 중공의 붉은 기를 올리는 원고를 읽으라고 했다. 내용은 모두 공산당을 칭송하는 말이었다. 아이는 당시 ‘나는 대법제자다. 어찌 이런 것을 읽을 수 있는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교사는 집요하게 원고를 읽도록 요구했다. 아이가 막 강단에 올라가자 붉은 기가 떨어져 내렸다. 붉은 기를 올리는 원고도 읽을 필요가 없었다. 그 날 이후 다시는 이런 나쁜 일이 그녀에게 일어나지 않았다.

(4) 선념으로 복보를 얻다

딸이 중학교 1학년(13살) 때의 일이다. 어디선가 50대의 나쁜 남자가 나타나 말했다. “나를 따라가자.” 그녀는 별 생각 없이 “가면 가죠.” 성큼성큼 그를 따라 한참 걸어갔는데 마침 이웃집 할아버지가 보았다. 뭔가 이상해서 아이를 불러세워 어째서 집으로 가지 않느냐 엄마 아빠가 기다린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라, 내가 여기서 보고 있을께.

아이는 비로소 꿈에서 깬 듯 단번에 그 사람 손에서 벗어나 집으로 돌아왔다. 얼마 안되어 이 할아버지의 딸이 줄곧 직장이 없었는데 갑자기 연락이 되어 수입이 괜찮은 직장을 잡았다. 이 사람의 선념(善念)이 복으로 보답을 받은 것이다.

(5) 놀람은 있어도 위험은 없다

딸이 16살 고등학교 올라간 그해 점심시간 학교에 가는 길에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뒤에서 오토바이가 부딪혔다. 그녀는 길옆의 꽃밭에 넘어졌다. 오토바이를 탄 젊은 사람은 사람을 친 것이 두려워 얼른 도망을 쳐버렸다. 사실 사당이 만든 이 십악독세에 사람을 다치게 한 사람은 도망하는데 이런 나쁜 일은 날마다 볼 수 있다. 아이는 땅에 한나절 누워있다 겨우 일어났다. 집에 돌아와 보니 온 얼굴이 부었고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피를 닦았으나 붕대는 하지 않았다. 내가 대신 선생님에게 이야기 하고 사흘 동안 쉬었다. 그 후 학교에 갔는데 그때 상처는 3년이 안되어 다 없어져 매끈해졌다. 그녀는 그때 사부님의 보호가 없었더라면 죽거나 병신이 되었을 거라고 늘 말한다.

(6) 사부님께서 다시 시험 치를 기회를 주시다

고3 졸업 후 대학입시에 참가했는데 엄마 때문인지 적지 않은 과목의 성적이 떨어졌다. 그래서 시험 직전에 좀 열심히 하지 못했다. 나는 “너는 대법제자이니 사부님께서 돌보고 계신다. 반드시 시험을 잘 볼거야.”라고 격려해주었다.

이 해에는 특히 수학시험이 어려워서 성적이 많이 떨어졌는데 120점 만점에 최고점이 겨우 90점에 불과했다. 많은 학생들이 시험장에서 나온 후 망했다고 울었다. 우리 아이도 예외는 아니었다. 많은 문제를 풀지 못했고 빈자리를 남겼다. 사부님이 아니셨다면 기껏해야 몇점밖에 얻지 못했을 것이다.

돌아온 후 잠을 자기 전 딸은 사부님께 두 손으로 허스하며 말했다.

“사부님 제자가 수학시험을 잘못 보았습니다. 다시 한번 보고 공백을 메꿀 수 있도록 해주세요.”

과연 꿈에서 고사장으로 가서 시험을 보았다. 점수가 나왔는데 뜻밖에도 68점이었다. 그녀는 사부님의 보호하에 그토록 원하던 대학에 붙을 수 있었다.

(7) 시 한 수 《옛 고향을 방문하며》로 동수를 찾다

딸아이가 대학에 들어간 후 혼자 수련하려니 좀 우울했다. 동수들과 교류를 할 수 없어서 진보도 느렸다. 딸은 꼭 동수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한번은 대학생들이 말을 교환하는 흑판에 분필로 사부님의 《옛 고향을 방문하며》를 적어 놓았다. 그리고 마지막에 한구절 “다시 와서 중생을 제도하여 돌아가리라”를 적지 않았다.

또 뒷면에 짧은 메시지를 남겨놓았다.

“누구든 이 시의 결말을 아는 사람은 제게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제 전화번호는 ***입니다.”

과연 이튿날 같은 대학 2학년인 여학생으로부터 전화 연락이 왔다. 두 사람이 만나 대화를 나눠보니 바로 동수였다. 나중에 그 여동수가 딸에게 “넌 정말 총명하구나, 나는 1년을 찾아도 찾지 못했는데.”라고 말했다. 딸은 사부님께서 주신 지혜라고 말했다.

딸은 늘 진상화폐를 친구들에게 바꾸어준다. 그녀의 친구들은 동수들이 제작한 예쁜 진상화폐를 좋아하며 이런 돈을 보면 편안해진다고 한다.

발표시간: 2013년 4월 15일

정견문장: http://www.zhengjian.org/node/1180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