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꿈에서 깨달은 몇 가지

작자: 미국대법제자

【정견망】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느끼지도 못한다. 오성도 낮아 사부님이 점화해주셔도 깨닫지 못한다. 시간이 많이 지나서야 겨우 깨닫는데 이제 써내어 여러분에게 참고로 제공한다.

1. 빌딩옥상에 도착하니 발아래가 허공

박해 초기에 나는 감성적으로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았으며 사악의 요언을 결코 믿지 않고 책을 내주지 않았다. 하지만 안일심이 무거워 법공부를 적게 했고 연공도 하지 않았으며 나와서 법을 실증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수차례 꿈속에서 나는 매우 애를 써서 겨우 건물 꼭대기에 올라가거나 탑 위로 기어 올라갔는데 아래를 내려다보면 발아래가 텅빈 허공이었으며 아무것도 없어서 놀라 깨어났다. 그때는 마음에 두지 않았는데 자기는 절대 대법을 포기하지 않고 수련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수련 중에 점점 이런 꿈은 없어졌다.

몇 년이 지나 그것이 사부님의 점화였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즉, 단순히 대법이 좋다는 것을 믿기만 해선 안 되고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법공부와 진상을 잘하고 조사정법(助師正法)하라는 것이다. 건물 위로 올라간 것은 자비로운 사부님이 나의 대법에 대한 견정한 마음을 보시고 나를 구도하여 선천의 위치에 돌아가게 하신 것이고 발아래가 빈 것은 자기가 수련하려는 마음이 없고 법실증을 하려는 마음이 없음을 표명한 것이었다. 그래서 돌아가도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었다.

2. 꿈속에서 신발을 찾다

나는 박해가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순조롭게 해외로 왔다. 얼마 안 되어 몇 번 꿈속에서 신발을 찾았는데 어떤 때는 내가 찾으려는 그 신을 찾지 못했고 어떤 때는 한 짝만 찾고 나머지를 찾지 못해 계속 신짝을 찾아야 했다. 깨어난 후 이 꿈을 똑똑히 기억했는데 나는 보통은 꿈을 기억하지 못한다. 이것이 어쩐 일인지 깨닫지 못하고 속으로 추측했다. 신발(鞋)과 사(邪)는 동음이니 내가 잘못 가고 있단 말인가? 그러나 줄곧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세 가지 일을 했으며 사오하거나 멋대로 만들어 하지는 않았다. 비록 좀 안일하고 심성관을 지키지 못했지만 사로에 빠지지는 않았다. 계속 수련 중에 미국에 온지 4년 이상 지나서야 대법을 지지하는 속인이 운전을 가르쳐 주었고 나는 매우 빨리 배웠다. 일단 차가 생기자 내가 나가서 일을 할 수 있어 편리했다. 마침내 수련하지 않는 식구들이 내가 활동에 참가하는 일을 막는데서 벗어날 수 있었다.

어느 날 어느 속인과 이야기 할 때 내가 운전을 배운다는 이야기를 하자 그녀가 말했다.

“차가 있다는 것은 아주 중요해요. 차가 없으면 한걸음도 움직일 수 없으니 차는 신발과 같죠.”

나는 잘 알아듣지 못해 다시 물었다.

“뭐라고 했어요?”

그는 내 신발을 가리키며 말했다. “신, 신발 말이에요. 자동차는 신발과 같아서 그것을 신어야 멀리갈 수 있어요.”

당시 나는 진동했다. 마침내 꿈속에서 신을 찾았던 것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 알고보니 내가 운전을 배워야 정법 수련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을 점화한 것이었다. 자동차 운전을 배운 후 다시는 신발을 찾는 꿈을 꾸지 않았다.

3. 꿈에 맛있는 음식을 먹다

나는 점화에 대해 너무나 알지 못한다. 하지만 동수의 문장은 나에게 큰 도움이 된다. 그래서 자기의 깨달은 바를 써내어 상호간에 계발을 해야 한다고 느낀다. 한 동안 늘 꿈에서 음식이 잘 차려진 것을 보았는데 늘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거나 보통이 아닌 매우 고급스러운 음식이었다. 꿈속에서 매우 기뻤으나 먹으려 하면 곧 깨어나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었고 어떤 때는 깨어나서 매우 유감이었다.

내 기억에 나와 몇몇 동수들과 꿈속의 장면을 교류했는데 동수들도 깨닫지 못했다. 어떤 동수가 말했다; 그거 혹시 욕망이 너무 큰 것이 아닐까? 맛있는 것을 먹기 즐기기 때문인데 먹는 것이 욕망이 아닌가. 나는 여전히 깨닫지 못했다. 나는 자기의 당시의 상태를 알았는데 그리 욕망같지는 않았다. 내가 색욕이나 정에 집착한다면 왕왕 꿈에서 더러운 변소를 꿈을 꾸지 이런 맛있는 음식은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 정진하도록 촉진하기 위해 나는 법을 외우기 시작했고 아울러 법공부에 강도를 더했다. 법을 외울 때 아울러 갈수록 법공부를 중시할수록 어느 날 밍후이 문장을 읽었다. 대륙의 한 동수는 일하기를 좋아했으나 법공부는 중시하지 않고 일하는 것을 수련으로 여겼다. 꿈에서 사부님이 그녀를 점화하여 늘 배고프게 했다. 몇 번 꿈에서 책가방을 짊어졌는데 책가방에는 대개 수련을 잘한다는 따위의 말이 쓰여 있었다. 그러나 가방을 열어보면 오히려 밥이 들어있었다. 그녀는 마침내 깨달았다. 법공부는 밥 먹는 만큼 중요하다 전장에 나가기 전 밥을 먹지 않으면 배가 고파 어떻게 싸우는가?

나도 활짝 깨달았다. 맛있는 음식을 꿈꾼 것은 내가 법공부를 해야할 뿐 아니라 마음을 들여 정심하게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법공부의 중요성을 알지만 정심하게 공부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저 밥만 먹어서는 안 되고 잘 먹어야 하는 것이다. 내가 법을 외울 수 있고 더욱 큰 강도로 공부를 많이 한 이후 이 맛있는 음식의 꿈은 더 나타나지 않았다.

4. 더러운 변소는 칠정육욕에 대한 집착을 경고

이것은 모든 동수들이 알 것이다. 더러운 변소 는 더러운 사람 중의 각종 욕망과 집착심을 나타낸다. 늘 꿈에서 더러운 변소를 보는 것은 이미 사부님의 점화가 아니라 경고이다. 내가 조금 정진하여 세 가지 일을 잘하자 이런 꿈이 더 나타나지 않았다. 때로는 꿈에서 깨끗한 화장실을 보는데 깨어나는 후에 자기를 일깨운다. 또 변소를 꾸었구나. 빨리 집착을 버려야지.

5. 관상으로 미래를 예측하다

나는 현재 고인(高人)들이 관상이 근거하여 미래를 추측하는 일을 믿는다. 나도 두 번 겪었는데 모두 비참한 일이었다. 하나는 내 자신에게 일어났고 하나는 동료에게 있었다.

수련 전 나는 현대과학의 교육에서 운명을 보는 것은 미신이라고 여겼다. 수련 후 사부님은 법에서 명확히 말씀하셨다. 운명 보는 등에 집착하지 말라고. 나는 자연히 여태껏 운명을 본적이 없고 배운 적도 없으며 주위에도 관상이나 운명에 정통한 친구도 없었다.

그러나 오히려 관상으로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을 경험했다. 부모님이 미국에 보러오셨을 때 아주 좋은 시절이었다. 부친은 60세가 넘었지만 매우 젊어 보이며 모친은 대법을 수련하니 신체가 건강하다. 부친이 막 퇴직했으나 직장에서 계속 출근하라고 불러 돈을 많이 벌었다. 모친은 안일을 비교적 집착하여 수련에 정진하지 못했다.

부모님이 오신 지 몇 주가 지나 나는 거울에 비춰보니 내 코가 비뚤어졌음을 발견했다. 정말이었다. 내 콧등이 매우 심하게 비뚤어 졌으며 좌측으로 편향되어 있었다. 나는 매우 놀랐다. 거울에 내 얼굴을 비춘지 30년이 되었는데 하루에도 몇 번씩 보았으니 코가 비뚤어진 적이 없었다. 나는 고민했다. 최근에 코를 다친 적이 없으며 풍에 걸린 적도 없고 나이가 겨우 33세인데 코가 어째서 하루 밤 사이에 비뚤어지는가?

이상한 것은 내 코가 비뚤어진 것을 나 이외에는 아무도 주의하지 않았다. 부모님께 이야기했더니 모친은 놀라며 말했다. “네 코가 비뚤어진지 몰랐구나. 어쩜 이렇게 심하니?”

내가 말했다. “최근에 비뚤어진 거예요.”

그러자 부친이 농담으로 말했다.

“얘야, 딸의 코가 왼쪽으로 비뚤어지면 부친이 죽는다는 말이 있는데 내가 죽는단 말이다. 민간이 이런 설이 있단다.” 나와 어머니는 전혀 믿지 않고 아버지도 농담으로 했을 뿐이다.

부모님은 한달 후 곧 귀국했다. 귀국한 다음날 어머니는 불법으로 체포되었고 아버지는 슬프고 두려움에 두달 반도 안 되어 세상을 떠났다. 나의 코는 영문 모르게 정상을 회복했는데 이 비극이 있은지 몇 년이 지나도 내 코는 아직 똑바르다. 몇 년이 지나 내가 갑자기 이 일이 생각났는데 내 코가 비뚤어진 것이 정말 부친이 돌아가실 징조였음을 발견했다.

또 한 가지는 학교 동료의 일이다. 나는 한동안 중국어학교에 파트타임으로 출근한 적이 있다. 어느 날 새 교사가 왔는데 대만인이었고 유행을 따라 치장을 많이 했다. 교장이 소개해주었는데 이 새 교사를 보자마자 좀 이상하게 느꼈다. 왜 그녀는 늘 얼굴이 괴로울까? 처음 만난 그녀는 너무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는데 매우 고생스러운 듯 했다. 설마 즐겁지 않은가? 이야기 하던 중 나는 그녀는 무슨 기분 나쁜 일이 없이 기분이 매우 좋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의 남편은 고급 기술회사의 높은 직책을 맡고 있으며 가정이 부유했다. 내게 옷을 좀 주었는데 모두 명품이었다.

가지려 하지 않았으나 너무 비싼 것이라 버릴 수도 없어 동료친구에게 주었다. 그녀가 이 직장에 출근하는 것은 집에서 한가하여 할 일이 없어 한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어쩐지 늘 그녀가 매우 수심이 있는 것을 느꼈고 내가 그녀와 이야기 할 때면 늘 웃으며 그녀가 즐겁기를 희망했으며 마음속에 괴로운 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점점 나는 그녀가 설사 즐겁게 웃으며 이야기 하지만 이마에는 형용할 수 없는 고민이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나는 운명을 점칠 줄 모르고 관상도 모르므로 마음에 두지 않았다.

반년 쯤 지나 돌연 교장선생님이 사람들에게 그녀의 수업을 대신 하라고 알려주었다. 그녀 남편이 교통사고가 나서 입원했으므로 그녀가 간호해야했다. 일주일이 지나 우리는 슬픈 소식을 들었다. 그녀의 남편이 차에 부딪힌 후 다시 깨어나지 못하고 3일 후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18살, 15살 된 두 아이를 남겨놓았다.

그녀를 다시 보았을 때 그녀는 매우 슬퍼했다. 20년을 함께했던 남편이 사망했으니 그 반년간 그녀의 얼굴에 나타난 것은 바로 집에 큰 사고가 날 것을 나타낸 것이었다.

이 일을 거쳐 나는 옛사람이 말한 관상이 절대 진실한 것임을 믿게 되었다. 하지만 대법과 비해 이런 것은 소능소술이니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대법제자가 진상으로 사람구하는 중요성을 보았다. 만일 정념이 매우 강했다면 정념과 선의로 모친에게 그렇게 정과 안일에 집착하지 말라고 지적해주며 해외에 남아 법을 실증하라고 했으면 붙잡히지 않았을 것이고 아버지도 아마 세상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부친은 모친이 체포된 후 모친을 급히 구해내려고 하다가 대법을 비방하는 나쁜 말을 많이 했다. 사실은 듣기에 모친이 막 출국했을 때 어떤 사람이 모친이 아직 대법을 수련한다고 고발하여 돌아오면 체포하기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나와 모친은 당시 요행심리를 품고 돌아가도 아무 일 없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나의 동료와 남편은 대만에서 왔기에 무슨 독해도 받지 않았고 다만 건성으로 진상을 말했을 뿐이다. 만일 내가 자세히 파룬궁의 아름다움과 대륙에서 박해받는 것을 진일보로 말하여 그들이 대법을 지지하도록 했다면 아마 그들이 복을 받아 화를 피했을지도 모른다. 대륙에서 많은 사람들이 진상 호신부를 패용하여 죽음을 벗어난 예가 있지 않은가?

발표시간: 2013년 1월 3일

정견문장: http://www.zhengjian.org/node/1150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