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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 경험: 천사와 마귀

작자: 대륙대법제자 설안(雪雁)

【정견망】

나는 노제자로 수련한 지 이미 15년이 되었다. 나는 전에 대학 부교수를 지냈고 출판한 책과 논문 역시 적지 않다. 그러나 수련의 이야기를 투고 하려고 하니 마음이 오히려 안절부절하다. 원인은 아주 간단한데 수련과 강의, 연구는 전혀 다르며 수련인으로서 나는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이다.

나는 내심으로 대법을 좋아했지만 10여 년간 진정으로 수련하지 않았으며 대법을 보통 기공으로 여겼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사실 그것을 기공이라고 하지 않는데, 무엇이라고 하는가? ‘수련(修煉)’이라고 하는데, 바로 수련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어떤 이유에선지 나는 아주 오랜 동안 이 말씀을 중시하지 않았고 병이 있으면 연마하고 병이 나으면 멈췄다. 2007년에 이르러 아마 사부님은 내가 너무 뒤떨어진 것을 어린이의 입을 빌어 나를 일깨우셨고 그 때 이후 나는 비로소 진지하게 수련을 시작했다.

십여 년의 시간을 짧다고 할 수는 없으며 겪은 일이 많다. 지금 나는 사부님과 동수들에게 자기의 수련 과정을 보고 드리려 한다.

1. 나의 작은 천사들

나는 종래 날개 달린 천사를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생활 중에 내게 놀람이나 행운을 가져다주는 사람은 적지 않아 나는 뜻밖에 기쁜 일을 만나는 경우가 있는데 그들을 ‘천사’라고 부른다. 나는 이 어린 천사들을 잊을 수 없다.

(1) 천사의 미소

2012년 2월 어느 날 저녁. 나의 한 돌이 되는 쌍둥이 손녀가 그날의 마지막 우유를 마실 때였다. 몇모금 마신 후 우유병을 내던졌다. 며느리는 낭비하지 않으려고 우유병을 주워 또 먹이려고 했으나 아이는 아무리 해도 먹으려 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정토법문을 수련하는 며느리가 말했다. “아미타불, 한모금만 마시렴!” 아이는 입을 피했다.

나는 옆에서 아무 생각도 없이 우유병을 들고 말했다. “파룬따파하오! 쩐싼런 하오! 한모금 마시렴!” 그러자 아이는 꿀꺽 꿀꺽 하며 두 모금을 마셨다. 그때 남편이 갑자기 또 우유병을 들더니 말했다: “XXX 만세! 한 모금 마셔라!” 그러자 아이는 병을 바닥에 던졌다. 좀 난처해진 그는 우유병을 들고 다른 아이에게 주었으나 아니는 “팍”하며 더욱 큰 힘으로 병을 멀리 던져버렸다. 우리는 모두 웃었으나 의미가 있는 결과였다.

또 금년 1월 아니면 2월, 두 아이들이 아침저녁 울고불고 하는 일이 수시로 있었다. 또 어떤 때는 크게 울며 그치지 않아 아무리 달래도 소용이 없었다. 아들 며느리는 이러면 염불을 외우기도 했으나 별 소용없었다. 내 방법은 바로 9자 진언(眞言)을 외우는 것이었다. 한번은 나는 크게 울며 그치지 않는 아이를 데리고 또 진언을 외웠다. 갑자기 침대에서 엎드려 울고 있던 아이가 갑자기 머리를 들더니 나를 향해 빙긋 웃었다. 잠시 후 또 머리를 들고 웃었다. 세 번이나 그러했다. 그 미소의 의미는 심장하지 않은가? 아이가 알아들었다는 말인가?

십여 년간 전 나는 연공을 일년 정도 했을 때 어느 날 우리 부부가 어느 학생의 집에 갔다. 학생은 그의 세 살짜리 아이에게 말했다. “이 분들은 아빠 엄마의 선생님이셔, 선생님, 안녕하고 인사드려야지!” 그러자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더니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은 부처님(佛祖)께서 보우해주세요!” 나는 혼비백산했다. 학생 부부는 모두 정부 기관에서 일하며 그들의 환경에 조금도 종교나 수련 등 전통문화와 관련된 소식이 있을 수 없다. 이런 말이 어디서 왔는지 시종 수수께끼였다.

(2) 어린 천사의 점화

이 사건은 더욱 기이하며 더욱 떨린다. 아이의 두 마디 말이 천년의 인연을 파헤쳤다.

2007년 6월 나는 컴퓨터 고장으로 인해 동수를 불러 좀 봐달라고 했다. 동수는 거의 60세 된 여성인데 젊은 사람을 데리고 왔다. 외손녀는 당시 두 돌이 막 지났는데 소파에서 누워 놀고 있었다. 갑자기 아이가 소파의 검은색 가죽 핸드백을 보고 말했다. “당신 … 당신 … 가방 속에 아미타불이 있어요?” 이 말을 듣고 나는 깜짝 놀랐다. 말도 잘 못하는 2살짜리 아이가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지? 앞에서 언급한 아이처럼 우리 손자도 불교문화에 관해 보거나 들을 기회가 없었다.

나는 아이에게 우리 수련에 관한 일을 말해준 적이 없다. 이때 문득 동수가 멍하게 보더니 즉시 말했다. “있지! 있어!” 나는 속으로 말했다. 당신은 어린이를 속이는 것이지 어디에 아미타불이 있어? 문득 동수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더니 신속하게 열어 한 장의 사진을 아이에게 보여주었다. 내가 보니 사부님 사진이었다.

아이는 매우 진지하게 보고는 단추를 눌러 또 한 장의 사진을 보고는 말했다. “집이 너무 예뻐요!” 내가 보니 (티벳의) 포탈라 궁이었다. 어떻게 이런 사진이 있을까 생각하는데 아이가 또 하는 말을 들었다. “여기가 할머니 집이예요?” 동수는 격동되어 연신 말했다 “그래! 그래” 이어서 또 내게 말했다. “이것이 당신 집이예요?” 나는 놀라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놀라서 말이 나오지 않았는데 동수는 연신 그렇다고 했다.

무엇 때문이 이 몇마디 말이 이렇게 강렬한 충격을 주는가? 사정은 이러했다. 나는 한 때 정견망에서 다른 수련생의 시를 본적이 있다.

하나는 ‘송찬간포(고대 티벳의 왕- 당태종 시기)’, 또 하나는 ‘포탈라 궁’이었다.

포탈라 궁의 마지막 단락은 다음과 같았다.

“신비한 포탈라, 하얀 담에 금기와가 비치네
천백년 윤회의 일, 한 때 오색찬란 휘황한 우리 집이었네”

당시 나는 윤회를 믿지 않았기에 동수가 정에 들어 본 것을 믿지 않았고 상상이라고 생각했다. 이 순간 두 살 된 손녀가 한 앳된 두 마디는 번갯불처럼 나를 맹렬하게 깨웠다. 알고 보니 동수가 본 것이 모두 진실이었구나! 그녀는 자기가 전생에 티벳 왕 송찬간포(617?—650)임을 본 것이었다. 알고 보니 윤회는 정말이었다! 내 주변이 일어난 일들이 또렷하게 이것이 진실임을 알려주었다! 아이의 천목이 열려 있었기 때문에 본 것이었다.

너무나 강렬한 충격에 나는 마치 꿈을 꾼 것처럼 거의 한 달간 황홀했다. 바로 이 순간 내가 지난 일을 기술할 때 비로소 똑똑히 의식하게 되었는데 무신론은 이처럼 뿌리 깊었다. 우리의 문화 사상의 각 방면에 깊이 침투하여 우리 영혼의 깊은 곳에 미치고 있었던 것이다. 윤회를 믿지 않기 때문에 귀신이나 신, 부처 등을 믿지 않고 예부터 내려오는 전통문화를 몽땅 “미신”이라는 방망이로 없애버렸던 것이다! 이것이 내가 십여 년간 진정으로 수련에 걸어 들어오지 못한 원인이었다. 역시 지금 많은 속인들이 구도를 얻는데 장애가 되었으니 정말 사람을 해침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해 8월 나는 돌연 청해(青海)로 가고 싶었다. 나를 맞이한 사람은 30년 전 나의 학생이었다. 여행 도중 차 속에서 “청장고원,” “천로”등의 음악소리가 울려퍼졌는데 이는 평소에 백번 들어도 싫지 않은 음악이었다. 그러나 그날은 웬일인지 모두 나를 슬픔에 잠기게 했다. 자동차가 산꼭대기에 이르자 차가 막혀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래서 차에서 내렸는데 억제하지 못하고 울기 시작했다. 나는 이때 결코 여기가 문성공주가 티벳에 들어갈 때 머물렀던 일월산임을 알지 못했다. 우리는 차 흐름을 따라 하산하기 전 흐르는 눈물을 감추기 위해 선글라스를 끼고 사진을 몇장 찍었다. 고원의 금황색의 유채꽃, 울창한 남색의 청해호수는 모두 나의 영문 모를 슬픔을 불러 일으켰으며 본래 마땅히 있어야 할 그렇게 오랜 세월 헤어져 있던 스승과 제자의 만남과 성지 여행의 즐거움을 종적도 없이 씻어버렸다. 이 수수께끼는 돌아와 동수를 만난 다음에야 해결되었다.

나중에 동수가 정견망에 발표한 시 “문성공주”를 보고 감개가 무량했다. 바로 이 동수가 나를 대법으로 들어오도록 이끌었으며 십년을 기울여 무사무아하게 전력으로 도왔으며 그리 그만한 친구인 나를 단단히 이끌었는데 알고 보니 우리의 연분은 이미 천 년 전에 맺은 것이었다.

외손녀의 말이 나를 일깨웠고 나는 그것은 사부님이 아이의 입을 빌어 나를 점화하신 것임을 믿는다. 그때 이후 나는 외손녀에게 “어린 천사”라는 이름을 붙였다.

2. ‘악마’를 만나다

수련 과정은 정말 신체에서 영혼까지 온갖 것을 다 단련하는 과정이다. 환골탈태하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금후 연공(煉功) 중에 당신은 각양각색의 마난(魔難)과 마주칠 것이다. 이런 마난이 없이 당신이 어떻게 수련하겠는가?”

“왜 이런 문제와 마주치는가? 모두 당신 자신이 빚진 업력이 조성한 것으로서, 우리는 이미 당신에게서 무수하고도 무수한 몫을 없애주었다. 다만 얼마 남지 않은 약간의 것을 각개 층차 중에 나누어 놓았는데, 당신의 心性(씬씽) 제고를 위해 사람의 마음을 연마(魔煉)하고, 각종 집착심을 버리도록 설치한 일부 마난(魔難)이다.”(<전법륜>)

현재 내가 걸어온 수련의 길을 회고해보면 사부님의 말씀이 절대 확실한 것을 알게 된다. 나는 이 과정 중에 각종 “마난”을 만났는데 정말 마음이 놀라고 혼이 움직였으며 뼈를 깎는 아픔이었다.

1) 집에 빚을 받으러 온 귀신

몇 년 전 나의 친정에서 흔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매우 친한 사람이 송사를 일으켰는데 바로 84세의 숙부가 나의 70대 오빠를 고소한 것이다. 나는 이 소식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어쩌면 숙부님이 미치신 게 아닐까? 치매일까? 2010년 1월 16일 제 3차 법정이 열렸고 오빠는 작년에 소환장을 받은 상태였다. 본래 당뇨, 고혈압 등의 질병이 있던 오빠는 새해분위기를 망칠까 봐 재판 하루 전에야 부득이 내게 알린 것이다. 처장급 고위 간부를 지낸 오빠는 전화에서 큰 소리로 울었다.

원래 화목했던 식구들 사이에 돈 때문에 반목하는 일은 오늘날 많이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소송 쌍방의 나이가 너무 많고 또 피부양인이 자신을 오십년간 부양했던 사람을 고소한 것이었다. 게다가 숙부는 홀홀단신에 매월 수입이 4천위안이 넘어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돈을 버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돈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숙부는 이전에 이미 방금 구매했던 70여 평방미터의 새집을 자신보다 40살 이상 젊은 여자에게 등기 이전해주었다. 그녀는 20년 전에 우리 촌에서 일했던 사람이었다. 현재 그녀는 자기 남편과 자식들이 있으며 약 10년 전 자동차 사고로 불구가 되었다.

나는 오빠 때문에 가슴이 아팠고 또 우리 촌에서 칭송이 자자했던 우리 집이 이같이 체면을 구긴 일을 감당할 수 없었다. 집은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 있는 곳이며 집을 떠난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고향의 초목 하나하나가 모두 나의 꿈속에서도 맴돌았다. 오늘은 순식간에 고향과 집이 없어져 버렸고 근본이 없어져 어느 때 생각해도 내심 은은히 아파왔다.

비록 법리상으로는 내가 내려놓아야 할 정임을 알았지만 끊지 못했고 소극적으로 대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속인의 일로서 나는 덜 참여해야 한다. 게다가 어쩌면 전생의 원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뿌리칠 수 없는 우울은 늘 감돌았다. 어느 우연한 기회에 나는 명나라 방효유의 일을 들었다. 그래서 문득 우리집의 이 소송의 실마리를 깨쳤다.

“만약 元神(왠선)이 불멸한다면, 그는 아마 그의 전생에 사회 활동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전생의 활동 중에서 아마 누구에게 빚을 졌거나, 누구를 괴롭혔거나, 또는 기타 좋지 못한 일들을 했거나, 살생 등등을 했을 것인즉, 그렇다면 곧 이런 업력을 조성하게 된다. 이런 것들, 그것은 다른 공간에서 아래로 쌓여 항상 따라다니는데, 백색물질 역시 마찬가지로서, 이런 내원(來源)에 그치지 않는다.”(<전법륜>)

조부님은 일찍이 우유와 관련된 생산품을 만드는 작은 회사를 경영했다. 할머니 말에 의하면 할아버지는 장사를 시작하자 손해를 보았는데 그는 장사할 줄 모르기 때문이었고 할머니는 그가 장사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이것은 덕을 잃는 장사라고 하셨다. 어미 소는 송아지를 낳아야 우유가 나오는데 우유를 팔기 위해서는 송아지를 먹일 수 없어 송아지를 도축장에 팔아야 했다. 송아지는 가지 않으려 했고 어미 소는 눈물을 흘렸다. 나는 도축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는데 나중에 보니 송아지를 죽여 고기를 파는 곳이었다.

숙부는 넷째 아들인데 어렸을 때 서당에서 글을 배웠다. 스승은 그에게 “우둔한 송아지”라고 이름 붙였다. 그의 일생을 총평하면 하나도 성공한 일이 없었다. 그는 군인이 되었다가 나중에 전업하여 몇 년이 농촌 소학교 선생이 되었는데 60년도에 실직해 농민이 되었다. 그는 몸이 아주 좋은데도 평생 자기 힘으로 생활하지 못하고 촌에서 일하여 번 돈으로는 식량대금 바치기도 힘들었다. 80이 넘어서도 조카, 질녀들이 돈을 모아 그의 생활비를 댔다. 몇 년 전 고향에서 집을 옮겨 짓게 되어 그는 새로 산 아파트로 들어왔고 5자리의 저축이 있어 본래 분수를 모르는 그는 잠을 못 이루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우주 중에는 한 가지 이치가 있는데, 어떤 이치인가? 바로 우리가 말하는 선악윤보(善惡輪報)로서 당신이 어떤 나쁜 일을 하든지 당신이 모두 갚아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일에는 착한 연(緣)을 맺게 되고 악한 일에는 악한 연(緣)을 맺는데 목적은 매듭짓기 위해서다.”(<무엇이 대법제자인가>)

방효유의 경우는 뱀의 왕이 전생하여 원수를 갚으려고 하지만 우리 숙부는 현재 보기에 송아지가 전생하여 속설에 말하는 “집안을 망치는 아들”이었다. 우리 조부의 자손 삼대는 그를 돌보아 주고 그가 보통 사람보다 더 나은 생활을 하도록 해주었는데 마침내는 자손들이 설 곳이 없게 되었고 그의 집을 폭삭 망하게 했다.

숙부의 역할은 집안을 망치게 하는 ‘가마(家魔)’였으나 그의 일생은 조금도 행복함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식구들 친척들도 예외 없이 그를 싫어하여 그는 고독했다. 일생 8개월간의 불행한 결혼 생활이 있었을 뿐이며 나중에 좋은 자리에 오를 생각만 했지 어려운 일은 하려하지 않아 평생 외로웠다. 그는 자신을 잘못이 없다고 느꼈으나 한 가지 일도 이루지 못하고 스스로 고고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마음속에 불만이 있었는데 나이가 거의 90이 되어 허리도 곧게 펼 수 없었으나 자전거를 타면 의기양양했다. 오늘 그의 미친 속내는 여전히 멈추지 않았고 온데 분주히 돌아다니며 5만 위안이나 들여 변호사를 불렀다고 큰소리치며 반드시 오빠를 이기겠다고 했다. 그는 남은 날이 많지 않은데 본래 편안히 만년을 보내야 했으나 원한의 마성에 조종당해 잠시도 편안한 날을 보내지 못하니 그는 불쌍하고 가증스럽다. 우리는 그를 일생 선하게 대했는데 그는 오로지 우리에게 번뇌만 가져다주었다. 오랜 동안 그를 우리 집안 사람이라고 하기보다는 우리 매 사람 마음속의 가시라고 하는 것이 나았다.

나는 깨달은 바를 친구에게 말해주었다. 모든 사람이 침묵에 빠졌다. 우리의 내심은 매우 무거웠는데 할아버지 할머니는 당시 촌에서 매우 존경받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이미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 우리는 어찌 이런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조상의 살생의 직업을 선택하면 자손에게 재앙이 미친다. 이미 60년 간 잠들어 있는 할머니는 반드시 그가 아끼는 손자가 이렇게 큰 상해를 입을 것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현재 의기충천하던 우리집 식구들이 어쩔 수 없이 이미 이 업을 받아 고향을 잃은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2) 미친 듯한 ‘병마’

97년 나는 우연히 대법 수련에 들어섰는데 당시 가족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였다. “파룬궁을 연공하면 병이 나도 두렵지 않다”라는 것이었다. 나는 결코 이것이 바로 내가 버려야 할 근본 집착임을 알지 못했다. 마침내 2010년 9월 명치에 통증이 완화되지 않아 가족들에 의해 응급실로 실려가 중환자실로 입원했다. 비록 나는 발병 후 세시간 만에 아프지 않았지만 사태가 보통을 넘고 엄중해짐을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간호사들과 담소를 나눌 때 딸은 “병이 위급함”이라는 통지를 받고 울고 있는 줄을 알지 못했다. 나는 죽상동맥경화, 심근경색 당뇨병 등의 이름이 덮어 쓰인 줄을 모르고 있었다. 며칠 후 심장전문 병원으로 옮겨 갔을 때 2차 중병 통지를 받았고 2번 수술했으며 6개의 지지대가 있어야 했다.

나는 그때 시절을 정말 기억하고 싶지 않다. 노제자로서 법리상 말하면 문제는 반드시 자신의 신상에 있었다. 대법제자의 표준에 따라 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사나운가 알지 못했다. 나는 내가 정말 병이 있는지 증세가 정말 그렇게 심했는지 의심하기도 했다. 왜냐하면 그리 아프다는 느낌이 없었으며 다만 병을 고치는 일이 견디기 힘들었을 뿐이다. 병이 위중한 사람의 일급 간호로서 나는 수액을 맞아야 했고 심장 모니터링, 당뇨 재는 기기, 산소통을 침대에 단단히 고정하여 매일 7차례 피를 채취하여 혈당을 재는 등등 끝이 없었다. 이런 것을 제외하고도 나는 끊임없이 바뀌는 의사를 대해야 했으며 끊임없이 오가는 친척친구들에게 또 한번씩 병 증상을 반복해야 하는 화제들이 있었다.

전체적으로 주위의 일체는 나를 초조 불안하게 만들었고 법공부 발정념도 착실히 할 수 없었다. 신체가 괴롭고 마음은 더욱 불편하고 자기의 이 모양을 생각하면 어떻게 나의 연공을 반대하거나 지지해주던 사람들을 대하는가? 특히 나는 사부님에 미안했다.

퇴원 후 식구의 특별한 돌봄 하에 나는 주사 맞고 약을 먹으면서도 자기는 대법제자라고 느꼈고 마땅히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하여 매우 괴로웠다. 이 때문에 사부님의 관련된 설법을 뒤적여 보았다.

“사람과 신의 일념(一念)이라. 당신이 움직인 것이 정념이라면, 당신은 이 모든 것이 가상(假相)이고 구세력의 교란이라고 하며, 내가 이처럼 여러 해 수련했는데, 이 정황이 나타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당신이 정말로 내심에서 우러나온 일념이라면, 즉시 아무 것도 없다.”(<2010년 뉴욕법회설법>)

나는 이미 한번 기회를 놓쳤음을 인식하고 현재 반드시 무조건적으로 사부님의 말에 따라서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수술한지 한 해되는 그날 나는 식구들의 눈을 피해 일체 약을 끊었다.

대략 보름 후 내가 몰래 약을 끊은 것이 들켜 식구들 집에서는 즉시 큰 파문이 일어났다. 딸은 큰 소리로 울며 물었다. 어머니는 우리를 놀라게 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우리를 이미 많이 괴롭히지 않았어요?” 남편은 거의 미치다시피 했다. 고급 지식분자인 그는 크게 소리 질렀다. “이런 일은 그냥 지낼 수가 없어.” 우리는 원래 일주일 후 미국으로 가려고 했는데 비자와 티켓은 이미 다 준비해놓았는데 그는 소리쳤다. 안가! 나는 국면이 이렇게 심하게 된 것을 보고 두렵고 괴로워 눈물만 흘렸다. 남편은 또 지독하게 말했다. “그녀는 말하지 않지만 속으로 자기 사부에게 용서를 청하고 있어! 어떻게 해야 하면 반드시 그렇게 할거야! 고치지 않을 것이야!” 나는 매우 이상했다. 그가 어떻게 이렇게 맞는 말을 할까?

나는 그들의 나에 대한 관심과 걱정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떻게 해도 그들을 안심시키고 대법의 요구에 따라 할 수 있을까? 한참 침묵한 후 나는 제의했다: 내일 혈당을 재서 표준을 초과하면 인슐린을 맞고 만약 정상이면 그럼 계속 약을 먹지 않을께. 다음 날 나는 마음속으로 두근거려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저는 다시는 당신과 대법에 먹칠을 할 수 없으며 속인이 대법에 대한 바른 믿음을 영향 줄 수 없으며 사부님께서 그들을 구도하는데 영향을 주지 않겠습니다. 사부님 도와주십시오.” 그 결과 숫자가 나왔는데 5.5 였다. 혈당기기를 내려놓고 가져가 남편에게 보여주었더니 그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이미 참지 못해 눈에 눈물이 가득 찼으며 또 속으로 사부님께 감사합니다!를 연발했다.

나는 식구들을 피해 사부님의 사진을 향해 대성통곡을 했다. 내가 인슐린을 주사 맞는 그 일년 검사도 일백차례 이상이나 했는데 이런 숫자는 없었다. 그때 이것도 먹지 못하고 저것도 마시지도 못했지만 당뇨는 늘 높았다. 약을 끊은 지 4개월 후 딸은 또 나에게 검사를 하자고 했더니 6.1이었고 2개월이 지나 또 검사했더니 5.9 였다. 이런 숫자는 약물로 조정해서는 얻을 수 없는 숫자였다. 남편은 작년에 검사에 당뇨병이 나왔는데 딸은 며칠 전 그에게 말했다: “아버지도 엄마 따라 연공해보세요, 엄마가 얼마나 좋아졌는지!”

나의 심장병에 대해 의사들은 말했다. “당신은 회복이 그저 좋은 것이 아니라 매우 좋습니다!” 퇴원 후 나는 또 일상의 일체를 회복하여 연공, 법공부, 출근, 시장 다니고 국내외 여행을 다닌다.

일은 비록 지나갔지만 이 교훈은 너무 심각하여 댓가도 너무나 컸다. “병마”는 나로 하여금 대법과 사부님께 먹칠을 하게 했고 부면적인 영향을 주었다. 노제자로서 무엇 때문에 관건시각에 신의 생각이 아닌 사람의 생각이 우위를 점하는가? 무엇 때문에 정념으로 작용을 발휘하지 못하는가? 평소에 정진하지 못하는데 무엇 때문에 늘 정진하지 못하는가? 나는 많은 곳이 내가 수련인 같지 않으며 말하자면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다. 법공부 적게하고 연공을 견지하지 않으며 아픔을 두려워하여 지금까지도 결가부좌를 못한다. 2007년 이래 억지로 가부좌 했는데 모두 끈으로 묶어서 했으며 십여년간 입정入靜이나 정에 들지入定 못했다. 가부좌 하면 온갖 묵은 사소한 일들이 다 튀어나온다. 속인의 명리정 아무것도 내려놓지 못하고 많은 경우 속인보다도 못하다. 특히 내심 깊은 곳에 무거운 짐이 있다. 결혼 후 몇하례 유산 수술을 했는데 살생의 업이 너무나 크다. 이런 사람을 사부님이 관리하실까? 그래서 늘 신심이 없었고 평소에 자기는 “중사(中士)”라고 생각했다.

3) ‘마녀’의 발광

그것은 내가 연공을 개시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인데 갑자기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다년간 같이 잘 살아오던 남편이 바람이 난 것 같았다. 나와 남편은 대학 동창으로 결혼한 지 거의 30년이 다 되었으며 사이가 매우 좋았다. 남편은 대학교수로 기술 지도를 진행하며 전국을 뛰어 다닌다. 그의 명성을 흠모하여 자문이나 합작을 하자고 하는 사람이 많다. 그중에 여자 기업가도 적지 않아 나는 좀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걱정하던 일이 사실이 된 것이었다. 나는 렌터카, 차표, 휴대폰 번호 등으로 남편과 따졌으며 남편은 나에게 무리하게 떠든다고 했고 다툼을 밥 먹듯 했다.

충돌이 끊임없이 심해짐에 따라 그 여자 쪽에서도 굳이 끼어들어 끊임없이 우리를 교란했고 마침내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녀는 내 사무실로 쳐들어와 한바탕 난리를 쳤다. “나는 모 교수(내 남편)을 사랑하니 그와 결혼할 거예요….”

나를 더욱 화나게 한 것은 그녀가 끊임없이 집에 전화를 걸어 남편을 찾은 것이다. 만약 내가 그가 없다고 하면 그녀는 “헛소리! 그는 집에 있어요!” 때로는 내가 그녀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으며 기술에 관련된 문제면 내가 대답해 줄 수 있다고 하면 그녀는 오히려 “난 당신을 찾는게 아니라 그를 찾는 거예요!” 했다. 교란을 피하기 위해 나는 전화를 내려놓기도 했으나 아무리 오래있더라도 전화를 놓기만 하면 곧 소리가 울렸다. 그건 반드시 그녀였다. 아이구, 이 무뢰한 때문에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남편에 대해 정이 깊은 나는 이런 타격을 감당할 수 없었다. 나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울기만 했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자 나의 신체는 망가졌고 체중이 5kg이상 빠져 출근할 수도 없었다.

나는 정말 살아갈 수 없다고 느끼며 견딜 수 없었을 때 어느 날 정황은 갑자기 급전직하했다.

사정은 이랬다. 그날 남편이 나 대신에 수업에 들어가 10시 수업을 끝낼 시간에 되어 남편이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침상에 누워 그 여자가 우리 학교에 와서 길을 막고 있지 않을까 하여 마음이 쿵쾅거려 누워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입구로 나가 남편이 오는 방향으로 두리번거렸다. 갑자기 이상한 느낌이 들어 나도 모르게 다른 방향으로 보았더니 그 여인이 남쪽에서 북쪽을 향해 바로 우리집 주택이 있는 건물로 걸어오는데 거리가 수십 미터였다. 바로 이때 남편도 동쪽에서 서쪽 집 쪽으로 걷고 있었고 거리는 7,80미터였다. 나는 이미 남편에게 집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통지할 방법이 없었고 그저 본능적으로 그 여인이 우리집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았다. 이때 남편도 입구에 도착했다.

이때 교수들이 수업에 들고 나는 시간이기 때문에 남편은 난처함을 피하기 위해 나를 끌도 집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내가 문으로 들어갈 때 그 여인은 신발을 문틈에 밀어넣어 억지로 우리집에 들어왔다. 그 후 자리에 앉아 물을 마시면서 나를 가리키며 욕을 하고 남편의 면전에서 “나는 저 이를 사랑하니 결혼할 거예요!”라고 말했다. 남편이 옆에 앉아 몇 차례 저지했으나 그녀는 사납게 야단쳤다. “말하지 마세요!” 나는 그녀가 이지를 잃은 것을 보고 어디 여자 같은가 완전히 미친 사람이라 그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당신과 같은 길을 가는 사람이 아니니 할 말이 없습니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매 한마디는 마음을 휘젓고 전신을 떨게하는 것이었다.

나는 당당한 대학의 부교수로서 여러 사람이 행복하다고 여기는 사람인데 태어난 이래 이렇게 큰 치욕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우연히 고개를 들어 사악에 비틀린 그녀의 얼굴을 보니 나는 화가 나고 괴로워 거의 질식할 것 같았다. 점심시간이 되어 남편은 또 한번 그녀에게 돌아가라고 권하며 나중에 다시 말하자고 했다. 그래도 그녀는 가지 않았으며 계속 한바탕 욕을 해대다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자 비로소 위세를 떨치듯 떠났다.

남편은 문을 닫고 이 한평생 눈물을 흘리지 않던 단단한 사람이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말했다. “여보 미안해! 나는 정말 그녀가 저런 사람인줄 몰랐소. 나는 줄곧 당신이 의심이 많다고 생각했고 나는 사람이 사업 때문에 나를 찾아온다고 생각하는데 뜻밖에 이 사람은 이렇게 정신병이군! 막 돼먹었어! 안심하시오. 이후에 다시는 그녀와 아무 일도 없을거요! 어떤 협력도 하지 않을거요!”

그 날 이후 그녀는 여러번 전화로 소란을 피웠고 남편은 모두 엄숙한 말로 거절했다. “자중하시오! 당신 회사에 정말 일이 있으면 다른 사람을 보내시오!” 이 사람이 얼굴이 얼마나 두꺼운지 어느 날 또 우리집에 찾아와 소란을 피우다 아들에게 문전박대를 당했다. 아들은 그녀가 내 사무실에 와서 나를 상해할까봐 채찍을 들고 내 사무실 건물 입구에 와서 지켰다. 그녀는 마침내 놀라 도망쳤고 이때부터 다시는 귀찮게 하지 않았다.

큰 풍파가 갑자기 식자 나는 비로소 알았다. 사부님이 내가 이 관을 넘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교묘한 방법으로 이런 원수를 외나무 다리에서 만나는 방법을 안배하신 것이었다. 이 사람이 충분히 연기를 하여 남편에게 이 사람의 진면목을 똑똑히 보게 하셨고 가정에 다시금 따스함이 있도록 하셨다. 사부님은 화해의 천사를 안배하셨다. 나는 충심으로 사부님께 감사드린다. 아니었더라면 어떻게 이런 교묘한 일이 있겠는가?

현재 십여 년이 지났다. 이 일을 회상하면 당시 수련에 정의 집착을 버려야 함을 알지 못했다. 정에 집착할수록 더 내려놓아야 한다. 하지만 나는 평시에 특히 감정을 중시하고 부부간의 정을 중시하는 사람이어서 이것은 분명 내가 넘기 어려운 관문이 되었다. 이 관을 사부님이 아니면 내가 넘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때 역할을 한 것이 무슨 마인지 잘 모른다. 색마인가 정마인가? 그녀는 모 대학교 총장의 딸이며 행정기관의 일에서부터 해외에서 무역 등 경력이 많다. 공평하게 말하면 그때 그녀의 나이에, 그 예쁜 얼굴에 어찌 이같이 마성이 크게 드러났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현재 생각해보면 나와 그녀가 전생에 은원이 얽힌 게 아닐까? 비록 그녀가 한 역할은 내게 큰 상처를 주었지만 그녀도 즐거울 수 있을까? 그녀의 미친 행동이 자신을 상하게 하지 않았을까? 대법제자로서 마땅히 그녀를 미워하지 말아야 하며 감사해야 한다. 나를 한번 단련시켜주었으니. 만일 내가 다시 그녀를 만날 수 있다면 그녀에게 홍법을 하며 미소로 은원을 소멸시키리라.

3. 맺는 말

이상 서술한 것은 내가 수련과정 중에 많고 많은 천사를 만나고 각종 악마를 만난 것이다. 나는 내게 행운을 가져다 준 천사들을 사랑하며 그들이 내가 신의 길을 걷도록 하고 인간에서 배회하지 않도록 인도해주었다. 내 수련의 길에 출현한 마성이 크게 폭발한 사람들은 나에게 지옥 같은 고통을 느끼도록 했고 얼음과 물불의 단련을 거치게 했다. 사부님이 아니었더라면 결말은 비참했을 것이다.

이제 나는 아는데 이것이 모두 나의 난이다. 나의 각종 집착과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여 조성된 것이다. 고향과 집의 정에 대한 집착이 나로 하여금 “가족 마”를 만나게 했고 병에 대한 집착이 병마를 만나게 했으며 남편의 정에 대한 집착이 “정마”라 나를 희롱하게 했다. 내가 너무 많은 집착이 있기에 이런 각종 악마를 만난 것이다. 집착이 무거울수록 악가는 더욱더 발광한다.

사부님은 나의 마난을 이용하여 나의 심성을 제고하셨다. 비록 나의 제고가 매우 늦지만 나는 축하할만 가치가 있다: 나는 여태껏 내려놓으려고 한 적이 없었다! 비록 내가 섭렵한 과학 문화 등 체계적인 지식이 유한하더라도 절대 내가 대법을 인지하는데 영향을 주지 않았다. 마치 사부님의 말씀하신 것과 같다. “불법은 가장 정심하여 그는 세계상 일체 학설 중에서 가정 현오하고 초상적인 과학이다”(<전법륜>)

대법이 불과 십여 년만에 전 세계에 널리 전해졌으니 이는 파룬궁의 박대정심하다는 것을 설명하기에 족하다. 그는 다른 무엇과 비할 수 없다. 특히 전 인류의 도덕이 미끄러진 오늘 말겁시기에 사부님은 대법을 널리 전하야 그가 말한 것 하신일은 전부 중생을 구도하기 위함이고 전 인류 전 우주를 위한 것이다. 부처라고 말함이 옳지 않은가? 나의 이번 생 거의 70년 경험 중 나는 15년의 실천을 통해 내 눈으로 파룬따파의 위대함과 정확함을 직접 보았고 그의 정수 “진선인”은 마땅히 전 인류가 영원히 따라야 할 진리이다. 인류가 과거에 출현한 각종 사상, 사조, 무슨 주의 ,… 많은 것은 이미 착오가 있음이 증명되었고 심지어 사악하기도 하다. 이 때문에 단명한다. 하지만 대법의 광휘는 반드시 영원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대법을 택했고 아울러 대법제자로서 영예롭고 자랑스러움을 느낀다. 어떤 정황 하에서도 나는 대법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내 앞에는 한 가지 길만 있다. 사부님의 진수제자가 되고 길이 아무리 멀고 힘들어도 걸어갈 것이다.

발표시간: 2012년 11월 27일
정견문장: http://www.zhengjian.org/node/114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