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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으로 승복한 백거이

글/ 정중(鄭重)

【정견망】

백거이의 감배하풍(甘拜下風 진심으로 상대방의 장점을 인정하고 깨끗하게 승복하는 것).

중당(中唐)시기 대시인 백거이는 쉽고 평이한 언어로 깊은 정을 표현하는데 뛰어났다. 역대로 시를 평론하는 사람들 역시 모두 이 점을 인정하는데 특히 ‘장한가(長恨歌)’나 ‘비파행(琵琶行)’은 천고(千古)의 절창(絶唱)으로 꼽힌다. 한마디로 백거이는 사람의 장부 속까지 파고 들어갈 정도로 깊이 있게 정을 표현했고 소재로 다채롭고 풍부했다.

백거이는 어떤 장면을 보고 시정(詩情)이 생겨나거나 절묘한 시상(詩想)이 떠오를 때도 있었지만 때로는 깨끗하게 붓을 내려놓고 중단할 때도 있었다. 다음은 그의 소탈하고 활달한 성품을 보여주는 일화이다.

당나라 목종(穆宗) 장경(長慶) 연간 어느 날, 원진(元稹), 유우석(劉禹錫) 그리고 위초객이 백거이의 집에 모여 남조(南朝)의 흥망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그러다 각자 금릉(金陵 남조의 수도였던 건강. 지금의 남경)을 회고하는 시를 각자 한 편씩 짓는 시합을 하기로 했다. 한 잔 가득 술을 마신 후 시정(詩情)이 크게 일어난 유우석이 가장 먼저 다음와 같은 시를 지었다.

왕준(王浚)의 누선이 익주(益州)로 내려가자
금릉(金陵)의 왕기가 어두워졌다네.
천 길 쇠사슬 강바닥에 가라앉자
석두성에선 항복 깃발 올렸다네.
인간세상 몇 번이나 지난 일에 아파했건만
산은 옛 모습 그대로 찬 강물을 베고 있네.
지금은 사해가 한 집안이 되었으니
가을날 옛 성루엔 갈대만 쓸쓸하구나.

王浚樓船下益州
金陵王氣黯然收
千尋鐵鎖沉江底
一片降幡出石頭
人世幾回傷往事
山形依舊枕寒流
而今四海爲家日
故壘蕭蕭蘆獲秋

백거이가 이 시를 펼쳐 읽어본 후 “우리 네 사람이 여룡(驪龍 완전히 검은 색 용)을 찾으려 했는데 그대가 먼저 여의주를 얻었으니 나머지 비늘과 발톱이야 어디에 쓴단 말인가?”라고 탄복한 후 시합을 중단해버렸다.

사실 백거이와 유우석의 시재(試才)를 비교하면 본래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긴 하지만 굳이 명성을 따지자면 그래도 백거이가 한 수 위였다. 그럼에도 백거이는 다른 사람의 뛰어난 작품에 대해 이렇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이처럼 같은 소재로 다른 사람이 이미 시를 썼지만 자신에게 새로운 뜻이나 뭔가 독특한 표현이 없다면 시합을 중단하고 깨끗하게 승복했다. 이 역시 상대를 존중하는 표현이다. 물론 이렇게 하기란 아주 쉽지 않은 일이다.

자료출처: 《당시기사(唐詩紀事)》

역주: 왕준은 진(晉)나라 장수로 오(吳)나라를 멸망시킨 장수의 이름이다. 당시 오나라는 장강에 쇠사슬을 설치해 적선의 공격을 막았는데 왕준이 이를 끊어버리고 수도를 공략했다. 석두성은 오나라 수도인 금릉 즉 건강(建康)을 말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151349